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phis
멤피스
몇 년 전 빌 스트리트에서 들었던 멤피스 도시와 소리를 다시 느꼈다. 그 영혼을 한국 무대에서 손승연 배우가 거친 질감과 폭발적 파워로 되살렸다. 생생한 소울이 울린 무대였다.
한국 초연:
2024
세계 초연:
2002
관람 년도:
2024
공연 극장명:
충무아트센터, 서울
이 아카이브에 포함된 포스터는 기록 및 교육 목적에 한하여 게재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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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몇 해 전 테네시 멤피스로 출장을 갔을 때, 한밤중에 렌터카로 빌 스트리트를 찾아 나섰다. 내비게이션은 정확했지만, 번쩍이는 불빛과 인파로 가득할 그 거리가 보이질 않았다. 몇 바퀴를 돌다 주차 중인 순찰차에 길을 물었고, 경찰이 앞장서 안내해 주었다. 입구에 다다르자 멈추라는 손짓과 함께 “도난 방지용으로 가방은 모두 트렁크에 넣으라”고 조언도 해주었다. 그날 밤, 빌 스트리트는 네온사인과 블루스·재즈의 리듬을 드러냈다. 유명한 B.B. King’s Blues Club에도 들렀다. 우리 일행은 칵테일을 화려한 이름만 보고 고랐는데 대부분 맛이 이상했고, 익숙한 메뉴를 고른 한 사람만 멀쩡한 술을 마셨다.
공연의 무대미술은 실제 빌 스트리트의 간판과 광고를 본뜬 디자인이었고, J.C. Penney 같은 레퍼런스도 보였다. 설렘 반, 걱정 반으로 자리에 앉았다. West Side Story처럼 Memphis도 문화적 뉘앙스—특히 남부 억양—가 중요한 작품이라 한국 무대에서 제대로 살리기 어렵다. 예상대로 남부 억양은 재현되지 않았다. 이해할 만했다. 대신 이 한국 공연은 원작을 흉내 내기보다, 한국에서 구현하기 어려운 요소는 덜어내고 핵심 메시지를 남겨 서사를 재정의했다. 깔끔하고 소화하기 쉬운 버전이었고, 이것이야말로 한국식 각색의 강점이자 원 작품을 존중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단 하나 확실한 점은, 이 작품이 처음부터 끝까지 휴이의 쇼였다는 것. 박강현의 휴이는 아이 같은 천진함과 길 위의 반항기가 절묘하게 섞여 캐릭터에 딱 맞았다. 잘할 거라 예상했지만, 그 이상이었다. 내가 블루스·재즈 성향을 원래 즐기는 편은 아니어도, 록의 결이 에너지를 부여해 금세 빨려 들어갔다. 대사와 노래 사이를 오가는 타이밍 감각이 탁월했고, 이후 Dear Evan Hansen에서도 느꼈던 “대사 처리의 미학”이 여기서 이미 보였다. 보컬은 늘 단단했고 감정선은 흔들림이 없었다. 가장 좋아한 넘버는 “Love Will Stand (Reprise)”—짧고, 아름답고, 가볍지만 슬픔이 어른거렸다. 단순함과 진실이 울렸고, 명료함과 감정의 균형이 좋았다. 특히 휴이가 펠리시아에게 “멤피스에 남아야 한다”고 고집하는 장면에서 그의 감정 표현이 어떻게 나올지 늘 궁금했는데, 매번 갑자기 열정적으로 바뀌는 톤이 놀라웠다. 마지막 DJ 부스의 씁쓸한 장면도 오래 남았다. 그래서 여러 번 다시 보게 됐다.
무대에 오른 여러 펠리시아 중에서도 SONnet(손승연)은 단연 돋보였다. 한국에서 보기 드문, 음색의 힘 있는 보컬로 블루스·재즈·록의 질감을 모두 낼 수 있었다. 이전 불후의 명곡에서 “Bohemian Rhapsody”를 혼자 완창(래퍼와 합창이 합류했지만)해서 실력은 이미 증명된 바였다. Memphis에서도 그 깊이와 대담한 스펙트럼을 고스란히 보여 주었다. 내가 오래전부터 믿어 온 “이 역할에 SONnet만의 것이 있다”는 확신이 굳어졌다. 정선아 배우처럼 노래·연기 모두 뛰어난 배우도 인상적이었고, 이후에는 유리아 배우의 강한 성량도 오래 기억에 남았다.
