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lliam & Wiliam’s Wil(l)iam
윌리엄과 윌리엄의 윌리엄들

아일랜드 위조 사건을 무대로, 《윌리엄과 윌리엄의 윌리엄들》은 명성을 원하는 아버지와 인정받고 싶은 아들이 ‘셰익스피어 필사본’을 조작하며 벌어지는 정체성과 저작권의 서사를 그린다. 소극장 규모의 응축된 드라마로, 재능과 인정, ‘자기 이름’의 의미를 의문을 던진다.
Musical Reviews › Korean Original › 2025
관람 년도:

이 아카이브에 포함된 포스터는 기록 및 교육 목적에 한하여 게재된 것입니다.
🔗 모든 이미지는 원 출처나 관련 기사와 연결되어 있으며, 저작권 소유권을 주장하지 않습니다.
초연 연도:
2023
관람 연도:
2025
극장명:
NOL 서경스퀘어 스콘 2관
줄거리 & 리뷰
줄거리
뮤지컬은 재판 장면으로 시작한다. 윌리암 사무엘 아일랜드(Wiliam Samuel Ireland, 윌리엄 영어 이름에 L이 하나만 있음)와 그의 아들 윌리암 헨리 아일랜드(Wiliam Henry Ireland)가 셰익스피어 작품 위조 혐의로 법정에 서 있다. 사무엘은 결백을 강하게 주장하지만, 헨리는 불안한 모습으로 조용히 앉아 있다. 헨리는 상상력이 지나치다는 이유로 여러 학교에서 퇴학당한 소심한 소년으로 묘사된다.
장면은 사무엘의 서재로 전환된다. 그는 스트랫퍼드어폰에이번으로 떠날 준비를 하고 있고, 헨리가 또다시 퇴학당했음을 알게 된다. 헨리는 여행에 동행하고, 셰익스피어의 생가를 방문하고 소네트 책 한 권을 발견한다. 헨리는 H라 불리는 정체불명의 신사가 건넨 빈 페이지에 셰익스피어의 감정과 문체를 상상하며 소네트 130을 필사하고, 셰익스피어의 필체로 서명한다.
집으로 돌아오자 사무엘은 그 종이에 대해 묻고, 헨리는 그것이 H가 준 셰익스피어의 진본이라고 말한다. 사무엘은 헨리의 재능을 인정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이 문서에 강한 호기심을 갖는다. 이후 헨리는 셰익스피어의 미공개 문서라며 편지, 차용증서, 여왕의 서신 등 다양한 위조 문서를 계속 만들어낸다.
작가로 성공하지 못했던 사무엘은, 셰익스피어의 목숨을 구한 아일랜드 가문이 그의 유언에 의해 미공개 문서를 얻게 되었다는 이야기 덕분에 갑작스러운 주목을 받는다. 이제 그의 글도 셰익스피어의 후광 덕분에 신문에서 호평을 받기 시작한다.
위조 의혹이 커지자, 사무엘과 헨리는 팬들에 의해서 재판에 넘겨진다. 사무엘은 모든 문서가 H에게서 왔다고 주장하지만, 정작 H를 직접 만난 적은 없다고 말한다. 재판 직전, 집에 한 사기꾼이 찾아와 자신이 H라고 주장하며 문서의 진위를 뒷받침할 추가 자료를 제시하고, 사무엘은 이를 법정 증거로 사용한다. 두려움에 사로잡힌 헨리는 자신의 이야기인 ‘보르티게른’라는 희곡을 집필한다. 그러나 사무엘은 그것마저 셰익스피어의 미발표 희곡이라며 진본 증거로 제출한다.
법정에서 판사는 “너무나 아름다운 셰익스피어 작품이니 더 이상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며 심리를 끝내려 한다. 그러나 헨리는 결국 모든 문서를 자신이 위조했다고 자백한다. 두 사람은 무죄 판결을 받지만, 헨리는 법정모독죄로 국외로 추방된다.
사무엘은 위조 문서로 계속 수익을 올리지만, 위조 증거는 점점 쌓여간다. 마지막 장면은 헨리가 어딘가 프랑스 시골에서 조용히 살아가며 언젠가 진짜 작가가 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만을 남긴 채 열린 결말로 끝난다.
