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villera
나빌레라

치매 진단을 받은 76세 덕출이 젊은 발레리노 채록에게 발레를 배우기 시작한다. 현대무용과 감성적인 서사, 유려한 무대 전환이 어우러진 나빌레라는 꿈을 현실로 만든 덕출과 잃어버린 발레의 꿈을 다시 찾아가는 채록의 세대를 뛰어넘는 우정을 따뜻하게 그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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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 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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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연 연도:
2019
관람 연도:
2026
극장명:
예술의전당 CJ 토월극장
줄거리 & 리뷰
줄거리
은퇴한 우체국 공무원인 76세 심덕출은 알츠하이머성 치매 진단을 받는다. 의사는 그에게 메모하는 습관을 들이고, 기억을 유지하기 위한 훈련을 권한다. 덕출은 이 사실을 가족들에게 알리지 않는다. 그는 아주 어렸을 때 아버지를 따라 낯선 러시아에 머물며 보았던 아름다운 발레 장면을 떠올리고, 늦은 나이에 발레를 배우기로 결심한다.
이채록은 입원 중인 아버지와 통화하며, 이제 자신이 가장이니 걱정하지 말고 치료에만 전념하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대출을 받으려 해도 신용점수가 너무 낮고, 발레재단에서는 언제 부상에서 회복될지 알 수 없는 그를 더 이상 단원으로 유지할 수 없다고 통보한다.
현재 23세인 채록은 과거 로잔 콩쿠르에서 우승했던 유망한 발레리노였지만 발목 부상을 당했다. 회상 장면 속에서 그는 ‘볼레로’를 추는 단원들을 바라보다 그들 사이에 섞여 군무를 함께 추지만, 곧 현실로 돌아온다. 그는 생계를 위해 택배와 음식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며 살아간다.
덕출은 전직 발레리노 문경국이 운영하는 발레단을 찾아가 발레를 배우고 싶다고 말한다. 그 순간 채록이 들어와 돈을 벌기 위해 발레를 그만두겠다고 선언한다. 문경국 단장은 채록에게 덕출의 레슨 선생님을 맡기고, 덕출에게는 메모하는 습관을 살려 채록의 매니저 역할을 해달라고 부탁하며 채록이 발레단을 떠나는 것을 막으려 한다.
덕출의 아들은 아버지가 발레를 배우는 것을 반대하며 이제는 편히 쉬어야 한다고 말한다. 아내 역시 적극적으로 찬성하지는 않는다. 반면 딸과 손녀는 덕출을 응원하며, 특히 딸은 채록에게 발레를 배우는 아버지의 모습을 콘텐츠로 삼아 유튜브 채널을 시작한다.
채록은 처음에는 덕출을 가르치는 일을 단호히 거절한다. 그러나 과거 자신과 연습하다 인대 부상을 입었던 성철과 시비가 붙고, 덕출이 두 사람을 말리며 우체국 직원으로 일했던 경험을 살려 채록의 음식 배달 일을 효율적으로 도와주자 마음이 조금씩 흔들린다. 결국 채록은 첫 레슨을 시작한다. 그는 성의 없는 태도를 보이기도 하지만, 꾸준히 스트레칭과 기본 동작을 가르친다.
덕출의 실력은 아주 조금씩이나마 나아간다. 상상 속에서 그는 단원들과 완벽한 군무를 추고 무대 위에서 관객의 환호를 받지만, 현실에서는 의사로부터 치매가 악화되고 있으며 앞으로 인지 기능이 더 떨어질 것이니 가족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말을 듣는다.
덕출은 성철에게 부상이 회복되었으니 발레단으로 돌아오라고 조언하는 등 단원들의 사기를 북돋는 존재가 된다. 채록은 자신은 발레를 좋아하지 않고 그저 할 줄 아는 일이 그것뿐이라고 말하지만, 덕출은 그가 누구보다 발레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아본다. 어느 날 덕출은 연습 도중 목에 걸고 다니던 수첩을 내려놓고 그대로 두고 나오고, 채록은 그 안의 메모를 통해 덕출이 치매를 앓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덕출은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수첩을 두고 온 사실을 떠올리고, 당황한 채 빨간불에 횡단보도를 건너려다 겁에 질린다. 채록은 덕출을 어떻게 도와야 할지 몰라 안타까워한다. 덕출의 아들은 채록에게 아버지가 발레를 그만두도록 설득해달라고 부탁하지만, 채록은 덕출이 남은 인생을 걸고 발레를 하고 있다고 말한다.
