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ravinsky
스트라빈스키
스트라빈스키의 망명 시절을 다룬 소극장 뮤지컬. 두 명의 배우와 두 대의 피아노, 체스와 노래가 어우러진다. 8년의 망명, 8×8 체스판, 88개의 건반은 삶의 고투와 질서의 은유로 겹쳐진다. 성태준과 서영택은 역사와 상징이 교차하는 친밀한 무대를 완성한다.
관람 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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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연 연도:
2025
관람 연도:
2025
극장명:
대학로 TOM 2관
줄거리 & 리뷰
줄거리
이 작품은 러시아로 돌아갈 수 없는 망명 8년 차, 프랑스에서의 스트라빈스키를 배경으로 한다. 그는 발레 뤼스를 통해 세계적 명성을 얻었지만, 러시아 혁명 이후 고향의 재산이 몰수되면서 생계가 막막해졌다. 출판사와 후원자에게 악보를 들고 다녔지만 음악은 팔리지 않았고, 국제적 명성에도 불구하고 생활은 불안정했다.
절망에 잠겨 있던 이고르 앞에 그의 친구로 소개되는 슘이 등장한다. 슘은 음악으로 돈을 벌지 못하는 그를 조롱한다. 병원에서 걸려온 전화는 유모가 위독하다는 소식이다. 묘지 매장과 화장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서, 슘은 비용 때문에 화장밖에 할 수 없다고 말하지만, 이고르는 하루만 더 기다려 달라며 병원에 간청한다.
이 하루 동안 무대 위에는 수년간의 망명과 고투가 상징적으로 압축된다. 슘과 이고르는 불새, 페트루슈카, 봄의 제전 등 발레 뤼스 시절의 성공을 회상한다. 체스판 위의 8×8 격자와 피아노의 88건반은 모두 삶의 투쟁과 질서를 은유하는 장치로 등장한다. 슘은 봄의 제전을 실패라 조롱하지만, 이고르는 니진스키의 안무 탓이라 반박한다. 심포니를 제안하는 슘에게 이고르는 전쟁과 격변의 시대에 심포니는 구시대의 음악이라며 거절한다. 대신 사람들이 집에서 직접 연주할 수 있는 피아노곡을 만들려 하지만, 아마추어에게는 너무 어렵거나 본인에게는 불만족스러운 곡들뿐이다. 결국 페트루슈카를 피아노 편곡으로 완성하며 만족을 찾는다.
그러나 출판사와 후원자를 찾아간 자리에서 굴욕을 당한다. 귀부인은 그의 곡이 아닌 글라주노프의 곡을 청했고, 이고르는 허탈하게 빈손으로 돌아온다. 슘은 만약 음악이 진짜로 훌륭하다면 출판사에서 받아주었을 것이라며 잔혹하게 말한다. 이어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가 반송되어 돌아오고, 그 안에는 볼셰비키가 재산을 몰수했으며 자신이 조국에서 반역자로 불리고 있다는 소식이 담겨 있다. 다시 병원에서 전화가 오자 그는 결국 유모를 화장하기로 결정한다.
절망에 빠진 이고르는 슘의 부추김에 음악을 버리기로 한다. 슘은 러시아 책을 쓰레기통에 던지고, 이고르는 악보를 모아 불태우려 한다. 두 사람은 술을 마시며 현실을 잊으려 하지만, 새벽이 밝자 이고르는 다시 생각을 바꾼다. 이 모든 사건이 하루 안에 벌어지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수년간의 망명과 고투를 상징적으로 압축한 장치다. 그는 다시 음악을 이어가겠다고 결심하고 슘에게 함께 해 달라고 부탁한다. 슘은 어떤 미래가 오더라도 그렇겠다고 답한다.
리뷰
공연장에 들어설 때 어셔가 사진 촬영은 금지라고 알렸다. 그러나 자리에 앉고 나니 사진을 찍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근래에 본 무대 중 가장 작고 친밀한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무대는 세로 7 m, 가로 3.5 m 쯤 되는 크기로, 좌우에는 뒤를 향해서 두 대의 피아노가 놓여 있었다. 무대 위 왼쪽에는 뚜껑을 닫은 작은 그랜드피아노가 있었고, 위에는 메트로놈이 올려져 있었다. 양옆에는 스피커가 있었지만, 185석 규모의 여섯 줄 객석이라면 굳이 확성 장치가 필요하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두 대의 진짜 피아노가 놓여 있다는 점에서 기대가 더욱 커졌고, 그랜드피아노가 단순한 장식이 아니기를 바랐다.
