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 in Hanbok
한복 입은 남자

뮤지컬 한복입은 남자는 장영실의 생애와 역사적 공백에 상상력을 덧붙인 작품이다. 세종과 장영실의 관계는 설득력 있게 그려지지만, 가마 사건 이후 장영실이 이탈리아에서 발명을 이어갔다는 2막의 설명이 반복되며 피로감을 준다. 무대는 야심찬 기술적 시도로 가득 차 있고,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은 순간은 고향을 향한 그리움을 담아낸 장면이었다.
Musical Reviews › Korean Original › 2025
관람 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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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연 연도:
2025
관람 연도:
2025
극장명:
충무아트센터
줄거리 & 리뷰
시놉시스
1막
현재
다큐멘터리 프로듀서 진석은 숲속에 낡은 밴을 개조해 혼자 사는 강배를 찾아온다. 진석은 이탈리아 여성 엘레나 코레아에게서 전달받은 원고의 번역을 강배에게 부탁한다. 국어학 박사인 강배는 과거 장영실에 관한 마 교수의 논문과 연루된 사건 이후 학계를 떠나 은둔 생활을 하고 있었고, 처음에는 이 제안을 단호히 거절한다.
그러나 강배는 원고의 마지막 장에 실린 한 장의 그림을 보고 마음을 바꾼다. 루벤스의 「한복 입은 남자」로 알려진 그 그림에 이끌려, 그는 원고를 읽기 시작한다.
이후 진석은 추가 정보를 얻기 위해 마 교수에게 연락한다. 마 교수는 처음에는 방어적인 태도로 더 이상 이 문제를 파고들지 말라고 경고하지만, 원고를 직접 본 뒤에는 깊이 빠져든다. 그는 루벤스의 그림이 과거 거장들의 작품을 모사하던 미술사적 관행 속에서 이해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장영실과 루벤스 사이의 시간적 간극이 설명될 수 있다고 말한다. 여러 언어로 쓰인 이 원고는 과거 마 교수가 제기했다가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질문들을 다시 불러낸다.
조선
이야기는 조선 초기로 옮겨간다. 장영실은 총명함 때문에 곤장을 맞는 노비 아이로 등장한다. 성장한 뒤에도 그는 비차(飛車)라 불리는 비행 장치 모형을 만드는 등 기계 실험을 이어가다 곤장틀에 묶인다. 신분의 한계를 한탄하는 누이와 만복이 형과 달리, 장영실은 희망을 잃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만든 망원경을 누이에게 건네며 언젠가 별에 닿고 싶다는 꿈을 이야기한다.
한편 세종은 내부의 반발과 외부의 압박 속에서도 백성을 위한 한글 창제와 과학 진흥을 결심하고, 새로운 발명품을 찾기 위한 경연을 연다.
장영실은 자동 물시계 자격루(自擊漏)를 제작한다. 이를 지켜본 이는 만복이 형과, 바라보는 것만으로 곧바로 작동 원리를 이해하는 한 소년뿐이다. 장영실과 소년은 과학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왕의 끝없는 호기심을 두고 가볍게 농담을 주고받는다.
장영실의 자격루는 세종의 눈길을 끈다. 장영실이 궁으로 불려 왔을 때, 이전에 함께 있던 소년이 다시 등장하며 그가 세종의 딸, 즉 공주였음이 밝혀지고 장영실은 잠시 놀란다.
세종은 장영실의 재능을 인정해 먼저 평민 신분을 허락하고, 발명이 계속 이어지자 마침내 그를 양반으로 승격시킨다. 만복이 형 또한 노비 신분에서 벗어나 평민이 된다. 그러나 장영실의 출세와 달리 그의 누이는 여전히 노비로 남아 기생의 삶을 강요받는다.
병판대감과 국내외 고관들은 장영실의 빠른 출세에 반감을 품는다. 병판대감은 외부 사신과 결탁해 자신의 아들이 좌천된 데 대한 분노를 드러내며, 아들과 공주의 혼인을 통해 권력을 되찾으려 한다. 장영실의 누이는 이 음모를 알리려 하지만 병판의 사람들에게 붙잡힌다.
장영실이 양반이 되고 영향력이 커질수록, 그를 제거하려는 움직임도 거세진다. 세종은 장영실에게 왕의 수레를 제작하라는 명을 내리고, 이후 수레가 부서지자 이를 빌미로 장영실은 곤장을 맞고 하옥된다.
옥중에서 장영실은 왕을 그리워하고, 세종은 은밀히 그를 찾아온다. 왕은 장영실과 나라를 지키기 위해 그를 죽은 것으로 처리하고, 정화대장이 이끄는 함대를 통해 조선을 떠나게 할 것을 결정한다.
