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ngryeon
홍련

저승의 재판으로 시작된 이야기는 점차 산산이 부서진 기억을 되찾는 과정으로 드러난다. 설화 「장화홍련전」을 바탕으로 한 이 작품은 억울한 죽음의 이야기를 트라우마와 죄책감을 넘어 스스로를 용서하고 평안을 찾는 치유의 서사로 바꾸어 놓는다.
Musical Reviews › Korean Original › 2026
관람 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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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연 연도:
2024
관람 연도:
2026
극장명:
충무아트센터 중극장 블랙
줄거리 & 리뷰
줄거리
홍련은 저승의 재판장인 천도정으로 소환된다. 그녀의 손목은 붉은 천으로 된 수갑, 혹은 족쇄 같은 것으로 묶여 있다. 재판장은 바리 공주이며, 강림·월직·일직 세 명의 저승 차사가 그녀를 보좌한다. 바리 공주는 홍련의 재판이 천도정에서 열리는 139,998번째 재판이자 마지막 재판이라고 말한다.
강림 차사가 홍련의 죄목을 읽는다. 지상에서 쌍둥이 언니 장화가 외간 남자의 아이를 임신하고 유산한 뒤 죽었고, 홍련 역시 언니를 따라 죽었다는 것이 세간의 이야기라고 한다. 그러나 홍련은 그런 소문을 부정한다. 그녀는 오히려 자신이 아버지 배무룡을 베어 죽였고, 이복 남동생 장쇠의 사지를 훼손했다고 주장한다. 언니 장화는 억울하게 죽었다고 말한다.
강림이 관아에 가서 호소해 보지 않았느냐고 묻자 홍련은 비웃듯 대답한다. 힘없는 자신의 목소리를 세상은 살아 있을 때는 듣지 않았고, 죽은 뒤에야 겨우 관심을 보인다는 것이다.
바리 공주는 홍련에게 왜 삼도천을 건너지 못하고 머물러 있느냐고 묻는다. 미련이 있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이다. 그러나 홍련은 자신도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하며 재판 자체를 비웃는 태도를 보인다.
바리 공주는 홍련의 아버지 배무룡의 영혼을 불러낸다. 강림 차사가 배무룡에게 빙의되는데, 그는 홍련이 자신의 딸이 아니라 요물이라고 주장한다. 홍련은 이 상황마저 조롱한다.
이어 월직 차사가 배무룡에게 빙의한다. 바리 공주는 재판에서 홍련이 아니라 다른 인물이 죄인이라면 홍련을 되살릴 수도 있겠느냐고 묻는다. 그러나 배무룡은 당황하며 죽은 딸이 아니라 아들 장쇠의 팔다리를 다시 붙여 달라고 말한다. 바리 공주는 자신은 죽은 자들의 세계만을 다스릴 뿐, 살아 있는 사람의 운명을 바꿀 수는 없다고 답한다.
홍련은 바리 공주를 조롱하기 시작한다. 바리 공주의 이름 바리데기가 ‘버려진 아이’라는 뜻이라는 것을 언급하며 그녀의 과거를 비웃는다. 바리 공주는 아들을 원하던 아버지 오구대왕에게서 일곱 번째 딸로 태어나 버려졌고, 이후 아버지가 중병에 걸리자 다시 불려와 지옥에서 생명수를 구해 아버지를 살린 인물이다.
강림은 홍련이 재판장을 공격하는 모습을 보고 재판을 중단하자고 한다. 그는 홍련의 영혼이 이미 여러 조각으로 갈라지고 있으며, 계속 자극하면 악귀가 될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그러나 바리 공주는 이 재판이 다른 사건들과 다르다며 계속 진행한다.
그리고 바리 공주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버려졌던 딸이 결국 아버지를 살린 것은 복수이기도 했으며, 그 복수의 끝은 자비였다고 말한다. 그러나 홍련은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 감동한 오구대왕이 큰 부를 약속했지만, 바리 공주는 그것을 거절하고 저승으로 와 영혼을 인도하는 신이 되었다.
