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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milton

해밀턴

해밀턴은 호흡과 리듬으로 엮여있다. 빽빽한 가사는 명료하게 흘렀고, 역사는 긴박하고 생생했다. 엇박자 랩을 가미한 해밀턴은 짜릿했고, 제퍼슨은 매력으로 빛났으며, 조지 3세는 광기에 찬 왕처럼 분노했다. 단순한 탁월함을 넘어 — 타오르듯 역사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 불 속에서 피어난 하나의 불씨: 한국 라이선스 공연에 대한 바람도 생겼다.

202410_Hamilton

My original photo, included for archival purposes only

세계 초연 및 나의 관람 기록

세계 초연 연도:

2015

리뷰어 관람 연도:

2024, 2025

공연 극장명:

리처드 로저스 씨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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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나는 5일 동안 6편의 공연을 몰아보는 일정 속에서 해밀턴을 관람했다. 작품이 촘촘하게 구성되고 탁월하게 쓰였을 거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깊이 감동받을 줄은 몰랐다. 해밀턴은 단순히 역사에 음악을 붙인 작품이 아니라, 리듬으로 움직이는 감정의 짜임이었다. 오리지널 캐스트 음원을 들으며 가사의 구성에 감탄한 적은 있지만, 무대에서 직접 보니 총체적으로 가사의 의미와 긴장감이 피부로 느껴졌다.

공연은 해밀턴 인트로 곡 가운데 스포트라이트 아래 홀로 선 아론 버(Marc delaCruz)의 “I’m the damn fool that shot him”로 이어지면서, 모든 장면 위에 긴 그림자를 드리운다. 원인보다 결과를, 야망보다 후회를 먼저 보여주는 서사 구조의 완벽한 한 수다. 하지만 공연 내내 관객들은 웃는다. 랩 배틀처럼 벌어지는 버와 해밀턴의 토론에 웃고, 거만하게 등장하는 제퍼슨에 웃고, 해밀턴의 아들 ‘필립’이 웃으며 “Everything is legal in New Jersey”라고 말할 때 웃는다. 하지만 그 장면 직후 필립은 결투로 죽는다. 미란다는 비극을 숨기지 않는다. 오히려 리듬과 유머 속에 비극을 슬그머니 끼워 넣어, 감정의 충격을 배가시킨다.

‘해밀턴’(Trey Curtis)은 정확한 딕션과 날카로움을 겸비해, 종종 비트를 아주 미세하게 바꾸었다. 이렇게 치밀하게 안무와 리듬이 짜인 작품에서 이런 작은 변화는 공연에 신선함을 주었다. ‘버’는 놀라움 그 자체였다. 그의 랩 전달력은 완벽했고 — 유려하면서도 정밀했다. 내 선입견을 조용히 무너뜨렸다. 공연 전까지 그의 아시아계 배경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조지 워싱턴’(J. Quinton Johnson)은 젊어 보이는 얼터네이트 배우었지만, 깊은 목소리와 호흡으로 중량감을 실었다. ‘존 로렌스’(Jacob Guzman)는 2막에서 ‘필립 해밀턴’으로 돌아오며 어른과 소년의 모습을 함께 보여줬다. ‘토머스 제퍼슨’(Bryson Bruce)은 장면마다 재치와 타이밍으로 무대를 장악했고, ‘제임스 매디슨’(Ebrin R. Stanley)은 그들의 장면에 리듬과 무게를 더했다.

스카일러 자매는 서로 다른 캐릭터를 선보였다. ‘안젤리카’(Stephanie Umoh)는 힘과 절제를 모두 갖춘 가창을 들려줬다. ‘엘리자’(Morgan Anita Wood)는 부드러운 음색을 지녔지만, 윗입술을 많이 움직이지 않아서 귀를 기울여 들었다. ‘페기’(Cherry Torres)는 짧지만 임팩트 있는 등장과 함께 강한 가창력을 보였고, 2막에서 ‘마리아 레이놀즈’로 돌아왔다.

그리고 앙상블이 있었다. 대사가 없는 한 인물 — “The Bullet”로 알려진 — 이 무대를 가로지르며 존재감을 키워갔다. 마지막 결투 장면에서 해밀턴에게 총을 건넨 이 인물의 안무는 운명을 상징했고, 잊을 수 없었다.

