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gtime
래그타임

뮤지컬 래그타임은 역사적 장면을 재현하는 대신, 서로 다른 삶들이 축적되며 국가를 형성해 가는 살아 있는 역사를 제시한다. 절제된 무대와 명확한 연출, 배우들의 강력한 존재감 속에서 이야기는 파편처럼 이어지며 자연스럽게 의미를 쌓아간다. 이 작품은 비평을 요구하기 보다는, 관객에게 목격자가 될 것을 요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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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래그타임은 묵직한 감동을 느끼며 침묵 속에서 보았다. 공연이 끝난 뒤 상당한 시간이 흘렀지만, 무대 위의 이미지와 목소리, 그리고 작품이 지닌 도덕적 무게는 여전히 마음을 누른다.
래그타임은 역사적 스펙터클을 다루는 작품이 아니다. 이 작품은 ‘살아 있는 역사’를 다룬다. 미국 역사를 경험하지 않은 외부인으로서 그 맥락을 충분히 체화하지 않은 채 작품을 몇 마디로 요약하는 일은 무례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작품의 힘은 등장인물과 사건의 파편적인 축적에 의해 형성된다. 서로 다른 삶들이 독립적으로 등장하면서도 교차하고 스치며, 결국 그들이 살아가는 나라를 함께 형성해 나간다.
구조는 처음에 에피소드 중심인 것처럼 보일 수 있으나, 우리가 세상을 실제로 경험하는 방식과 닮게 구성되어 있다. 나 자신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면, 사람들은 내 앞에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나는 공유한 기억의 파편을 모아 그들에 대한 인상을 축적한다. 이 작품의 에피소드도 파편처럼 보이지만 단절되어 있지 않다. 오히려 지극히 자연스럽다. 작품은 관객에게 의미를 스스로 조립할 힘이 있다고 믿으며 사건과 인물을 차례로 보여준다.
해리 후디니, 에블린 네스빗, 엠마 골드먼, J. P. 모건, 헨리 포드, 부커 T. 워싱턴 같은 실존 인물들도 허구의 인물들과 같은 무대 위를 오간다. 이들은 시대적 배경을 설명하기 위한 표지가 아니라, 각 가족의 사적인 삶이 정치와 산업, 이민과 인종 갈등의 역사에서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오프닝에서 두 소년을 제외한 전 출연진이 무대 아래에서 거대한 승강장치를 타고 합창과 함께 등장하는 장면은 하나의 선언과 같다. 백인 중산층 가족, 흑인 공동체, 유대계 이민자들은 세 그룹으로 나뉘어 저마다 다른 음악과 움직임, 사회적 위치를 지닌 채 무대 위로 올라온다. 인물의 등장은 그들이 역사를 장식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를 지탱하는 구조체 자체임을 보여준다. 하나의 사회가 우리 눈앞에서 문자 그대로 형성된다.
이 효과를 가능하게 하는 핵심은 무대 연출이다. 배우들은 여러 장면에서 옆이나 뒤로 사라지기도 하지만, 무대 양옆의 전면 계단을 통해 등장하고 퇴장하며 관객과 같은 공간에 머문다. 높낮이가 있는 구조물은 권력과 노동, 기억을 수직적으로 보여준다. LED 배경은 절제되어 사용되고, 많은 소품은 기계장치 없이 배우들이 직접 밀어 움직인다.
조명 역시 세심하다. 아버지가 북극 탐험을 떠나는 장면에서 그는 무대 뒤편의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가 이후 다시 빛 속에 등장하며, 타테를 미국으로 실어 나르는 배와 나란히 놓인다. 위에서 사선으로 떨어지는 대형 천은 불안정한 구름처럼 보이다가 성조기의 형상으로 정리된다. 그러나 그것은 승리를 과시하는 깃발이라기보다 잠시 세워졌다가 곧 접혀 사라지는 구조물에 가깝다. 무정형의 천은 살아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이 무대 언어는 작품의 의미를 가리지 않고 오히려 또렷하게 만든다.
비비언 보몬트 극장의 공간 역시 친밀함을 극대화한다. 반원형 앞무대는 배우들의 미세한 동작과 표정 변화를 온전히 전달하고, 동시에 프로시니엄 무대는 작품의 역사적 스케일을 담아낸다. 역사는 멀리 있지 않다. 바로 앞에 있다.
공연은 매우 탄탄하다. 콜하우스 워커 주니어 역의 조슈아 헨리는 깊이와 절제를 동시에 지닌 목소리를 들려준다. 그의 노래는 힘을 과시하지 않고도 공간을 채운다. 피아노에 앉아 연주할 때 그는 자유롭고 이완되어 있으며, 래그타임 특유의 싱코페이션은 자연스럽게 몸에 배어 있다. 땀을 닦는 작은 동작 하나까지도 인물을 현실에 붙잡아 둔다. 콜하우스는 무대 위에서 생생하게 살아 움직인다. 조슈아 헨리는 이 연기로 제79회 토니상 뮤지컬 부문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그의 노래를 둘러싼 극장의 전반적인 음향 설계다. 무대 아래에 자리한 오케스트라는 목소리와 경쟁하지 않는다. 오히려 배우의 호흡과 프레이징을 받쳐주며, 장면의 정서에 따라 소리의 밀도와 분위기를 변화시킨다.
