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큐브 링크아트센터에 도착하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남성 관객이었다. 한국에서 본 어떤 뮤지컬보다 남성 비율이 높았다. 그 순간 깨달았다. 남자들이 뮤지컬을 싫어하는 게 아니라 그들이 흥미를 느낄 만한 이야기가 드물었던 것이다. 남자 관객들도 포토존에서 주저하지 않고 사진을 찍었고 원작 애니메이션과 줄거리에 대해 활발히 대화했다. 로비에 있는 TV 스크린에 무대 실황이 보여서 사진을 한 장 찍었다. 내부 촬영이 금지되어 있지만 로비 영상은 허용된 범위라 생각했다.

이 작품은 OD컴퍼니가 일본 호리프로로부터 라이선스를 받아 올린 공연이며, 무대 위의 정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일본적이다. 원작 제작사이자 저작권 보유사는 호리프로이며, 작품 자체는 미국 창작진(작곡 프랭크 와일드혼, 작사 잭 머피, 대본 이반 멘첼)에 의해 만들어졌지만, 오바 츠구미·오바타 다케시의 만화가 지닌 일본 특유의 서사 구조가 그대로 남아 있다. 라이토가 데스노트를 발견하고 시험 삼아 범죄자의 이름을 적는 장면도 매우 명확하게 그려져 처음 보는 관객도 그의 추락을 바로 이해할 수 있다.

무대 연출의 핵심은 LED 스테이지였다. 만화의 프레임을 실사로 옮긴 듯한 구성, 패널과 그리드, 빛의 폭발이 시각적 리듬을 만들어낸다. 바닥은 객석 쪽으로 기울어 있고 상부 프레임은 앞쪽이 높았다. 5열 중앙에서 감상했지만, 측면이나 2층에서도 투사 화면이 명확히 보일 것 같았다. 몰입형 무대는 아니었지만 대결이 명확히 보일 수 있도록 치밀하게 계산된 무대였다. 오케스트라 피트와 고정 프로시니엄 때문에 이머시브 무대를 만들기는 어렵겠지만, 전체 구도는 완벽에 가깝다. LED 패널이 객석을 감싸는 구조였다면 더욱 이상적이었을 것이다.

조명은 선명한 색감으로 지성을 강조했다. 엘의 추리 장면에는 푸른빛이, 라이토의 살인 장면에는 붉은 빛이 흐른다. 기울어진 바닥과 천장은 도덕의 균형이 무너진 세상을 시각적으로 표현한다.

음향 시스템은 완벽했다. 와일드혼의 오케스트레이션이 선명하게 들리고 리버브는 억제되어 명료도가 높았다. 중앙에는 짧은 아크형 스피커, 양옆에는 긴 라인이 배치되어 있었다. 중앙부의 일부 유닛이 제거된 듯 보였는데 이는 중음 간섭을 방지하기 위한 의도적 설계로 추정된다. 결과적으로 홀 전체의 밸런스가 매우 뛰어났다.

라이토 역의 임규형은 압도적이었다. 공명감 넘치는 목소리와 명확한 발음, 그리고 점차 오만으로 변하는 표정까지 완벽히 조율했다. 처음엔 정의감에 찬 청년이었으나 끝내 신이 된 듯한 존재로 변모한다.

엘 역의 산들은 완벽한 균형점이었다. 그의 목소리는 명료하고 기민하며 연기는 정교했다. 구부정한 자세, 비스듬한 시선, 냉소적인 반미소까지 완벽하게 구현했다. 마지막 순간 얼굴이 처음으로 완전히 드러나며 빛에 잠길 때 천사의 얼굴처럼 느껴졌다. 그전까지 그의 얼굴을 거의 보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아마 의도된 연출이었을 것이다. 두 사람의 대결 장면은 모두 백미였다. 특히 테니스 장면은 감정과 논리가 충돌하는 음악적 클라이맥스였다. 다만 엘의 들숨 소리가 몇 차례 들렸는데, 나는 들숨소리에 예민하다.

류크 역의 임정모는 다른 작품에서도 잘 했지만, 이 극에서는 특히 완벽하게 사신 그 자체로 존재했다. 커튼콜에서도 고개를 숙여 인사하지 않고 사신과 같은 태도를 유지한 점이 인상적이어서 미소를 짓게 만들었다.

이야기의 핵심은 매혹적이다. 그러나 만화가 지녔던 내면의 고뇌는 축약되었다. 라이토는 점차 변모하는 것이 아니라 첫 이름을 적는 순간 이미 타락한다. 데스노트의 구조상 실험은 존재하지 않는다. 생각이 곧 실행이 되는 순간 인간은 돌이킬 수 없다. 뮤지컬은 이 철학적 공포를 암시하지만 깊이 파고들지는 않는다. 빠른 전개를 위해 의도적으로 생략한 듯하다.

미사의 등장으로 긴장이 잠시 풀렸다. 그녀의 노래는 일부러 아이돌풍으로 설정된 것으로 보였는데 일본 TV 드라마의 감성과 닮아 있다. 그러나 그녀의 헌신적인 성격은 단순한 일본식 전형을 넘어 지킬앤하이드의 빅토리아 시대의 여성상과도 겹친다. 1막의 마지막 미사가 노트를 집어드는 장면은 극적이지만 예측 가능한 흐름이었다.

다시 라이토와 엘의 추리 대결이 관객의 시선을 끌어당긴다. 사망 시각, 방송 지역, 경찰 내부 정보 등으로 용의자를 좁혀가는 장면은 일본식 미스터리의 논리적 미학을 그대로 계승하며 추리가 예술로 승화되는 순간이다.

이 극을 전용 극장에서 공연한다면 얼마나 잠재력이 폭발할지 계속 상상했다. 그곳에서는 관객이 무대 안에 들어가 있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의 공연장에서는 오케스트라 피트와 고정된 프로시니엄 구조 때문에 무대가 관객석과 분리되어 있다. 만약 데스노트가 자체 전용 극장을 갖는다면, LED 패널이 프로시니엄을 넘어 객석까지 확장되고, 류크의 목소리가 객석 전체를 가로질러 울리며, 이야기의 도덕적 무게가 관객을 완전히 둘러싸도록 연출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브로드웨이의 어쩌면 해피엔딩은 제4의 벽을 일부러 단단히 유지해서 관객이 올리버와 클레어의 사적인 세계를 몰래 들여다보는 듯한 느낌이 들게 한다. 데스노트 역시 백 투 더 퓨처 같은 뮤지컬의 관객석까지 연결되는 조명 효과를 적용한다면, 관객은 이야기가 객석 주변에서 살아 움직이는 듯한 체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OD컴퍼니의 이번 프로덕션은 제한된 공간 속에서 하이테크 미니멀리즘을 완성해냈다. 두 개의 두뇌와 하나의 타락한 영혼의 체스보드 같은 무대였다.

데스노트는 여러 문화가 결합되어 만든 완성품이다. 일본 원작을 바탕으로, 미국에서 집필된 이 뮤지컬은 일본의 시각적 지성과 한국의 무대 연출 및 공연 정밀도를 통해 완성되었다. 임규형과 산들은 모두 훌륭했고, 와일드혼은 다시 한 번 자신의 장대한 음악 세계를 보여주었다. 이야기의 심리적 밀도가 빠른 전개 속에서 다소 희미해질 때조차, 음악과 무대 디자인은 긴장을 끝까지 유지시켰다.

극장을 나서며 생각했다. 라이토가 처음 이름을 적은 그 순간 그는 이미 타락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