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d Hare

적토
삼국지의 적토마 이야기를 말의 시점에서 풀어낸 극으로, 인간 영웅 대신 말의 관점에서 전쟁과 충절, 선택의 의미를 되묻는 철학적 우화로 구성되어 있다. 호랑이 적토와 토끼 적토의 대비, 관우와 적토의 동지적 관계, 배우들이 직접 표현한 말의 움직임과 소리는 연극적 매력을 더한다.
Musical Reviews › Korean Original › 2026
관람 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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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연 연도:
2026
관람 연도:
2026
극장명:
SH아트홀
줄거리 & 리뷰
줄거리
이 뮤지컬은 전설적인 군마 적토마의 이야기를 말의 시선에서 풀어낸 작품이다.
같은 마구간에서 두 마리의 망아지가 태어난다. 한 마리는 장차 군마가 될 운명으로, ‘북은 호랑이’를 뜻하는 자랑스러운 이름 적토(赤虎)를 받는다. 다른 한 마리는 밭을 가는 말의 새끼로 태어나 조용히 아비와 같은 삶을 살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이 두 번째 망아지 역시 군마가 되기를 꿈꾼다.
적토는 그에게 싸워서 이기면 자기 이름을 주겠다고 했지만 패하고, 승자는 조롱하듯 그에게도 같은 발음의 이름인 적토를 붙여준다. 두 이름은 발음은 같지만 의미가 다르다. 군마의 이름은 ‘붉은 호랑이’를 뜻하고, 농사말의 새끼가 받은 이름은 ‘붉은 토끼(적토)’를 뜻한다. 혼동을 피하기 위해 캐스트 보드에서는 두 말을 각각 호적토와 토적토로 구분한다.
시간이 흐르며 야심가 여포는 호적토를 보고 그 말에 매료된다. 호적토의 소유주인 동탁은 그가 양아버지를 배신하고 죽인다면 그 귀한 군마를 주겠다고 약속한다. 여포는 갈등 끝에 결국 배신하고 양아버지를 벤다.
한편 마구간에서는 사람들이 토적토에게 다가와 편자와 안장을 채운다. 동탁은 호적토 대신 토적토를 여포에게 주면서, 털 색깔도 같고 이름도 같다고 주장한다. 속임수에 분노한 여포는 겉으로는 고맙다고 하지만, 말을 거부하려 한다. 그때 토적토가 장수와 말 사이의 인연을 받아들이라고 설득한다. 여포와 토적토는 함께 훈련하며 곧 전장에서 무서운 한 쌍이 된다.
전장에서 여포는 토적토를 타고 동탁과 맞선다. 호적토는 토적토에게 도전하지만 결국 쓰러진다. 토적토는 호적토에게 그의 패배는 멋을 위해 높게 만든 편자 때문이라고 말한다. 여포는 동탁도 죽인다.
이제 남은 ‘적토’는 토적토뿐이다. 그러나 그들의 승리도 오래가지 못한다. 여포는 결국 조조의 군대에게 패해 죽는다. 주인을 잃은 적토는 절망에 빠지고, 전쟁터에서 아무나 타는 이름 없는 군마가 된다. 약탈과 전쟁 범죄의 도구로 전락한 그는 자신을 결국 도살장의 고기가 될 존재로 여기기 시작한다.
조조의 말 절영이 적토에게 나타나서, 사람만 말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며 스스로 주인을 찾아보라고 조언한다. 결국 적토는 포로가 된 뒤 잠시 조조 아래에 머물고 있던 관우를 만난다. 관우는 함께 달리자고 제안한다. 적토는 의롭지 않은 길은 따르지 않겠다고 말하고, 두 존재는 서로 같은 삶의 철학을 지녔음을 깨닫는다. 그들은 함께 조조가 지키는 5개의 관문을 돌파해 탈출한다.
관우와 적토는 계속해서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다. 마침내 조조와 절영과 전장에서 맞서게 되고, 서로 깊이 존중하지만 절영과 적토는 싸움을 피할 수 없다. 적토가 쓰러지고 절영이 승리를 선언하려는 순간, 절영 자신이 치명상을 입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며 죽는다.
이후 관우가 조조를 죽이려 할 때, 적토는 앞으로 나아가기를 거부하며 조조를 살려달라고 청한다. 관우는 그 조언을 받아들이고 조조에게 이제 빚은 갚았다고 말한다.
관우와 적토는 계속 전장에서 승리를 거두지만, 결국 관우는 화살에 맞아 죽고 만다. 적토는 쓰러진 자신의 주군을 깊게 애도한다.
더 이상 태울 주인이 없는 적토는 자신이 태어난 마구간으로 돌아온다. 적토의 아버지는 모든 존재는 결국 흙으로 돌아간다고 말해 준다. 안장을 벗은 적토는 낯설 만큼 몸이 가볍고, 스스로가 어딘가 익숙하지 않게 느껴진다.
인간의 전쟁 속을 달리며 타인의 야망을 짊어지고 살아온 삶을 돌아보며, 적토는 생각한다.
그 안장이 자신에게 세상을 달릴 자유를 주었던 것인지, 아니면 자신을 구속에 묶어 두었던 것인지를.
리뷰
중국 역사 중 후한을 배경으로 한 삼국지와 삼국지연의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극화된 이야기 중 하나이다. 특히 관우는 신의와 충절의 상징으로 널리 존경받는 인물이다. 한국에서는 외국 서사를 기반으로 한 창작 뮤지컬도 자주 제작되는데, 이 작품은 인간이 아닌 말, 적토를 중심으로 삼아 말의 시점에서 후한 시대의 일부 역사를 풀어낸다.