세라 역의 니셸 루이스는 강한 성량을 지녔지만 표정에는 늘 불안이 서려 있다. 콜하우스가 1막에서 자주 웃는 반면 세라는 거의 웃지 않는다. 그녀가 비관적인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자신이 놓인 현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콜하우스와 화해한 뒤에는 사랑과 행복을 마음껏 표현하지만, 그 행복이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도 알고 있다.
두 사람이 함께 미래를 노래할 때에는 희망과 두려움이 동시에 존재한다. 그래서 그들의 화음에서는 감미로움보다 결의가 먼저 전해진다. 세라가 죽는 순간 두 사람에게는 하늘 전체가 무너진 듯하다. 콜하우스가 분노할 때 관객도 함께 억울해지는 것은 그가 처음부터 폭력을 원한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는 훼손된 자동차를 원래대로 돌려놓고 가해자가 책임지기를 요구했을 뿐이다. 그러나 제도는 그 당연한 요구를 거부하고 세라까지 빼앗는다. 그의 선택이 파국으로 향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관객은 그 분노에서 쉽게 빠져나올 수 없다.
브랜든 유라노비츠의 타테는 소설 속에서 걸어 나온 인물처럼 느껴진다. 딸 앞에서는 늘 경계하며 보호하려 하고, 어머니 앞에서는 조심스럽고 부드러워진다. 미세한 음색과 몸짓의 변화는 한 인간이 사회 속에서 성공하고 새로운 자아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영화감독으로 성공해 귀족 행세를 하기 시작할 때 그의 과장된 태도는 공허하지 않고, 오히려 해방처럼 느껴진다. 어머니의 말버릇인 “Well”을 흉내 내는 장면도 패러디라기보다 친밀함에서 비롯된 것으로, 관객의 웃음을 이끌어낸다.
그러나 성공한 뒤에도 타테는 어머니 앞에서 상대적으로 위축되어 보인다. 브랜든 유라노비츠는 그 간극을 우습고도 애잔하게 표현한다. 타테는 자신의 가난했던 과거와 두 사람 사이의 신분 차이를 의식하지만, 어머니는 그 차이를 관계의 기준으로 삼지 않는다. 그녀는 가난한 이민자였던 타테와 성공한 영화감독이 된 타테를 다르게 대하지 않을 만큼 편견이 없는 사람이다.
두 사람은 연인이 되기 전에 먼저 친구가 된다. 바로 앞서 아버지는 어린 아들을 야구장에 데려가 자신이 배웠던 상류층 남성의 질서와 태도를 가르치려 한다. 그러나 어린 아들은 아버지가 의식하는 인종과 계급의 경계를 받아들이지 않고, 애틀랜틱시티에서 만난 타테의 딸과 해변에서 스스럼없이 어울린다.
두 아이가 함께 노는 모습을 바라보고 타테의 실없는 말에 웃으면서, 어머니와 타테도 서로 앞에서 긴장을 내려놓는다. 두 사람은 서로를 구원하거나 소유할 대상으로 만나기 전에 동등한 인간으로 만난다. 친구가 먼저였기 때문에 두 사람은 결혼한 뒤에도 잘 살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케이시 레비가 연기한 어머니는 작품의 조용한 중심축이다. 남편이 그녀를 자신보다 못한 존재로 취급하는 순간에도 자세는 무너지지 않고 목소리는 흔들리지 않는다. 그녀는 세라와 아기를 집으로 받아들이기 전에 인종이나 사회적 시선을 두고 갈등하지 않으며, 남편의 허락도 구하지 않는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고 자신이 도울 수 있기 때문에 선뜻 행동한다. 타테와 친구가 될 때도 계급과 출신의 차이를 관계의 기준으로 삼지 않는다. 독립적인 여성이라고 주장하지 않지만 남편이 없는 동안 공장을 운영한다.
이 역할을 백인 중산층 여성에게 맡긴 것도 절묘하다. 어머니는 기존 질서의 수혜자인 동시에 그 질서 안에서 자신의 결정권을 제한받는 사람이다. 그러나 자신이 가진 지위에 대해 해명하거나 죄책감을 선언하는 대신, 자신의 공간과 능력을 다른 사람도 살아갈 수 있도록 사용한다. 관습에 맞서 싸우겠다고 말하지 않으면서도 관습이 자신의 판단을 대신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어머니의 자유는 선언이 아니라 실천으로 드러난다. 우아하고, 거리낌 없이.
다른 인물들이 관습과 생존, 이상과 훼손된 존엄, 자신을 바칠 목적에 매여 있는 동안 어머니는 신기할 정도로 자유롭다. 관습에 순응했던 시기에도 그것을 절대적인 기준으로 믿었다기보다, 이전까지 충돌할 이유가 없었던 사람처럼 보인다. 충돌할 순간이 오자 그녀는 누구의 허락도 기다리지 않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한다.