공연은 백건 성찬경과 흑건 김동빈이 호흡을 맞추며 시작됐다. 두 사람이 만들어내는 통일과 변주는 한국이 뛰어난 피아니스트들을 얼마나 많이 배출했는지 다시금 느끼게 했다. 이어 성태준이 연기한 이고르 스트라빈스키가 무대 왼쪽에서 한숨 섞인 중얼거림과 함께 등장했고, 서영택이 맡은 슘은 객석 옆 계단을 내려와 내 자리 바로 옆을 지나 무대에 올랐다. 두 사람의 대화는 발레 뤼스 시절의 성공과 프랑스 망명 생활을 되짚으며 이야기를 풀어냈다.
두 대의 피아노가 서로를 받아주듯 조율될 때 정말 듣기 좋았고, 두 배우가 노래로 보여준 역량은 그 이상이었다. 성태준은 때로는 감정에 북받쳐 부드럽게, 때로는 끊어질 듯 노래했으며, 서영택은 힘 있고 명료한 목소리로 무대를 장악했다. 아담한 공간, 두 대의 피아노, 그리고 두 명의 뛰어난 가수 — 더 바랄 것이 없었다. 다만 서영택 특유의 매혹적인 비브라토가 빛나는 고음이 나올 수 있는 구간이 없는 것은 조금 아쉬웠다. 하지만 이만큼이나 안정적으로 중음역을 들는 것도 드문 경험이었다. 성태준 역시 흔들림 없는 발성과 아름다운 가성으로 무대를 이끌었고, 짧지만 두 사람 모두 안정된 춤 실력을 선보였다.
이 작품은 작곡가 성찬경, 대본과 가사를 쓴 김정민이 함께 만든 ‘발레 뤼스 3부작’의 마지막 편으로, 앞선 니진스키와 디아길레프의 맥을 잇는다. 스트라빈스키 속에서도 이들의 이름은 회상 장면과 전화 대화 속에 등장한다. 또한 봄의 제전 초연의 소동과 환불 소동, 디아길레프의 곤궁한 처지를 언급하며 과거와 현재를 교차시킨다. 이야기의 중심은 망명 시절의 고뇌이지만, 두 사람을 위한 피아노곡과 발레 전곡을 피아노로 편곡하는 장면 속에서 작곡가의 천재성이 드러난다. 동시에 전쟁과 사회적 혼란만이 아니라, 음악이 충분히 훌륭했다면 출판사에서 받아주었을 것이라는 슘의 냉혹한 말처럼, 그의 작품이 사람들에게 쉽게 다가가지 못한다는 불안도 함께 보여준다.
이 작품은 스트라빈스키의 신고전주의 시기를 배경으로 한다. 이미 도발적이라 평가받던 음악이었지만, 그는 러시아적 뿌리를 놓치지 않고자 했다. 작품은 그의 조국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니진스키, 디아길레프, 림스키코르사코프, 글라주노프, 어머니와 유모, 그리고 조국에 대한 서사가 펼쳐지며, 훗날 미국으로의 망명까지 암시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그는 다시 음악을 이어가겠다고 결심하지만, 구체적인 미래는 제시되지 않는다. 역사적으로 그의 삶은 이후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졌지만, 음악적 절정은 이미 발레 뤼스 시절에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이 공연은 두 명의 배우와 두 대의 피아노로 꾸며진 소극장이었지만, 주인공이 피아니스트였음을 생각하면 더없이 적절한 무대였다. 끝 부분에는 네 명 모두가 피아노를 함께 연주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이는 아마도 오디션 과정에서 배우들에게 큰 시험대였을 것이다. 나는 객석 왼쪽에 앉아 흑건반 파트를 가까이서 보았는데, 백건반의 연주도 보고 싶어 다시 오른쪽에서 관람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존 인물을 다룬 작품은 왜곡될 가능성이 있어 늘 조심스럽게 보게 된다. 그러나 이 공연은 사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고, 이고르의 감정적 표현에서만 작가적 상상력이 덧붙여졌다. 전쟁, 망명, 반역자로 불린 낙인, 생계의 어려움이라는 상황을 고려하면 그의 인물 설정은 설득력이 있었다. 그리고 러시아어로 ‘소음’을 뜻하는 슘(шум)이라는 이름은 실제 인명이 아닌 만큼, 단순한 친구라기보다 이고르의 내면적 동요를 의인화한 상징적 장치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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