점점 기억을 잃어가던 덕출은 결국 아내에게 자신의 병을 털어놓기로 결심한다. 그는 “할 말이 두 가지 있다”고 말한 뒤 먼저 사랑한다고 고백한다. 그러자 아내는 눈물을 터뜨린다. 사실 그녀는 이미 남편이 치매를 앓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두 사람은 앞으로 함께 병을 견뎌내기로 약속한다.
덕출은 취직한 손녀에게 자신의 차를 물려주기로 하고, 채록에게 차 열쇠를 건내게한다. 손녀는 채록이 자기 스타일이 아니라고 농담하지만, 채록은 얼떨결에 오히려 손녀가 자기 스타일이라고 말해버린다. 이후 채록은 덕출의 집에 자주 드나들며 식사도 함께하고 가족들과 가까워진다.
문경국 발레단은 연말 공연을 준비하고, 복귀한 성철에게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파드되 장면이 맡겨진다. 채록은 덕출과 함께 특별 무대를 올리기로 한다. 덕출은 열심히 메모하며 연습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증상은 심해진다. 채록을 알아보지 못하기도 하고 몸도 점점 굳어간다.
어느 눈 오는 날, 덕출의 아들은 벤치에 앉아 있는 아버지를 발견한다. 그는 발레 공연을 꼭 보고 싶다고 말하며, 공연이 끝난 뒤에는 입원 치료를 받자고 부탁한다. 그리고 오래도록 자신의 곁에 있어달라고 말한다.
결국 공연 전날, 덕출은 몸을 움직이는 것조차 힘들어지고 아내를 제외한 사람들을 거의 기억하지 못하게 된다. 덕출의 아내는 발레단에 사과를 해야 한다며 가족들과 함께 휠체어를 밀고 연습실을 찾는다. 문경국 단장과 단원들은 그의 모습에 안타까워한다. 무대 뒤에서 공연을 바라보던 덕출의 손과 발이 음악에 맞춰 움직이는 것을 본 채록은, 그가 아직 무대에 설 수 있다고 믿게 된다. 채록의 부름에 덕출은 잠시 그를 기억해내고, 두 사람은 함께 특별 공연을 올린다. 채록은 덕출에게 자신 역시 끝까지 발레를 계속하겠다고 약속한다.
5년 후, 러시아 발레단에서 활동하던 채록이 국립발레단의 수석무용수로 돌아온다는 뉴스가 전해진다. 덕출은 이미 2년 전부터 아내조차 알아보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다. 휠체어에 앉아 있는 덕출에게 채록이 “할아버지, 저 기억나요?”라고 묻자, 덕출은 환한 미소를 짓고 조용히 숨을 거둔다.
마지막 순간, 육신에서 벗어난 덕출은 사랑하는 가족들과 채록의 곁에서 자유롭게 춤을 춘다. 그리고 천천히 무대 뒤편으로 걸어가며 사라진다.
리뷰
꿈같은 이야기였다. 76살 심덕출은 치매 진단을 받는다. 그가 인생의 후반부에 선택한 것은 평생 해보고 싶던 발레이다. 운이 좋게도 유명한 발레리노였던 문경국이 운영하는 발레단에서 로잔 콩쿠르 1등 했던 이채록 발레리노의 강습을 받게된다. 어렵게 동작을 하지만 기본 동작도 흉내는 낼 수 있게 된다. 더욱이 발레공연의 특별무대를 할 수 있는 배려도 받는다.
극 중 아들은 심덕출을 그저 '가족을 위해 희생한 늙은 아버지'로 치부하며 이제 편히 쉬시라고 말한다. 이는 아버지의 역할을 오직 자식이라는 자신의 관점으로만 고정해 버리는 오만하고 잔인한 시선이다. 심덕출은 심덕출이고, 아내를 사랑해서 결혼했고 예쁜 자녀들을 사랑으로 키우면서 행복하게 살아온 사람이다. 그것을 자식들을 위해 고생한 아버지로 규정하는 순간, 아버지의 자의를 부정하는 것을 아들은 모른다. 자기 입장에서만 아버지를 보기 때문이다.