아버지는 자신이 익숙한 질서와 권위를 반복해서 내세우지만, 정작 가족에게서 자꾸 떠난다. 북극으로 떠났다가 돌아온 뒤에는 자신이 알고 있던 집과 아내가 달라졌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어린 아들을 야구장에 데려가 자신이 배운 남성의 질서를 가르치려 하지만, 아들은 해맑게 그의 말을 듣지 않는다. 아버지가 내세우는 권위는 좀처럼 가족에게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그래서 그는 오랫동안 실속 없는 사람처럼 보인다.
그러나 콜하우스의 인질이 되어 건물 안으로 들어갈 때 비로소 그 권위 뒤에 있던 한 사람이 보인다. 그는 자신이 익숙한 세계를 쉽게 벗어나지 못하지만, 완전히 닫힌 사람은 아니다. 생각해 보면 세라와 아기가 집에 들어왔을 때도 그는 불편함을 드러낼 뿐, 그들을 내쫓거나 어머니의 결정을 뒤집지는 않았다. 마지막에 그는 콜하우스를 설득하기 위해 자신의 안전을 내놓는다. 그 순간에 이르러서야 앞서 보였던 무력함과 완고함 사이에도 책임감과 인간적인 선의가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남동생 역의 벤 리바이 로스는 방향을 잃은 사람의 절박한 진지함을 끝까지 유지하면서도 웃음을 만들어낸다. 그는 에블린 네스빗, 엠마 골드먼, 콜하우스를 거치며 자신을 바칠 더 강한 목적을 찾아가고, 마지막에는 미국을 넘어 멕시코로 건너가 에밀리아노 사파타의 혁명에 합류한다. 계속 더 큰 자극과 대의를 찾아 이동하는 궤적은 우습지만, 그의 노래는 처음부터 진지하고 명확하다. 목소리는 볼륨이 아니라 신념을 통해 힘을 얻고, 목적이 소리를 무게 있게 만든다.
가족의 집에 얹혀살면서도 여전히 과거의 권위를 대표하는 할아버지는 등장할 때마다 웃음을 만든다. 끝내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그는 에필로그에서 자신이 “묘지로 은퇴했다”고 말한다. 작품은 그를 거창하게 심판하거나 변화시키는 대신, 한 시대와 함께 사라진 인물로 유쾌하게 퇴장시킨다.
아이들은 거의 노래하지 않는다. 그들은 사건을 결정하는 인물이 아니라 목격자이자 연속성의 상징이다. 타테의 어린 딸은 그가 살아갈 이유가 되는 존재이며, 타테의 책임감은 딸을 깊이 사랑하고 그녀를 위해 무엇이든 할 준비가 된 부성애로 드러난다. 공연 내내 사랑스러운 어린 딸은 어머니의 아들과 만나자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인종과 계급의 경계를 의식하지 않고 함께 어울린다.
에필로그에서 인물들은 각자의 운명을 직접 말한다. 아버지는 RMS 루시타니아호에서 죽음을 맞았다고 말하고, 다른 인물들도 극이 끝난 뒤 자신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스스로 전한다. 어머니는 남편이 죽은 뒤 1년간 애도하고 타테와 결혼해 세 아이를 함께 키운다.
마지막에는 세라와 콜하우스의 아들인 아주 작은 아이가 어머니의 어린 아들과 타테의 어린 딸 사이에 자리한다. 공연 초반 서로 나뉘어 등장했던 백인 중산층 가족, 흑인 공동체, 유대계 이민자의 역사가 한 가족이 되어 무대 중앙에 모인다. 아기가 너무 작고 귀여워서 이 장면의 상징은 관념으로만 남지 않는다.
내게 이 작품의 진정한 주인공은 어머니와 세 아이다. 아이들이 아직 편견을 배우지 않았기 때문에 자유롭다면, 어머니는 편견을 배울 수밖에 없는 사회를 살아왔으면서도 그것을 자신의 기준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네 사람은 다른 인물들을 구속하는 인종과 계급, 출신과 혈연의 경계를 관계의 기준으로 삼지 않는다.
래그타임은 따뜻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면서도 고통을 외면하지 않는다. 할아버지가 자신은 “묘지로 은퇴했다”고 농담할 때, 우리는 등장인물 모두가 결국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는 사실을 직감한다. 작품 속에서 미래 세대였던 아이들 역시 이제는 오래전 과거의 인물이 되었고, 그들이 상징했던 미래는 이미 우리가 살아온 역사가 되었다. 이 작품은 감탄하며 평가하는 관객보다, 그 약속이 얼마나 실현되었는지를 함께 바라보는 목격자를 요구한다.
벅차오르는 마음으로 공연장을 나섰다. 공연이 끝난 뒤에는 작품에 대한 자부심이 가득해 보이는 어셔와 한동안 이야기를 나누었고, 링컨센터에서 41번가의 호텔까지 걸었다. 다시 한번 보고 싶다는 마음만이 오래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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