장영실이 배로 향하는 도중 추격하던 자객들이 접근하고, 만복은 장영실이 떠날 시간을 벌기 위해 목숨을 희생한다. 장영실은 탈출에 성공하고, 공식적으로 역사에서 지워진 채 조선을 떠난다.
2막
이탈리아
장영실은 정화대장과 또 다른 환관 천일과 함께 세종대왕의 선물을 들고 로마에 도착한다. 교황의 환대를 받은 이들은 이탈리아 학자 파올로 달 포초 토스카넬리와 협력해 여러 기계 및 천문 장치를 개발한다. 이 중에는 시간이 흐르며 어긋난 부활절 날짜를 바로잡는 개정 달력도 포함되어 있다. 이들은 조선으로 돌아갈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왕이 하사한 선물들을 판매한다.
장영실은 완성된 달력을 교황에게 바치고, 비차와 같은 추가 발명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교황이 하늘을 날며 세상의 끝을 보고 싶다고 말하자, 장영실은 지구가 둥글며 태양을 중심으로 움직인다고 설명한다. 이 발언은 교황의 분노를 불러일으키고, 일행은 즉시 쫓겨난다. 토스카넬리는 다음 날 모두 참수될 것이라며, 교황청과 대립 중인 피렌체로 도망칠 것을 권한다.
피렌체에서 장영실은 다수의 발사체를 사용하는 무기 신기전(神機箭)을 개발한다. 실험 도중 한 소년이 즉시 작동 원리를 파악하고 지연 폭발의 위험을 경고해 장영실을 구한다. 교황군이 도시를 공격하자 장영실의 무기는 실전에 투입되어 피렌체를 지켜낸다.
피렌체의 통치자는 장영실 일행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배를 마련해 주겠다고 제안한다. 그러나 장영실은 자신을 제거하려 했던 세력이 여전히 권력을 쥐고 있음을 우려해 이탈리아에 남기로 결심한다. 정화대장과 나머지 일행은 그를 남겨둔 채 떠난다.
세월이 흐른 뒤, 늙은 장영실이 홀로 앉아 졸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한 소년이 그를 스케치하고 있고, 깨어난 장영실이 그림에 대해 묻자 소년은 한복을 입은 그의 모습을 그리고 싶다고 말한다. 장영실은 소년 레오나르도에게 자신의 비망록 마지막 장에 그림을 하나 더 그려 달라고 부탁한다. 소년은 망설이다가, 장영실이 곧게 선 채 포즈를 취하자 그림을 완성한다.
장면이 닫히며, 장영실은 구부정한 허리로 천천히 홀로 빛을 향해 걸어간다.
현재
현대 서울에서 진석은 외교적 문제를 우려해 다큐멘터리 제작을 중단하라는 지시를 받는다. 엘레나 코레아는 잠시 구금되었다가 풀려나고, 진석을 만나 왜 이 자료가 문제가 되는지 의문을 제기한다. 엘레나는 자신이 안토니오 코레아의 후손임을 밝히며 가문의 역사와 비망록을 연결 짓는다.
마 교수는 자신을 음해하려는 소문에 시달리다 결국 프로젝트에서 완전히 손을 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석은 다큐멘터리를 공개하지만, 대중의 반응은 회의적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진석은 더 많은 진실을 찾기 위해 피렌체로 떠나려 공항에 서 있고, 그 곁에 장영실의 모습이 조용히 미소 지으며 나타난다.
리뷰
장영실은 14세기 말에 태어나 조선 전기와 중기를 대표하는 과학자였다. 혼천의, 자격루, 해시계 등 그의 발명은 오늘날까지도 잘 알려져 있으며, 세종대왕 치세 아래에서 노비 신분에서 관직에 오른 사실 또한 역사적 기록으로 남아 있다. 왕의 수레가 부서진 사고 이후 그의 행적이 사료에서 사라졌다는 점 역시 사실이다.
뮤지컬 한복입은 남자는 이러한 역사적 공백 위에 상상력을 덧붙인다. 원작 소설과 마찬가지로, 이 작품은 루벤스의 그림 「한복 입은 남자」가 장영실의 초상이라는 가설을 출발점으로 삼고, 수레 사고 이후 장영실의 삶이 조선을 넘어 이탈리아까지 이어졌다는 서사를 구성한다. 기록이 멈춘 지점이 곧 상상의 시작점이 되는 방식이다.
사실과 허구가 뒤섞인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설명을 덜고 관객의 상상에 맡길 수도 있고, 논리를 촘촘히 쌓아 모든 비약을 설명할 수도 있다. 한복입은 남자는 후자를 택한다. 이 작품은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오히려 지나치게 친절하다. 장면마다 맥락이 설명되고, 인물의 동기와 전환이 분명히 제시된다. 이야기를 따라가는 데에는 어려움이 없지만, 그 성실함이 누적되며 피로로 전환되기도 했다.
