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ypsy
집시
Audra McDonald의 전율적인 로즈가 중심을 잡은 거친 뮤지컬 집시는, 리노베이션된 마제스틱 극장에서 팬텀의 화려함 대신 거친 질감을 택했다. Jordan Tyson의 치열한 준, Joy Woods의 화려하게 변모한 루이즈, Danny Burstein의 따뜻한 허비가 함께 만들어낸 이 무대는 집착, 망상, 부모의 야망이 남기는 상처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REVIEW
오페라의 유령 공연을 본 이후 처음으로 Majestic Theatre를 찾으며, 변모한 공간을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상징적이던 프로시니엄 아치와 샹들리에는 사라졌지만, 화려한 천장과 발코니, 몰딩 장식은 여전히 아름답게 보존되어 있었다. 예전에는 구조적 이유로 2층 관객석 한가운데 있던 세로 지지대가 리노베이션 후 없어졌다. 시야가 탁 트이며 공간이 한층 넓어 보였고, 극장의 고유한 품격은 그대로였다.
이번 공연을 선택한 이유는 리노베이션 이후의 마제스틱 극장을 다시 보기 위해서였지만, 무대에서 만난 집시는 극장 자체의 향수 이상의 것을 주었다. Audra McDonald의 로즈는 놀라웠다. 자녀를 스타로 만들기 위해 모든 것을 거는 집착과 광기를 목소리와 표정에 담아냈다. 그녀의 목소리는 강렬했고, 감정은 날것 그대로였으며, 무대 위 존재감은 압도적이었다. Jordan Tyson은 젊고 계산적인 준(June)을, Joy Woods는 어설프고 소심한 루이즈(Louise)가 무대 위 주체적인 스타로 변화하는 과정을 섬세하게 그려냈다. Danny Burstein의 허비(Herbie)는 따뜻하고 깊은 음색으로 캐릭터의 진중함을 더했으며, 세 사람의 "Together, Wherever We Go" 하모니는 이날 최고의 순간 중 하나였다.
집시의 줄거리는 로즈라는 어머니가 딸들을 스타로 만들기 위해 집착적으로 이끄는 이야기다. 초반에는 보드빌 무대를 전전하며 성공을 꿈꾸지만, 산업이 쇠퇴하자 공연 기회가 줄고, 결국 전혀 다른 세계인 벌레스크로 발을 들인다. 루이즈는 무대 뒤에서 무대의상을 만드는 일을 하던 중, 공연에 갑작스럽게 스트리퍼가 필요해지자 로즈가 딸을 자원시킨다. 로즈를 사랑해서 결혼하기로 한 허비는 환멸을 느끼고 떠나게 된다. 하지만 루이즈는 무대 위에서 우아함을 잃지 않으면서도 재능을 발휘하며, 점차 ‘집시 로즈 리(Gypsy Rose Lee)’로 변모한다.
Audra McDonald의 로즈는 단순한 딸을 무대에서 성공시키고자 하는 엄마가 아니라, 자신의 환상에 갇힌 채 헤어나오지 못하는 인물이었다. 로즈의 선택은 딸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위한 ‘대리 공연’이었다. "Rose’s Turn"에서 그녀의 붕괴는 압도적이었다. 그녀는 필요할 때는 강하게 벨팅을, 때로는 본능적으로 헤드 보이스로 전환하며 감정선을 자유자재로 조율했다. "Momma’s talkin’ loud, Momma’s doin’ fine! Momma’s gettin’ hot…"을 부른 뒤 무대 위를 비틀거리며 걸어 다니던 그녀는, 몇 번의 "Momma’s"를 의도적으로 생략했다. 마치 상상 속 관객에게 공연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진실을 토로하는 듯했다. 그것은 광기의 절규이자, 자신이 진정한 스타였음을 주장하는 목소리였다. 관객은 폭발적인 환호로 응답했다. 내가 이번 뉴욕 여행에서 본 열 편의 공연 중, 이 장면이 가장 강렬했다.
Jordan Tyson의 준은 피해자가 아니라 투사였다. 학교에 갈 수 없게 되었을 때 무너지지 않고 계산했고, 떠났다. 화가 났을 때의 과장되고 날 선 연기는 전적으로 설득력이 있었다. Joy Woods는 루이즈의 어색함과 불안함을 세밀하게 표현해, 그녀의 변화가 더욱 값지고 인간적으로 다가왔다. Danny Burstein의 허비는 따뜻하고 안정감 있는 존재였으며, 그가 떠나는 순간의 상실감은 그의 목소리와 진심에서 비롯되었다. "Let Me Entertain You"가 벌레스크의 조롱 섞인 연출로 돌아왔을 때, 그것은 단순한 웃음이 아니라 로즈의 꿈이 희화화되는 순간이었다.
무대는 보드빌 시대의 몰락을 거의 사실적으로 담아냈다. 시각적으로 화려하진 않았지만, 서사의 흐름에는 부합했다. 다만 이전에 The Phantom of the Opera의 장대한 무대를 보았던 나로서는, 절제된 디자인이 더욱 소박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이 절제가 이야기의 본질을 부각시키는 효과를 낳았다.
마지막 장면은 섬뜩하다. 루이즈는 어머니에게, 누군가 엄마 로즈을 밀어주었더라면 쇼 비즈니스에서 성공했을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겉으로는 위로처럼 들리지만, 실상은 로즈의 환상을 되비추는 말이다. 이제 루이즈는 부유하고 당당하며, 떠날지 무대에 남을지 선택할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되었다. 그 선택은 그녀의 몫이다. 현실에서 두 사람은 결별로 끝났지만, 무대 위에서는 관객이 원하는 감정적 균형이 주어진다.
집시는 불편함을 남겼다. 자녀의 자기 결정성을 희생시키면서까지 성공을 추구하는 양육은 정당화될 수 있는가? 사회는 여전히 로즈와 같은 부모를 ‘희생적’이라고 칭송하며, 그 대가를 외면한다. 반면, 느슨한 양육은 방임으로 간주된다. 공연은 답을 주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당연하게 여겼던 관점을 흔든다. 그것이 연극의 역할일지도 모른다.
한국 라이선스 가능성
이야기는 시대를 초월한다. 집착적인 부모, 어릴 때 나타난 재능, 생존 본능. 보드빌이라는 배경을 걷어내도 한국 관객에게 충분히 울림을 줄 수 있다. 한국 뮤지컬 신에는 루이즈·준·허비 모두를 세밀하게 연기할 수 있는 배우들이 존재한다. 관건은 폭발적인 성량과 감정 복합성을 동시에 지닌 로즈를 찾는 일이다. 인종적 캐스팅 고려는 필요 없지만, 부모의 야망과 세대 간 트라우마, 정체성의 싸움이라는 주제는 한국에서도 강하게 와닿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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