이 작품은 창작산실 ‘올해의 신작’ 지원작으로, 극단 죽도록 달린다(Juk-Dal)의 작품이다. 극장에 들어서자 유리 출입문 앞에 서 있던 직원이 문을 열어 주며 인사를 건넸고, 부스와 객석 입구에서도 같은 환영을 받았다. 한국 공연장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경험이었고, 공연이 시작되기 전부터 자연스럽게 마음이 열렸다.
극장은 대학 시절 연극을 보러 다니던 소극장을 떠올리게 하는 오래된 인테리어로 향수를 자극했다. 무대는 마굿간을 형상화한 거친 목재 벽과 양쪽의 마방 구조로 이루어져 있었고, 배우들은 그 공간을 드나들며 대기와 연기를 이어갔다. 캐스트는 여성 2명, 남성 10명으로 소극장 규모에 비해 비교적 많은 편이었다. 여성 배우 수는 적었지만 목소리는 객석을 충분히 채우는 균형 잡힌 구성으로 느껴졌다.
극은 삼국지의 적토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지만 전통적인 역사극이라기보다는 말의 시점에서 전개되는 철학적 우화에 가깝다. 따라서 삼국지의 영웅 서사를 기대하고 관람하면 다소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다. 작품은 안장이 자유인지 구속인지, 말은 인간의 전쟁을 어떻게 이해하는지, 의(義)와 충절이 무엇인지와 같은 질문을 관객에게 던진다.
극에는 역사에 등장하지 않는 호랑이 적토(Red Tiger)가 등장하는데, 이는 태생적으로 미약하지만 서사를 완성해 가는 토끼 적토(Red Hare)의 성장을 대비시키는 장치로 기능한다. 토끼 적토의 아버지는 밭을 가는 평범한 말이지만 그의 삶의 철학을 형성하는 중요한 말을 남긴다.
“마지막에는 태어난 마굿간으로 돌아온다.”
적토는 첫 주군 여포에게 훈련을 받으며 유대를 형성하고, 야망과 전쟁의 세계를 경험한다. 그의 또 다른 중요한 스승은 조조의 군마 절영이다. 인간이 말을 선택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말 역시 자신이 태울 사람을 선택한다는 사실을 가르쳐 준다. 선택받기까지 절망하지 말고 스스로의 길을 찾으며 살아가라는 가르침이다.
관우와의 관계는 주군과 군마의 관계를 넘어선다. 두 존재는 서로에게 의(義)와 충절을 다하는 동지로 그려진다. 특히 적토가 고삐를 따르지 않고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움직일 때, 그 작은 움직임까지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관우의 모습은 인물을 더욱 크게 보이게 만든다.
관우의 죽음 이후 적토가 태어난 마굿간으로 돌아와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결말은 다소 열린 결말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마지막 장면은 라이온킹의 ‘Circle of Life’를 연상시키는 이미지로 마무리되는데, 이는 앞서 제시된 철학적 질문을 약간 평범한 생명의 순환 서사로 환원시키는 인상도 남겼다.
말의 표현 방식도 흥미로웠다. 배우들은 카우보이 스타일의 프린지 재킷과 안장을 연상시키는 다리 장식으로 말의 형상을 표현했고, 특히 적토는 붉은 가죽 의상으로 색채를 강조했다. 또한 배우들이 직접 히히힝, 푸르득 같은 말의 소리를 내는 방식도 자연스럽고 설득력이 있었다. 승마 장면 역시 말 역할 배우가 앞에 서고 사람 역할 배우가 뒤쪽 측면에서 어깨에 손을 얹고 같은 리듬으로 움직이는 방식으로 표현되어 실제 승마의 움직임을 효과적으로 전달했다.
마굿간을 연상시키는 투박한 무대는 옛 연극의 감성을 떠올리게 했고, 소품 이동이나 무대 전환 역시 배우들이 직접 수행하는 등 연극적 문법이 강하게 드러나는 연출이었다. 음악은 건반 중심의 편성으로 보였고 신시사이저와 전자 드럼을 활용해 몽환적인 분위기를 만들었다.
넘버는 서사를 이끄는 역할을 했다. 전투 장면의 듀엣곡들이 인상적이었으며, 적토와 절영의 결투 장면 음악이 특히 좋았다. 관우와 조조는 어둠 속에 머물고 말들이 전투를 벌이는 장면은 작품의 시점과도 잘 맞는 연출이었다. 서로 적으로 만났지만 깊은 예를 갖추는 두 말의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솔로곡 중에서는 적토가 자신의 주군을 찾겠다고 결심하는 장면의 노래가 가장 강한 울림을 남겼다.
철학적 질문과 도덕적 메시지가 중심이 되는 작품이며 연극적 표현 방식이 강하기 때문에 관객에게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요구하는 공연이다. 그러나 동물의 시점에서 역사를 다시 바라보는 서사 자체는 매우 신선한 시도였다. 서사의 중심이 말이라는 설정 때문인지 작품은 종종 해설을 통해 상황을 설명하는 방식을 택한다. 그러나 일부 장면에서는 이러한 설명이 다소 과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코믹한 리듬이 충분히 절정에 도달한 뒤 반전이 이어졌다면, 극의 전개가 더욱 또렷하게 드러났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소극장 규모의 작품이지만 철학적 질문과 연극적 표현을 결합한 독특한 시도로 기억에 남는 작품이었다. 이 작품은 삼국지의 영웅 서사를 재현하기보다는, 말의 시점에서 인간의 전쟁과 선택을 바라보는 철학적 우화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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