리뷰
윌리엄과 윌리엄의 윌리엄들은 셰익스피어 위작 사건으로 알려진 아일랜드 부자 스캔들을, 문자 그대로의 역사극이 아니라 ‘저자권(Authorship)’과 인정 욕망, 그리고 대물림되는 결핍을 다루는 심리극으로 변주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명성과 사랑을 갈망하는 아버지와 아들이, 셰익스피어라는 이름을 차지하려 애쓰는 과정을 통해 “누가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될 자격이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재판이라는 골격, 이름의 철자의 유희에 얽힌 제목, 그리고 주인공들이 표현하지 못하는 언어를 대신 말해주는 해설자 H의 존재는 모두 강력한 개념적 장치로 시작한다. 그러나 극이 전개될수록 ‘무엇을 말하려는가’는 분명하지만 ‘어떻게 이야기로 구축할 것인가’는 충분히 정리되지 않은 채 남으며, 작품의 아이디어와 서사가 서로 다른 호흡을 갖는 장면들이 눈에 띈다.
헨리 아일랜드는 ‘상상력이 과하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반복적으로 쫓겨나는 겁 많은 소년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조용히 상상만 했다는 이유로 아이를 퇴학시키는 교사가 과연 있을까? 작품은 헨리를 ‘내면 세계가 이해받지 못하는 아이’로 설정하고, 그가 살아남기 위해 택한 유일한 전략이 ‘모방’이었다고 말하고 싶어 한다. 그의 비극은 실패 그 자체가 아니라, 세상이 그가 지닌 내면의 방대한 세계를 아무도 알고 싶어 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집 서재 곳곳에 남아 있는 낡은 투구, 별자리를 상상하게 하는 길위의 불빛, 헨리가 아끼는 소품들만이 그 세계의 흔적으로 남는다.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소품 ‘투구’는 헨리의 정서적 갑옷이다. 한때는 실용적이었으나 지금은 장식물로 전락한, 텅 비고 쓸모를 잃은 물건. 헨리는 자신이 아버지에게 그렇게 보인다고 믿는다. 숨고 싶을 때면 그는 투구를 눌러쓰고, 말하고 싶을 때면 ‘신사 H’가 대신 등장한다. 장치는 매우 분명하다. 헨리는 스스로를 표현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자신이 되었으면 하는 자아’를 만들어낸 것이다. H는 유창함, 자신감, 권위—헨리가 결코 허락받지 못한 모든 자질의 집합체다. 대사는 그를 명확히 또 다른 자아라고 명명하지 않지만, 연출은 이를 숨기지 않는다. H를 연기하는 배우가 판사·해설자·귀족·사기꾼 등 여러 역할을 동시에 맡으며, 관객에게 ‘부서진 자아의 파편’을 극적인 약호로 제공하기 때문이다.
영어 제목의 말장난—William, Wiliam, Wil(l)iam—은 곧바로 정체성과 진위에 관한 의문을 제기한다. 한국어 제목 “윌리엄과 윌리엄의 윌리엄들”은 오히려 조금 모호하지만, 일본 라이선스 공연 포스터에 표기된 William & Wiliam’s Wil(l)iam이 공식적인 영어 제목으로 보인다. 극 중에서는 “우리 집안 남자들은 대대로 ‘윌리엄(William)’이 아니라 ‘윌리엄(Wiliam, L이 하나)’이다”라는 설정이 제시되며, 빠진 철자가 ‘실수’가 아니라 ‘정체성’으로 전환된다. 그러나 영국에 소개된다면 Wiliam은 부자연스러운 철자이기에, 의도한 효과가 다소 어색하게 느껴질 수 있다. Wil(l)iam을 보면 셰익스피어보다 먼저 Black Eyed Peas의 윌아이앰(Will.i.am)이 떠오를 수도 있고, 실제로 일본 포스터를 처음 봤을 때 당연히 그 가수 생각이 먼저 들었다.
작품은 셰익스피어적 언어와 분위기를 차용하기 위해 익숙한 문장을 가사 속에 삽입한다. “선한 것이 악하고, 악한 것이 선하다(Fair is foul, and foul is fair)” 같은 대사들을 노래하며 여러 패러디적 파편이 나온다. 하지만 이 인용들은 셰익스피어의 텍스트를 비틀거나 재해석하는 장치라기보다는, 관객이 ‘아, 셰익스피어네’ 하고 인지하도록 배치된 표식에 가깝다. 언어가 질문을 확장하기보다는, 분위기 구축에 그친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작품의 감정축은 결국 아버지 사무엘과 아들 헨리의 관계에 있다. 사무엘은 아들의 노력을 노골적으로 깎아내리기보다는, “아무것도 하지 마, 숨만 쉬고 있어.”라고 말하며 침묵을 강요한다. 이 대사는 소리치는 것보다 훨씬 폭력적이다. 존재를 부정하지는 않지만, 존재의 흔적을 남기지 말라는 명령이기 때문이다. 헨리가 위조를 택한 이유는 야망 때문이 아니라 필사적인 생존 때문이었다. 실패자가 아니라 ‘불가능한 일을 해낸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셰익스피어 원고가 세상에서 극찬받자, 그 명성은 아들에게 오지않고 “셰익스피어의 후광을 입은 아버지”에게로 흘러간다. 헨리는 재능이 아니라 ‘운반체’가 된다.
