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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ss

체스

냉전 시대 체스 경기를 통해 인물들이 전략과 압력에 따라 움직이는 말처럼 그려진다. 미니멀한 무대와 강한 연기가 프레디·아나톨리·플로렌스의 희생과 선택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음악 구조의 명확성이 작품에 새로운 완성도를 부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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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촬영한 플레이빌 이미지로, 아카이브 용도로만 게재합니다

세계 초연 및 나의 관람 기록

세계 초연 연도:

1986

리뷰어 관람 연도:

2025

공연 극장명:

임페리얼 씨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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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체스(Chess)를 보고 가장 오래 마음에 남은 점은 이른바 “유일한 냉전 뮤지컬”이라는 작품이 말 그대로 체스 경기처럼 전개된다는 것이다. 프레디는 폰처럼, 아나톨리는 비숍처럼, 플로렌스는 킹처럼 움직인다. 중재자인 아비터를 제외하면 무대 위의 모든 인물들은 전략·압박·계산된 움직임에 따라 배치되고 희생되는 체스 말로 취급된다. 실제로 판을 움직이는 존재는 개인이 아니라 그들을 움직이는 힘이다. 체스는 모든 인물이 냉전의 지정학적 판 위에 놓인 말이라는 전제를 유지한다. 어느 강대국도 이들을 온전히 자율적인 존재로 보지 않는다. 프레디가 기권하는 순간 그는 판 밖으로 밀려나고, 그 과정에서 역설적인 평화를 얻는다. 하지만 아나톨리는 망명을 해도 여전히 판 위에 남아 있고, 플로렌스 역시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거대한 힘에 의해 계속 움직이게 된다. 편을 바꾼다고 해서 게임의 규칙이 바뀌지는 않는다.

이날은 브로드웨이에서 처음으로 스테이지 도어에 줄을 서서 기다린 날이기도 했다. 서명이 담긴 플레이빌을 손에 쥐고 극장을 나왔고, 이 작은 사건은 공연의 기억과 자연스럽게 하나로 묶였다.

간략한 시놉시스: 체스는 냉전 시대를 배경으로, 국제 체스 대국이 실력만이 아니라 정치적 압력으로 움직인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이탈리아에서 열린 세계 선수권전에서 미국 챔피언 프레디 트럼퍼와 소련 챔피언 아나톨리 세르게예프스키가 맞붙고, 프레디의 세컨이자 연인인 플로렌스 배시는 두 사람 사이에서 갈등한다. 프레디는 불안정한 행동 끝에 경기를 포기하고, 아나톨리는 부전승으로 우승한다. 플로렌스는 프레디와 결별하고 영국으로 망명하는 아나톨리를 따라간다. 이후 방콕에서 열린 새로운 경기에서는 아나톨리가 개인적 자유와 정치적 의무 사이에서 선택해야 하며, 플로렌스는 오래전 실종된 아버지가 소련의 지렛대로 이용될 수 있음을 알게 된다. 결국 아나톨리는 플로렌스의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소련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하고, 플로렌스는 그의 선택을 이해하게 된다.

막이 오르자마자 조명과 의상, 국적을 명확히 드러내는 연출은 무대 전체가 정치극으로서의 체스 경기라는 사실을 분명히 했다. 회색 정장을 입은 앙상블은 극의 직접적 참여자가 아니라 중립적인 관찰자처럼 보였다. 특히 아비터의 역할이 큰 도움이 되었는데, 그는 “국제체스연맹 회장 역할도 내가 맡는다”며 직접 내려오는 장면에서 관객의 웃음을 이끌며 작품의 구조를 명료하게 잡아주었다. 브라이스 핑크햄은 이 역할을 정확한 톤으로 소화하며 극의 긴장감을 해치지 않는 안내자로 기능했다.

무대는 극도로 미니멀했다. 몇 개의 소파를 제외하면 무대는 거의 비어 있었고, 세 면을 둘러싼 계단과 그 위에 자리한 밴드가 공간을 규정했다. 이 절제는 시각적 볼거리보다 인물 간의 심리적 움직임에 초점을 맞추게 했다.

프레디 역의 애런 트베이트는 이 공연을 보러 간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였고, 그의 연기는 기대 이상이었다. 약을 거부하며 바닥에 누워 있는 모습으로 시작해, 약을 먹는 순간 즉각 예민하게 깨어나는 모습은 인물의 불안정한 세계관—소련과 CIA 모두 자신을 조종한다는 의심—을 설득력 있게 드러냈다. 그의 테너는 가볍고 명료했으며, “Pity the Child”는 아픈 감정으로 가득했고 “One Night in Bangkok”은 세련된 팝 보컬처럼 빠르고 유려했다.

