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icago
시카고
앰배서더 극장에서 본 시카고는 기술적 장치 없이도 압도적인 무대를 보여줬다. 밴드를 노출시키고 절제된 연출을 활용해, 오히려 강렬한 시각적 인상을 남겼다. 특히 Amos와 Roxie의 연기는 깊은 여운을 남겼다.
REVIEW
시카고는 나에게 늘 Bebe Neuwirth의 작품으로 기억되었다. 캐스트 음반에서 그녀의 목소리로 처음 접했고, 나중에는 영화로 본 Renée Zellweger의 이미지가 깊이 각인되었다. 1924년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한 이 작품의 줄거리와 재판 결과는 나에게 충격을 안겼다. 살인이라는 중범죄가 오락의 소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은 오싹했다. 평소 추리소설을 즐기는 독자로서 정의가 실현될 때 느끼는 카타르시스가 있지만, 시카고는 그런 안도감을 의도적으로 주지 않는다. 그 불편함이야말로 이 작품의 천재성이다.
나는 2025년 브로드웨이의 앰배서더 극장에서 시카고를 관람했다. 이 극장은 좌석 수 1,089석으로 브로드웨이에서 가장 작은 공연장 중 하나다. 2024년에는 한국에서 라이선스 공연을 훨씬 큰 극장(1,724석)에서 관람한 적이 있었기에, 두 프로덕션을 비교하고 싶었다. 결과적으로, 앰배서더 극장의 아담한 규모는 이 작품에 완벽하게 어울렸다. 시카고는 화려한 무대 장치가 아닌, 정확성, 명료함, 직설적 표현으로 승부하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움직이는 세트나 복잡한 기계 장치 없이도, 시카고는 배우의 몸, 조명, 그리고 브라스 사운드만으로 충분히 살아 숨쉰다.
무대 위에 그대로 드러난 밴드는 이 공연의 핵심이다. 트럼펫, 트롬본, 색소폰, 밴조, 업라이트 베이스, 그리고 최소한의 드럼으로 구성된 이 브라스 중심의 밴드는 매 넘버마다 강렬한 펀치를 날린다. 낭만적인 스트링 섹션은 없다. 대신 날 선 냉소가 있다. 지휘자는 무대 한가운데에 위치해 있으며, 단순한 연주자를 넘어 연기에도 참여한다. 마치 진짜 카바레에서처럼, 밴드와 극 사이를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한다.
한국 프로덕션에서도 느꼈지만, 가장 인상 깊었던 건 무대 연출이었다. 미니멀하고 간결한 무대인데도, 믿기 힘들 정도로 현대적이고 세련되게 느껴졌다. 처음에는 이 스타일이 원작 무대에서 비롯된 줄 알았지만, 알고 보니 현재의 무대는 1996년 브로드웨이 리바이벌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당시 Encores! 시리즈의 콘서트 형식으로 출발해 브로드웨이로 옮겨졌고, 그 콘서트 형식을 그대로 유지한 것이었다. 샹들리에, 바리케이드, 헬리콥터가 날아다니던 시대에 시카고는 과감하게 모든 것을 걷어냈다. 트랩 도어도, 하강하는 세트도, 숨겨진 기계 장치도 없다. 무대는 중앙 밴드 스탠드를 중심으로, 양 옆에 설치된 접이식 사다리와 무대 중앙의 작은 문만으로 구성된다. 간결하고 재치 넘치는 연출이 돋보이는 구성이며, 시대를 초월한 고전처럼 보이면서도 여전히 신선하고 앞서 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
Sophie Carmen-Jones는 Velma Kelly 역을 인상적인 보컬 자신감과 몸짓의 여유로 소화해냈다. 때로는 프레이징을 절제하면서 모음 소리를 약간 더 길게 끌고 자음은 부드럽게 처리하면서 가사의 날카로움이 살짝 흐려졌다. 그 덕분에 그녀의 연기는 매끄럽고 은근한 긴장감을 지닌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특히 “Cell Block Tango”의 “Cicero” 구간에서는 그녀의 움직임이 매우 정교하고 또렷하게 다가왔다.
재소자들 가운데 Kristen Faith Oei(Hunyak)는 헝가리어 독백을 놀라울 만큼 명확하고 진심 어린 감정으로 전달했다. 넘버의 시작을 연 무용수 — Liz 역의 Mikayla Renfrow — 는 압도적인 분위기로 무대를 장악했고, “knife ten times”의 June 역의 Celina Nightengale의 순진한 듯한 말투 덕분에 웃음을 자아냈다.
Haley Croman의 Roxie Hart는 처음에는 평범하고 이웃집 소녀 같은 이미지로 시작했다. 하지만 노래가 이어지며 표정이 점차 바뀌었고, 매끄럽고 자연스러운 자신감으로 관객을 유혹했다. Roxie와 Velma의 프레이징은 특히 정교하게 맞아떨어졌는데, 두 배우가 꾸준히 함께 공연하며 다져진 호흡 덕분일 것이다. 한국의 라이선스 공연에서는 멀티캐스팅과 짧은 공연 준비 기간으로 인해 이런 조화가 어렵기도 하다.