1막은 조선과 현대 한국을 오가며 진행된다. 이중 시간 구조는 긴장감을 만들어내고, 세종이 총애하던 과학자에게 이후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한다. 특히 세종과 장영실의 관계는 이 작품의 정서적 중심이다. 신뢰와 인정, 보호로 이어지는 두 사람의 관계는 설득력 있게 그려진다. 장영실이 죽은 것으로 처리되어 조선을 떠나는 장면은 묵직하게 다가온다. 15세기 조선에서 고향을 떠나는 일은 감옥에 갇히는 것만큼이나 가혹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2막은 분위기와 공간이 급격히 전환된다. 로마와 피렌체는 유럽식 의상과 무대미술로 표현되고, 언어 장벽은 뮤지컬이라는 장르적 관습 속에서 자연스럽게 생략된다. 장영실은 비교적 빠르게 유럽의 과학 활동에 편입되며, 이 지점부터 서사는 점점 확장된다.
이 과정에서 어린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등장하고, 그가 한복을 입은 장영실을 그리는 설정이 제시된다. 작품은 이 만남을 위계가 아닌 ‘호기심의 교류’로 따뜻하게 그린다. 다만 다 빈치의 등장은 필연적으로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그는 만남과 사유를 집요하게 기록한 인물이며, 그의 유산은 기록 그 자체와 분리될 수 없다. 이 작품이 허구임을 분명히 하고 있음에도, 이러한 연결은 장영실의 여정에 집중하기보다는 설명되지 않는 질문으로 시선을 돌리게 만든다.
음악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장영실과 세종의 듀엣이다. 고은성 배우는 넓은 음역대와 안정적인 저음, 단단하면서도 살짝 칼칼한 음색으로 장영실을 설득력 있게 구현한다. 그의 발성은 극의 정서를 명확하게 전달하며, 역할의 중심을 단단히 잡아준다. 이규형은 편안하고 안정적인 연기를 보여주며, 두 사람의 화음은 자연스럽고 균형감 있다.
객석 음향은 매우 명료했다. 잔향을 과도하게 사용하지 않아 가사가 잘 들렸고, 1막에서는 전통 음악 어법을 차용한 편곡들이 무리 없이 녹아들었다.
무대는 야심 차게 설계되었다. 중간 깊이에 설치된 LED 스크린은 공간을 효과적으로 분할하며, 그 뒤에서 다음 장면을 준비할 시간을 만들어준다. 여러 개의 기둥 구조물은 좌우로 이동하며 공간을 재정의한다. 특히 중간 스크린이 열리며 뒷무대의 완성된 장면이 드러나는 순간은 시각적으로 인상적이었다. 마지막 장면에서는 별자리 이미지가 객석 전체를 채우며, 장영실의 과학적 유산과 시간의 흐름을 시각적으로 연결한다.
앙상블의 에너지도 강하다. 1막에서는 민요를 바탕으로 한 안무가 사용되고, 2막에서는 추기경, 군인, 시민으로 변주되며 유럽식 춤을 선보인다. 다만 대형 소품의 잦은 이동은 무대를 다소 복잡하게 만들며, 작품이 너무 많은 장면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들게 한다.
서사적으로 이 작품의 장점은 곧 한계가 된다. 공주 캐릭터나 현대 다큐멘터리 서사는 긴장감을 부여하기 위해 삽입된 듯 보이지만, 갈등이 밋밋하게 해소되며 명확한 결과로 이어지지 않는다. ‘외교적 문제’라는 설정 역시 이유가 충분히 설명되지 않아, 극적 긴박감을 위한 장치로만 남는다.
결국 한복입은 남자는 야심으로 정의되는 작품이며, 그 야심이 통제되지 않을 때 발생하는 피로를 함께 안고 있다. 이는 상상력의 부족이 아니라 비율의 문제다. 작품은 많은 것을 말하려 했지만, 관객을 신뢰하고 침묵과 생략으로 채우는 것 역시 유효한 서사의 도구가 될 수 있음을 다소 간과한 듯하다.
가장 인상 깊게 남는 것은 오히려 친숙한 이야기였다. 신분의 제약 속에서도 지식을 추구한 과학자, 그리고 그것을 보호한 왕. 이미 여러 매체에서 다뤄진 관계이지만, 이 작품은 그 서사를 국경과 시간을 넘어 확장하려 한다. 지금은 다소 느슨해 보이지만, 문화적 감수성과 절제를 바탕으로 다듬어진다면 더욱 깊은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가슴에 남은 장면은 ‘ᄃᆞᆺ’이라는 옛말, 곧 ‘그리웁다’가 노래로 사용된 대목이다. 서사가 먼 곳으로 뻗어갈수록, 고향을 그리워하는 이 깊은 열망이 가장 선명하게 와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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