바리 공주는 다시 홍련에게 묻는다. 왜 아버지를 죽였느냐고. 홍련은 계모 허씨 부인이 모든 비극의 원흉이라고 말한다.
바리 공주는 장화가 남긴 글을 읽기 시작한다.
“동생 홍련이 구천을 떠돌고 있다면 전해주세요. 네가 나를 끔찍하게…”
홍련은 말을 끊으며 씁쓸하게 말한다.
“그래, 끔찍했겠지.”
과거의 기억이 드러난다.
계모 허씨 부인이 홍련을 괴롭히면 언니 장화가 대신 막아섰고, 그 이후로 계모의 표적은 장화가 된다. 특히 장화의 혼인을 앞두고 허씨 부인은 계략을 꾸민다. 장쇠가 장화와 홍련의 어머니 장씨 부인의 유일한 유품인 노리개를 훔친다. 실랑이 끝에 장화는 크게 다치고, 그들은 7시간 동안 그녀를 방치한다. 결국 장화는 죽는다.
홍련은 그들을 향해 절규한다. 그러나 동시에 자신 역시 아무것도 하지 못한 방관자이자 가해자였다고 느낀다.
홍련이 아버지를 죽이고 장쇠를 해쳤다고 주장하자 바리 공주는 추궁한다. 왜 장화가 죽은 지 1년이 지난 뒤에 그런 일을 했느냐고 묻는다. 홍련은 그때서야 진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바리 공주는 계속 질문한다. 그렇게 무거운 칼로 아버지를 단번에 죽일 수 있었느냐, 시신을 혼자 옮겼느냐, 장쇠의 사지도 혼자서 그렇게 훼손했느냐고 묻는다. 홍련은 모두 자신이 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자신의 말 속에서 모순을 느끼며 홍련은 점점 혼란에 빠진다.
강림은 홍련의 영혼이 더 찢어지기 전에 재판을 끝내야 한다고 말한다. 홍련은 여전히 자신이 죄를 지었다고 절규한다. 강림은 그녀가 생전에 사랑을 구걸했다면, 지금은 죄를 구걸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때 바리 공주가 장화의 글을 끝까지 읽는다.
“동생 홍련이 구천을 떠돌고 있다면 전해주세요.
네가 나를 끔찍하게 사랑했다는 것을 안다.
나도 너를 끔찍히 사랑한다.”
홍련은 죄책감 속에서 차라리 소멸하고 싶어 한다. 삼도천을 건너 지옥의 불길로 들어가려 한다. 영혼이 더 찢어져 원귀가 되기 전에 스스로 끝내려는 것이다.
그러나 삼도천을 건너기 직전, 바리 공주는 씻김굿을 시작한다. 그녀의 영혼을 정화하는 의식이다. 씻김의 의미는 단 하나였다.
무력했던 자신을 용서하라는 것.
의식 속에서 홍련의 기억의 파편이 다시 맞춰진다. 그녀는 언니가 죽은 뒤 곧바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며, 아버지나 장쇠를 해친 적이 없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그리고 밝혀진다.
139,998번의 재판은 모두 홍련의 기억을 되살리기 위한 의식이었다. 천도정은 죄인을 심판하는 재판장이 아니라 상처 입은 영혼을 구원하기 위한 저승의 관문이었다.
홍련은 죄책감을 내려놓는다. 손목을 묶고 있던 붉은 족쇄를 바리 공주의 도움으로 풀어낸다. 저승으로 향하는 원형의 문이 붉은색과 푸른색에서 서서히 하얀 빛으로 변한다. 그 너머로 삼도천이 보인다.
홍련은 나지막하게 말한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평안한 얼굴로 문을 향해 걸어간다.