Max von Essen은 Billy Flynn 역으로 날렵한 수트를 입고 무대에 등장했으며, 쿨하고 침착한 존재감을 뿜어냈다. 예상 외였던 건 그의 노래 방식이었다. 그는 거의 모든 곡을 입을 거의 벌리지 않고 긴 프레이즈를 소화하면서도, 모음 하나하나를 정확히 불렀다. Roxie와 함께하는 인형극 장면에서도 입을 거의 움직이지 않으면서 완벽하게 연기했다. 과장된 캐릭터가 아니라, 정말로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을 것 같은 설득력 있는 변호사처럼 보였다.
Rema Webb은 Mama Morton 역을 힘 있고 안정감 있게 그려냈으며, J. London은 Mary Sunshine으로서 놀라운 반전을 선사했다. 그의 소프라노는 완벽했고, 관객 대부분이 정체를 눈치채지 못했다. 가발이 벗겨지는 순간 이미 나는 박수를 치고 있었고, Billy가 현실은 보이는 것과 다를 수 있다고 말하자 객석은 탄성과 함께 폭소로 뒤덮였다.
Raymond Bokhour(Amos Hart)는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그의 존재감은 점점 드러났고, 그가 애쓸수록 절망적인 상황으로 빠져드는 것을 잘 보여주었다. “Mister Cellophane”은 절제된 감정으로 가장 큰 박수를 받았다. 곡이 끝난 후, 자신도 Exit Music을 달라고 요구했을 때 오케스트라는 가만 있었지만, 관객들이 대신 환호로 응답했다. 그는 이 공연에서 유일하게 정직한 인물이었고, 관객은 그에게 가장 따뜻한 박수를 보냈다. 각본에 없던 순간이었지만, 너무나 자연스럽고 맞는 장면이었다.
"Mister Cellophane"에서 앙상블이 Amos를 등지는 블로킹은 상징적이었다. 그는 단순히 무시당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보이지 않는 존재로 다뤄진다. 시카고는 이러한 브레히트식 연출에 능하다 — 술 취한 배심원을 보여주면서 정의 구현을 조롱하고, 앙상블이 “우” “아” 같은 감탄사로 리듬을 타며 음악의 일부가 되는 장면들이 그렇다. 소품을 숨겨진 장치가 아닌 배우들이 무대 위에서 직접 들고 오는 장면까지, 이 공연은 연극적 장치가 드러나는 순간을 오히려 즐긴다.
배우들을 넘어서, 내가 주목한 것은 앙상블의 연령대였다. 브로드웨이 무대에는 30대 이상으로 보이는 베테랑 배우들이 많았고, 그들의 성숙한 무게감이 무대에 깊이를 더했다. 한국에서는 업계 구조상 앙상블이 상대적으로 젊은 편이다. 노조나 장기 계약이 없어, 주연급으로 빨리 올라가지 않으면 장기간 무대에 서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는 실력의 차이가 아니라 지속 가능성의 차이다.
브로드웨이는 또한 점점 더 다양한 인종, 연령, 체형, 배경의 배우들을 포용하고 있다. 그 다양성은 한국 공연계의 비교적 획일적인 캐스팅과 대비되어 더욱 신선하고 좋은 환경으로 보였다.
한국에서 시카고를 보고 난 후, 아들에게 “cellophane”이라는 단어가 왜 Amos의 노래에 쓰였는지를 설명했었다. 1920년대에는 고분자를 합성하기 전이라서, 투명하면서도 반투과성인 소재는 천연 고분자인 셀로판이 거의 유일했고 매우 비싼 소재였다. 인간 크기만큼 큰 셀로판을 만들려면 정말 많은 돈이 들었을 것이다 — 당시로 치면 정말로 5,000달러쯤 되었을지도 모른다. 아들은 "아무도 그런 거 신경 안 써"라고 말했지만, 그래도 혹시 궁금할 수도 있으니 여기 적어본다. 요새 미술 시간에 쓰는 값싼 셀로판지와는 완전히 다른 물건이니까.
전체적으로 시카고는 어떤 화려한 장치 없이도 충분히 눈부셨다. 이 작품은 테크놀로지를 바탕으로한 화려함보다 절제, 무대장치보다 퍼포먼스를 기반으로 한다. 앰배서더 극장의 낮은 무대와 촘촘한 객석은 오히려 그 밀도를 높였다. 관객을 놀라게 하는 모든 순간은 기계나 장식이 아닌, 몸과 음악, 조명의 정밀한 움직임에서 나왔다. 이것이야말로 극의 본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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