흥미롭게도 여러 휴이 배우들 역시 전반적으로 수준이 높았다. 다만 모든 캐스팅이 그 수준을 맞추진 못했다. 펠리시아의 오빠가 고음을 힘겨워하기도 했고, 강한 앙상블 속에서 좀 더 두드러져 보였다.
가장 뜻밖의 놀라움은 한 앙상블 배우에게서 왔다. 백보컬 하모니에서 유난히 존재감 있는 울림을 들려주었고, 그 순간부터 공연 내내 그 배우를 눈으로 따라가게 됐다. 커튼콜에서 그 배우를 향해 두 엄지를 치켜들었고, 그녀도 알아본 것 같았다. 앙상블은 종종 이름이 불리지 않지만, 작품의 보컬·감정 무게를 함께 떠받치는 주역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가장 가슴을 울린 장면 중 하나는 2막. 아버지가 잔혹하게 공격당하는 장면을 목격한 뒤 줄곧 침묵하던 게이터가 처음으로 노래했을 때이다. 예상 밖으로 아름다운 목소리였고, 오케스트라가 들어오기 전 완벽한 음정의 아카펠라로 첫 소절을 불렀다. 음악적으로도, 감정적으로도 응축된 카타르시스였다.
이 공연은 20세기 중반의 미국 대중음악을 잘 모를 수도 있는 한국의 젊은 관객들에게 모타운과 소울 트레인의 세계를 소개하는 역할도 했다. 소울·R&B·초기 록이 섞인 사운드는 이야기 밖으로도 확장되는 생생한 배경이었고, 무대 뒤편의 라이브 밴드는 진짜 언더그라운드 클럽의 느낌을 줬다. 피아노·스트링·브라스의 유쾌한 주고받음이 시대를 규정한 음악의 기쁨과 반항을 따뜻하게 살렸다.
또 하나의 하이라이트는 휴이의 엄마. 유튜브로 본 브로드웨이 버전과 비교하면, 한국 공연은 코미디 색이 더 강했다. 캐스트 조합에 따라 애드리브가 달라졌는데, 재치 있고 중독성 있는 대사가 많아 공연에 신선한 웃음의 리듬을 더했다. “고집 센 엄마와 현실을 외면하는 몽상가 아들”이라는 관계성은 시대·인종·문화를 넘어선 보편성 덕분에 한국 관객에게도 바로 닿았다.
1950년대 멤피스의 인종 갈등—분리정책, 구조적 인종차별, 인권 운동—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맥락이고, 이 작품의 심장이다. 그 체험을 온전히 이해한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불평등과 사회적 분열이라는 큰 주제는 형식만 다를 뿐 어디에나 존재한다. 그렇기에 Memphis의 핵심 서사는 한국 관객에게도 느슨하지만 유의미하게 번역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West Side Story에서 당시 박강현 배우의 제한된 분량이 아쉬웠는데, Memphis는 기대한 것 이상을 채워 주었다. 특히 휴이의 보컬 서사가 시간에 따라 변해 가는 점이 좋았다. 초반의 낙관에서 마지막의 허무까지, 그의 목소리 톤이 아주 미세하게 두터워지는 변화—목소리만으로 인물의 변화를 그리는 감각이 살아 있었다. 원하는 만큼 자주 보지는 못했지만, 마지막 공연을 함께할 수 있어 행운이었다. 커튼콜은 따뜻했고, 객석은 팬들로 가득 찼으며, 주변엔 울고 있는 관객도 많았다. 마지막 인사는 깊고 정중했다. 번역과 문화 차이의 벽이 있어도, 이 작품은 그 시절을 살았던 펠리샤와 휴이의 이야기를 현재의 한국 관객에게 공감이 가도록 들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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