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zart!
모차르트!
익숙한 명곡과 전설의 매끈한 무대를 기대했지만 결과는 미완. 합창은 뭉개지고 클라이맥스는 힘이 빠졌다. 볼프강은 무난했으나 고음이 막혔고 베버가 넘버는 거칠었다. 정원영 배우의 쉬카네더, 선민 배우의 콘스탄체, 길병민 배우의 콜로레도는 빛났다.
한국 초연:
2010
세계 초연:
1999
관람 년도:
2023
공연 극장명:
세종문화회관, 서울
이 아카이브에 포함된 포스터는 기록 및 교육 목적에 한하여 게재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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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모차르트! (Mozart, das Musical)은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를 신동 시절부터 죽음까지 그린 작품이다. 무대는 콘스탄체와 일행이 장크트 마르크스 묘지를 찾는 장면으로 시작해 어린 시절로 되감는다. 유럽 각지의 궁정·살롱에서 연주하는 소년, 잘츠부르크 대주교 콜로레도의 비호 아래 있는 모차르트 가족, 그리고 그 곁을 떠나려 반항하는 젊은 볼프강이 보인다. 발트슈테텐 남작부인은 그의 시야를 넓혀 빈으로 이끌고, 그는 쉬카네더와 베버 가를 만난다(무대에선 콘스탄체를 제외하고 탐욕적으로 그려진다). 두 사람은 결혼하지만, 공연은 사람과 파티를 즐기는 볼프강과 고립되어 가는 콘스탄체를 대비시킨다. 병이 깊어지고, 베일 쓴 전령이 레퀴엠을 의뢰한다. 볼프강이 쇠약해질수록 그의 피를 잉크 삼아 작곡을 해왔던 아마데—모차르트의 ‘내면의 천재’를 시각화한 어린 분신—은 잉크를 얻기 위해 깃펜을 볼프강의 가슴에 꽂는다. 모차르트가 죽고, 아마데도 사라진다.
이 작품은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첫 장면부터 전설을 자처하며 시작한다. 이와 같은 극적 렌즈를 염두에 두면 무대가 인물을 역사를 비틀어 다듬을 때도 이해가 된다. 예컨대 콘스탄체는 무대에선 ‘성녀 아내—탕진벽 남편’ 구도로 비치지만, 실제로는 빈의 상류 사회에서 둘 다 지출이 컸고, 사후에는 그녀가 유산을 영리하게 관리했다. 베버 가는 희극적 속물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음악으로 생계를 꾸린 집안(알로이지아는 스타 소프라노, 요제파는 「마술피리」 초연의 밤의 여왕)이었다. 콜로레도는 폭압적 후원자로 등장하지만, 역사적으로는 엄격한 위계 속 고용주에 가까웠고, 결별의 본질은 질투가 아니라 지위와 자율성에 관한 문제였다. 쉬카네더는 갑작스럽게 모차르트와 가까워진 사이로 비치지만, 실제로는 점차 쌓인 우정으로 함께 마술피리를 제작하는 동료로 이어졌다. 아마데는 전기적 사실이 아니라 메타포이며, 베일 쓴 레퀴엠 의뢰인도 복잡한 위임 과정을 한 번의 운명적 사자와 같이 압축한 장치다.
아름다운 넘버들과 매끈하게 다듬은 무대를 기대하면서 들어갔다가, 좋을 수 밖에 없는 스토리와 노래가 어째서 이렇게 어설프게 느껴지는지 의아해하며 극장을 나왔다. 문제는 합창의 기본 블렌드에서 시작됐다. 화음이 어긋났고, 아름답게 풍성해져야 할 합창이 불협화음으로 오염되었다. 앙상블의 조화가 맞지 않는 작품은 거의 보지 못했기 때문에 더욱 이상했다.
볼프강은 나쁘지 않았지만, 유튜브에서 가볍게 올리던 고음이 여기서는 들리지 않았다. 베버 가족의 넘버도 에너지는 있었으나 조화롭지 않았다. 반대로 쉬카네더(정원영 배우)는 묘약 같은 존재였다. 재치 있고, 리듬감이 살아 있으며, 노래와 춤이 시작되면 객석의 공기를 가볍게 들어 올렸다. 콘스탄체(선민 배우)는 깔끔했고, 콜로레도 대주교(길병민 배우)는 그날 밤 최고의 보컬—중심 잡힌 톤, 권위, 아름다운 라인—을 들려주었다. 무엇보다 “황금별”마저 기대에 못 미친 것이 의아했다.
연출의 장점이 없었던 건 아니다. 커다란 승강 계단은 효과적인 무대장치였고, 베버 가족의 마차는 보기 좋고 잘 만들었다. 의상도 조명 아래 훌륭했는데, 특히 귀족만 입을 수 있는 볼프강의 붉은 재킷은 그의 신분 상승의 열망과 신분제도에 대한 경멸을 보였다. 하지만 근사한 그림만으로는 느슨해진 음악을 만회하기 어렵다.
가장 당혹스러웠던 건 평판과 현실의 간극이었다. 2020년 프로덕션은 호평을 받았고, 남아 있는 영상도 그 성공을 뒷받침한다. 대본은 단단하고, 히트 넘버도 풍부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어딘가에서 톱니가 맞지 않은 듯했다. 그 결과는 기대에 못 미치는 무대와 눈에 띄는 빈 객석이었다. 작품이 약해서가 아니라, 이번 무대가 그 힘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의 DNA에는 본래 우화가 들어있다. 그러나 뮤지컬에는 우화에도 좋은 목소리가 필요하다. 합창의 하모니가 흔들리고 주역의 클라이맥스가 솟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 내게 남은 건 쉬카네더의 반짝임, 콜로레도의 권위, 선민의 깔끔한 노래뿐이었다. 뭐가 잘못된 걸까?
참고: 아래 유튜브 영상은 2020년 프로덕션으로, 본 리뷰의 대상인 2023년 프로덕션과는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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