리뷰
줄거리를 정리하면서 이 작품은 리뷰가 거의 저절로 써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극의 구조가 상당히 잘 짜여 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저승을 배경으로 한 법정 드라마일 것이라 기대하고 관람했다. 그러나 이 작품이 궁극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법정극이라기보다는 심리 치유에 가까운 이야기다. 이야기는 계모의 학대를 겪는 두 자매를 다룬 잘 알려진 한국 설화 장화홍련전을 느슨하게 엮었고 설화 이후를 그린다. 법정이라는 설정은 계속 유지되지만, 재판은 점차 다른 의미를 드러낸다. 단죄하기 위한 장치가 아니라, 산산이 부서진 기억을 다시 맞춰 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심문 장면들은 특히 인상적이었다. 바리는 홍련의 자백이 실제로 가능한 일인지 하나씩 따져 묻는다. 열여섯 살 소녀가 자신보다 훨씬 큰 아버지를 단칼에 죽일 수 있었는지, 시신을 옮길 수 있었는지, 심지어 동생의 사지를 훼손할 수 있었는지 질문한다. 이러한 질문들은 법적 논쟁이라기보다는 홍련이 자신의 이야기 속 모순을 스스로 마주하도록 만드는 장치로 기능한다.
강림이 홍련의 영혼이 조각나 악귀가 될 수도 있다고 경고하는 장면은 신비한 동물사전 시리즈의 옵스큐러스를 떠올리게 했다. 그런 의미에서 홍련은 억눌린 슬픔과 결핍이 오랜 시간에 걸쳐 자아를 잠식해 온 인물로 보인다.
바리데기 설화는 전통적으로 버려진 딸이 결국 아버지를 살린다는 유교적 효의 가치를 강조하는 이야기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는 바리가 상처 입은 영혼을 구원하는 저승의 심판관으로 재해석된다. 그녀는 냉정한 재판관이면서 동시에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는 공감자이기도 하다. 이러한 재해석은 한국 신화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들에게도 이야기를 보다 쉽게 받아들일 수 있게 만드는 장치로 보인다.
139,998번의 재판은 결국 심판이 아니라 홍련의 산산이 흩어진 기억을 복원하기 위한 과정으로 드러난다. 그 과정은 닥터 후에서 닥터가 타디스 내부에서 자신이 분열된 모습들과 마주하며 부서진 정체성을 하나씩 다시 맞춰 가는 장면들을 떠올리게 한다.
마지막에 등장하는 씻김굿 역시 종교적 의식이라기보다는 정서적 해방의 장치처럼 보인다. 홍련이 스스로를 용서할 수 있게 하는 정화의 의식인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장면은 심바가 죄책감을 마주하고 과거를 받아들이기 시작하는 라이온 킹의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음악적으로는 이 작품이 전통적인 뮤지컬보다는 ‘음악이 있는 연극’에 더 가까운 느낌을 준다. 음악은 뮤지컬 넘버, 랩, 그리고 국악적 창법을 연상시키는 요소들까지 다양한 스타일을 오간다. 이러한 혼합은 다소 이질적이면서도 의외로 잘 어우러진다. 특히 여성 듀엣 곡들은 작품에서 가장 감정적으로 밀도 높은 순간들을 만들어낸다.
이야기의 출발점은 한국 설화이지만, 서사를 구성하는 장치들은 여러 문화권에서 익숙한 요소들이다. 부서진 영혼, 기억을 통해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 그리고 해방으로 이어지는 정화 의식 같은 구조들이다. 이러한 보편적인 서사 장치들을 통해 설명하면 한국 신화적 배경만으로 해석할 때보다 해외 관객들에게도 더 쉽게 전달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홍련은 저승의 문을 상징하는 흰색 원을 향해 조용히 걸어간다. 삼도천을 건너며 그녀는 아무 말 없이 무대를 떠난다. 그 장면은 그녀의 영혼이 마침내 평안을 찾았음을 암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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