법정 장면은 실제 역사보다 극적 허구에 가깝다. 판사는 “문서가 너무 아름다워서 의심할 여지가 없다”는 이유로 원본이라고 판단한다. 헨리는 본인이 위조했다고 자백하는데, 이는 더 이상 저자와 자아의 간극을 견딜 수 없기 때문이었다. 판결은 두 사람 모두를 무죄로 처리하면서도, 민사재판임에도 불구하고 헨리는 법정모독죄로 국외로 추방된다. 실제 사건에서는 조롱과 폭로로 스캔들에 쌓여 존재감이 무너졌을 뿐이고 이들은 법정에 서지 않았다는 점에서, 작품은 역사적 복잡성을 걷어내고 ‘법정 희곡’의 명확성을 택한 셈이다.
소극장에서 공연된 이 뮤지컬의 연주는 피아노와 바이올린만으로 구성된 편성이었으나, 음악은 서사보다 훨씬 단단했다. 리듬을 찍어내듯 밀어붙이는 곡과 재즈 스윙에 가까운 곡도 있어서, 극의 정체성은 오히려 음악 쪽에서 더 뚜렷이 확보된다. 멜로디는 기억에 남고, 피아노와 바이올린 2인임에도 덕분에 빈약하기보다 ‘친밀한 울림’을 주었다.
배우들의 기량은 고르게 높았다. 헨리를 연기한 배우는 저·중음역에서 질감이 따뜻했고, 고음으로 넘어갈 때도 흔들림이 없었다. 정확성만이 아니라 폭신하면서도 단단한 음색이 주는 섬세함이 인상적이었고, 대사 처리에서도 과장 없이 자연스러운 리듬을 지켰다. 사무엘은 가벼운 희극성이 섞인 인물로 설정되어, 냉혹함보다는 지독히 자기중심적인 불편함으로 연기되었다. 배우는 그를 악역도, 희생자도 아닌 일상의 인간으로 그려냈고, 그 점이 오히려 더 설득력이 있었다.
H를 연기한 배우는 가장 강한 무대 장악력과 공명력 있는 성량을 지녔으나, 콧소리와 섞인 가쁜 들숨이 자주 크게 들렸고, 특히 마지막곡의 마지막 음 바로 전에 들린 들숨이 프레이징을 끊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 배우의 시각적 구도는 명확했다. 사무엘은 아버지답게, 헨리는 아들답게, H는 – 배우의 해석으로 캐릭터를 바꿀 수 있기는 했지만- H로 보였다.
이 작품은 일본으로 수출되어 일본어 번안 공연까지 했다. 한국 창작진이 서구 문학의 거장을 소재로 한 작품을 만들 때, 단순한 언어적 번안이 아니라 문화적 우회(Cultural detour)가 생긴다는 것이다. 작품은 더 이상 ‘영국이 보존하는 셰익스피어’가 아니라, “영국 밖의 사람들이 셰익스피어를 어떻게 상상하는가”를 다룬다. 그것이 다소 어설플 수 있으나, 그 어설픔 속에는 정직함이 있다. 작품은 18세기 런던을 재현하려 하지 않는다. 대신 “셰익스피어란 이름이 오늘 우리의 욕망과 결핍에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묻는다.
공연 후, 선정된 소수 관객을 대상으로 무대 위 사인회가 진행되었다. 사인회는 서구권 공연에서는 로비에서 기부 행사(Broadway Cares/Equity Fights AIDS)에서 볼 수 있었는데, 새로운 재미를 주었다. 커튼콜이 끝난 뒤, 배우들이 다시 조명 아래 테이블에 앉는 순간, 무대에서 극은 사라지고, 사람들이 만나는 자리가 되었다. 이야기 속 위조와 고립, 익명성이 잠시 멈추고, “인정받고 싶다”는 인간적 욕망이 관객과 배우 사이에서 따뜻하게 실현된 셈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헨리는 법적으로 굴욕은 당했으나 파멸하지 않았으며, 프랑스 어딘가에서 어쩌면 처음으로 ‘자기 이름으로 무언가를 쓸 수 있는’ 사람이 된 것으로 보인다.
이 갤러리의 사진은 촬영이 허용된 경우 직접 촬영했거나, 소장 중인 프로그램·티켓·기념품을 촬영한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