플로렌스 역의 리아 미셸은 단정한 검은 수트를 입고 효율성과 절제를 표지로 삼았다. 한층 성숙해진 음색은 실향과 상실, 프레디와의 불안정한 관계를 겪어온 인물의 삶에 잘 어울렸다. “Heaven Help My Heart”에서는 그녀의 음색이 부드럽게 풀리며 2007년 Spring Awakening에서 느꼈던 투명함이 순간적으로 떠올랐다.

아나톨리 역의 니컬러스 크리스토퍼는 “자살 성향이 있는 소련 챔피언”이라는 아비터의 짧은 소개로 시작했고, 극 후반에는 ‘더이상 자살하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말과 함께 등장한다. 그의 절제된 몸짓과 억눌린 감정 표현은 개인의 의지가 거의 허용되지 않는 삶을 보여주었다. 그의 넘버들은 ABBA풍의 나머지 곡들과 달리 보다 전통적인 뮤지컬 음악에 가깝고, “Anthem”과 “Where I Want to Be”는 예상대로 큰 환호를 받았다.

이 미니멀한 구성 속에서 배우들의 미묘한 연기가 선명하게 보였다. 약 복용 후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 RAI 인터뷰에서의 폭발, 플로렌스에게 사랑한다는 말도 하지 못하는 프레디는 항상 무력하고 냉소적이었다. 끊임없이 쫓기는 듯 긴장한 플로렌스는 아버지를 실제로 마주하는 순간에만 비로소 미소를 되찾았다. 아나톨리는 “이제 자유롭다”라고 말하면서도 결코 자유로워 보이지 않았다. 그의 움직임과 말투는 누군가가 실핏줄 하나까지 통제하고 있는 것처럼 기계적이었다.

프레디는 스스로 체스판 밖으로 뛰어내리며(기권하며) 자유를 얻었지만, 아나톨리의 마지막 선택은 체크메이트를 당한 것처럼 다가왔다. KGB 요원의 노래 실력도 인상적이었고, CIA 요원이 단 한 줄도 솔로 파트를 받지 못했다는 아비터의 농담도 효과적이었다. 스베틀라나와 플로렌스의 듀엣은 대립하면서도 서로를 이해하는 여성 간의 장면이었고, 이 아름다운 노래는 비욘과 베니가 뛰어난 여성 듀엣을 써왔다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시켰다.

관객들이 가장 기다린 “One Night in Bangkok”에서는 앙상블이 무대위에서 의상을 벗고 나이트클럽 댄서를 연기하며 백플립와 스플릿 등을 선보였다. 트베이트는 노래하며 무대를 가볍게 가르며 춤추며 노래하는 아름다운 장면을 만들었다.

이번 체스가 특히 만족스러웠던 이유는 훌륭한 배우들뿐 아니라 작품의 음악적 구조가 분명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베니 안데르손과 비욘 울베우스는 “좋은 노래들의 모음”을 쓴 것이 아니라 분절과 재등장, 변주를 통해 인물의 심리와 줄거리를 음악적으로 전개해 나가는 구조적 서사를 구축했다. 노래만 들었을 때는 산만하게 들리던 요소들이 뮤지컬을 관람하면서 보니 치밀하고 의도적인 구성으로 느껴졌다.

작품의 균형도 제대로 잡혔다. 체스 경기처럼 모든 움직임에 결과가 따르고, 승리조차 온전하지 않으며, 도덕적 위치도 절대적이지 않다. 팀 라이스가 냉전을 체스판 위에 올린 것이 gimmick이 아니라 인간의 전략·심리·희생을 형상화하기 위한 장치였다는 점이 명확해졌다.

과거 체스가 어려움을 겪었던 이유는 명확성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단순화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1980년대 당시에는 외교적으로 불편했던 중립성과 모호함이 지금은 오히려 성숙함으로 읽힌다. 이번 리바이벌은 작품을 “고쳐서” 성공한 것이 아니라, 원래 존재하던 힘을 신뢰했기 때문에 성공했다.

프레디의 서사는 공연을 떠난 뒤에 더욱 분명해졌다. 초반의 그는 자유롭지 않다. TV 인터뷰에서 아나톨리의 가족 문제를 폭로하는 순간조차 절박함의 발로였다. 그러나 극 후반부, 조용히 변화가 일어난다. 그는 개인적 이해관계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아나톨리에게 조언하고, 그 때 그의 불안감이 사라진다. 자유는 기권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이기거나 도발해야 한다는 충동에서 벗어나는 데서 비롯된다. 그는 플로렌스를 진심으로 사랑했고 돌아오길 바랐지만, 체스는 감상적 재결합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는 사랑을 되찾지 못하지만, 자신을 되찾았다. 승리도 구원도 아니지만, 갈등에 의해 규정되지 않는 인간적인 해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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