Thomas Kail의 연출은 미니멀했지만 살아 있었다. 밝은 갈색 목재, 밧줄, 2층 구조, 그리고 회전 무대 — 하지만 결코 비어 보이지 않았다. 골목 건너편에서 봤던 Sweeney Todd처럼, 소품을 절제한 무대는 배우들의 몸이 서사를 짊어질 공간을 더 크게 만들었다. 앙상블은 도시, 전쟁터, 군중, 그리고 양심을 보여주는 역할을 했다.

‘조지 3세’(Thayne Jasperson)는 완벽한 코믹 연기를 보여줬다. Jonathan Groff의 영상을 너무 많이 봐서 다른 배우가 그만큼 할 수 있을지 걱정했지만, 그는 해냈다. 망상에 빠진 듯한 몸짓으로 뻣뻣하게 입장해, 모든 음절을 왕의 칙령처럼 또렷하게 발음했고, 등장할 때마다 폭발적인 박수를 받았다.

일정상 공연을 다시 보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아쉬움이었다. 이 작품은 한 번으로는 부족했다.

해밀턴, 한국에 올 수 있을까?

공연을 보기 전에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가사가 너무 빽빽하고, 미국식 표현에 깊이 뿌리내려 있다고 여겼다. 하지만 보는 동안 생각이 바뀌었다. 한국 래퍼들도 충분히 빠른 랩을 할 수 있다 — 어쩌면 더 빠르게 할 수 있다. 이 작품을 소화할 언어적 민첩성은 한국에도 있다. 문제는 속도가 아니라 내용을 어떻게 녹여내느냐이다. 해밀턴의 이야기를 한국어로 재현하려면 직역이 아닌 완전한 가사의 재구성이 필요하다.

이는 다른 라이선스 작품보다 훨씬 많은 비용이 들 것이다. 미란다가 작품에 얼마나 세심하게 관여하는지를 생각하면, 승인 과정에서 긴 협의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그 점이 제작사들에게 부담일 수 있다. 하지만 해밀턴을 혼자 쓴 미란다처럼, 한국에서도 힙합과 역사를 동시에 이해하는 작사가가 배우들과 긴밀히 작업한다면 가능하다고 본다. 랩은 입에 착 붙어야 할 수 있다. 대사가 입에 맞지 않으면 배우들이 바로 느낄 것이다. 한국판은 위에서 던져주는 대본이 아니라, 리듬 속에 가사가 스며드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한국은 유럽사를 바탕으로 한 뮤지컬을 수없이 올려왔고, 역사와 허구를 자유롭게 섞기도 했다. 그러나 해밀턴은 달라야 한다. 서브플롯을 새로 꾸며도 안되고, 이념적 핵심을 왜곡하는 일도 없어야 한다. 이 이야기는 국가의 건설과 자존심의 대가라는 실제 고통에 뿌리내리고 있다. 가사 작업에 필요한 것은 ‘번역’이 아니라 ‘다시 쓰기’다.

이탈리아 여행 중, 택시 기사가 힙합을 듣고 있었다. 로마에서 열린 Coldplay 콘서트에서, 수천 명이 영어 가사를 자막 없이 함께 외쳤다. 랩과 음악은 이미 세계 언어다. 리듬과 혁명에 익숙한 한국 관객이라면 해밀턴을 충분히 이해할 것이다.

해밀턴이 한국에 오지 못하는 이유는 실력이 없어서가 아닐 것이다. 아직 시도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작품을 정면으로 받아내고 새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는 아티스트들은 한국에도 이미 있다. 다만 그들을 아직 보지 못했을 뿐이다.

언젠가 그날이 온다면 — 해밀턴이 한국 무대에 맞게 재구성되어, 한국어로 공연되되 본질이 전혀 흐려지지 않는다면 — 나는 다시 보러 갈 것이다. 한 번만이 아니라, 여러 번.

이 갤러리의 사진은 촬영이 허용된 경우 직접 촬영했거나, 소장 중인 프로그램·티켓·기념품을 촬영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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