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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ita

에비타

BBCH홀의 미니멀한 에비타. 거대한 세트 없이 음악과 배우의 힘으로 밀고 나가는, 오페라 같은 흐름의 무대였다. 마이클 리와 유리아가 존재감과 정확한 리듬, 뛰어난 음악성으로 공연을 견인하며 명료하고 집중된 감동을 만들었다.

한국 초연:

2006

세계 초연:

1978

관람 년도:

2025

공연 극장명:

광림아트센터 BBCH홀, 서울

이 아카이브에 포함된 포스터는 기록 및 교육 목적에 한하여 게재된 것입니다. 

 

🔗 모든 이미지는 원 출처나 관련 기사와 연결되어 있으며, 저작권 소유권을 주장하지 않습니다.

리뷰

2025년 광림아트센터 BBCH홀의 에비타는 예상보다 훨씬 절제된 미니멀리즘으로 다가왔다. 얼마 전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가 이 극장에서 대형 하강 세트를 활용하며 홀의 기술적 여력을 충분히 보여주었기에, 이번 에비타의 선택은 더욱 분명하게 대비되었다. 거대한 계단도, 카사 로사다의 외관도, 커다란 ‘EVITA’ 장식도 없었다. 조명과 앙상블의 기하학적 동선, 한 면이 거울인 삼각 타워(안에서 수동으로 움직이는 구조), 그리고 발코니·런웨이·연단을 오가는 몇 개의 이동식 포디엄이 무대의 전부였다.

이 미니멀한 틀 속에서 이야기는 신화를 걷어낸 듯 담백하게 흘렀다. 정치적 인물은 “중립적”으로 그릴 수 없다. 그 삶은 수많은 사람들의 생과 역사의 기록과 얽혀 있기 때문이다. 에바 두아르테는 가난에서 시작해 야망과 본능, 그리고 타이밍을 읽는 능력으로 성장해 갔고, 여성과 빈민의 삶을 개선한 공적도 분명히 있다. 동시에 페론의 애인을 몰아내는 장면에서 보이듯 냉정함과 계산된 날카로움도 지니고 있었다. 창작진은 그녀를 신격화하지도, 악마화하지도 않고 복잡한 인간으로 그린다. 체 게바라를 연상시키는 ‘체’라는 이름의 내레이터는 아르헨티나 정치사를 잘 모르는 관객에게 필요한 설명을 제공하는 기능을 수행했고, 화려한 장식이 없어서 오히려 더 선명했다.

에비타는 전곡이 연결된 성스루(sung-through) 구조 덕분에 오페라에 가까운 흐름을 보였다. 말하듯 이어지는 레치타티보 같은 멜로디를 얼마나 정확하게 전달하느냐가 오히려 화려한 넘버보다 배우의 역량을 더 잘 드러낸다. 세트가 사라진 자리에서 ALW의 음악이 오롯이 드러났고, 그의 선율 감각은 무대 장치 없이도 극을 끌어갈 힘을 지녔다. 다만 아르헨티나 모티프(“Don’t Cry for Me Argentina”)는 조금 과하게 반복되었고, 반대로 탱고 장면들은 록과 군무 중심의 넘버 사이에서 개성 있는 리듬 변화를 주어 즐겁게 들렸다.

공연을 보다가 흥미로운 점을 발견했다. 마이클 리 배우와 유리아 배우는 지난해 노트르담 드 파리에서 함께 출연한 적이 있는데, 특히 마이클 리 배우는 그때와 마찬가지로 작품을 해설하는 역할이었다.

미니멀한 무대는 배우들의 강점을 더욱 크게 보이게 했다. 마이클 리 배우의 체는 세종문화회관의 잔향 속에서 명료함을 잃었던 노트르담 드 파리의 그랭구아르보다 훨씬 돋보였다. BBCH홀의 건조하고 명확한 음향 환경이 그의 리듬감과 움직임을 정확하게 살려주었고, 무대에 그가 등장하는 순간 텅 빈 공간이 다시 채워지는 느낌이었다. 한국어 딕션에는 약간의 영어 억양이 남아 있었지만 전달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유리아 배우는 한국 뮤지컬 씬을 대표하는 강력한 여성 보컬리스트답게 에바 페론 역에 잘 맞았다. 섬세한 정적 감정에서 폭발하는 고음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졌고, 넓은 음역과 탄탄한 저음이 인상적이었다. 노트르담 드 파리의 에스메랄다는 본능적인 관능미가 필수적인 배역인데, 이는 기술로 흉내 낼 수 없는 영역이다. 반면 에바의 진정성과 야망, 그리고 흔들리는 인간적 면모는 유리아 배우에게 훨씬 자연스럽게 맞아떨어졌다.

메갈디 역의 백인태 배우는 매우 쩅쨍한 테너로 중소극장에서 훌륭한 목소리와 연기를 보여주어 왔는데, 최근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에서 ‘오페라 도산’의 주역을 맡은 데 이어 상업 대극장급으로는 아마 처음에 가까운 무대였음에도 등장 순간 선명한 존재감을 남겼다. 분량이 적어서 아쉬웠지만 깨끗한 테너 톤과 안정적인 움직임을 보여주었고, 페론의 정부 역 은채현 배우도 짧은 등장 속에서 완성도 높은 감정선과 탄탄한 보컬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무대 이미지와 앙상블의 구성 방식은 2024–2025 리젠트 파크/웨스트엔드 에비타의 조형적 군무와 산업적 구조를 떠올리게 했다. 이는 단순한 우연이라기보다 최근 ALW 프로덕션들이 선호하는 글로벌 스타일—콘서트적 흐름, 스캐폴딩, 헤이즈와 좁은 빔 조명, 배우 중심의 서사—과 맞닿아 있다. 한국 에비타 역시 홀의 제약 때문이 아니라, 현재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미니멀리즘 미학을 따르고 있다고 보는 편이 정확하다.

900석대의 공연장에서 음향은 록 콘서트에 가까울 정도로 강하게 증폭되었다. 락 음악을 좋아하는 나는 즐겁게 들었지만, 함께 관람한 친구는 귀가 아프다고 했다. 앙상블은 소리가 과도하게 증폭되어 발음이 선명하지 않은 구간이 있었지만, 주연들의 보컬은 건조하게 뽑혀 나와 전체 균형은 의도된 듯 정리되어 있었다.

에비타는 화려함을 노리지 않았다. 명료함, 리듬, 감정에 집중한 공연이었다. 미니멀한 무대에서 음악과 배우들이 전체 구조를 떠받쳤고, 최근 대사 중심의 작품들을 이어 보다가 오랜만에 성스루 뮤지컬로 돌아오니 왜 이 형식을 좋아하는지 다시 깨달았다. 감정선이 끊기지 않고 음악이 곧 네비게이션이 된다. 거대한 프로덕션은 아니었지만, 명확하고 집중력 있으며 배우들의 강점이 최적의 배역에서 빛난 만족스러운 무대였다.

이 갤러리의 사진은 촬영이 허용된 경우 직접 촬영했거나, 소장 중인 프로그램·티켓·기념품을 촬영한 것입니다.

OFFICIAL VIDEO EMBEDS

[#에비타] 연습실 스케치

Rehearsal sketch of the Korean production of Evita, running November 7, 2025–January 11, 2026 at Kwanglim Arts Center BBCH Hall. Presented by BlueSt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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