누구나 자신의 인생 여정을 가지고 있다. 수명이나 풍요로움이 공평하지 않지만, 자기 몫의 삶이 있다. 덕출의 인생은 극에 나오는 대부분의 사람보다 조금 일찍 시작했고, 조금 빨리 끝났다. 그의 인생 후반부에 그를 본 사람은 극히 짧은 순간만 그를 보고 평생 그 모습으로 살아왔을 거라고 각인될 수 있다.
이 말을 이렇게 길게 하는 이유는 극을 보고 무심히 읽게 된 다른 리뷰들 때문이다. 많은 리뷰가 ‘나를 위해 희생한 부모님’을 떠올리며 고마움과 미안함을 표하고 있었다. 물론 그것도 좋은 일이다. 하지만 한 사람의 주체적인 인생 전체를 단지 ‘타인을 위해 희생한 삶’이라는 한마디로 요약해 버리는 것은, 그 삶에 대한 일종의 모욕처럼 느껴졌다. 인생은 그렇게 단순하게 정리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희생하셨다, 고맙다”는 감상의 이면에는, ‘나는 저렇게 늙지 않겠다’, ‘나는 저런 삶을 살지 않겠다’는 인간의 본능적인 두려움과 방어기제가 숨어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국 누구나 노화와 쇠퇴라는 비슷한 인생의 여정이 있다. 다만 그 속도와 길이, 조건이 조금씩 다를 뿐이다. 사람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자기 몫의 삶을 살아낼 뿐이다.
인류의 긴 시간의 흐름 속에서 보면 아버지와 아들의 나이 차이조차 결국 아주 짧은 차이에 불과하다. 둘 다 결국 비슷한 인간의 생애를 지나가는 존재들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나빌레라를 보며 덕출을 단순히 희생적인 아버지로 읽기 어려웠다. 그는 가족을 위해 모든 욕망을 억누르며 살아온 비극적인 가장이라기보다, 이미 자기 삶 안에서 충분히 사랑하고 기뻐하며 살아온 사람처럼 보였다. 아내를 오래 사랑했고, 자녀들을 키웠고, 손녀와 농담을 주고받을 정도로 친하다. 덕출은 의무를 수행하기 위해 살아온 것이 아니다.
그래서 덕출이 발레를 시작하는 순간도 단순한 억눌린 꿈의 폭발처럼 느껴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인생의 끝자락에서 다시 자기 자신에게 솔직해지는 과정에 가까웠다. 그는 갑자기 새로운 사람이 된 것이 아니라, 아주 오래전부터 마음속 어딘가에 남아 있던 아름다움을 다시 바라보기 시작한 것이다.
극 중 덕출은 끊임없이 다른 사람들에게 말을 건다. 발레단을 떠난 성철에게는 다시 돌아올 수 있다고 이야기하고, 채록에게는 “너는 발레를 사랑한다”고 계속 말한다. 손녀의 미래를 걱정하고, 가족들을 챙기고, 발레단 사람들을 응원한다. 때로는 지나치게 참견하고, 스스로도 “꼰대”처럼 행동한다. 하지만 그 참견은 타인을 자기 틀 안에 가두기 위한 것이 아니라, 상대 안에 이미 존재하는 가능성을 먼저 믿어주는 방식에 가깝다.
그래서 작품 속 “꼰대”라는 표현들도 흥미롭게 다가왔다. 덕출은 채록에게 “젊꼰”, “어꼰”, “세꼰여간” 같은 말을 하며 웃음을 만든다. 보통 “꼰대”라는 단어는 나이 많은 사람에게 향하지만, 이 작품은 오히려 젊은 채록 안에서도 타인의 삶을 쉽게 단정하고 포기시키려는 태도를 발견한다. 결국 꼰대성은 나이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태도에 더 가까운 것처럼 보인다.
다만 극의 갈등 구조는 다소 단순하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다. 특히 아들은 지나치게 “발레를 반대하는 사람” 역할로 기능한다. 실제로 덕출이 하는 것은 무리한 도약이나 고난도 테크닉이 아니라 스트레칭과 기본 동작 중심의 수업인데도, 그는 발레 자체를 불편해한다. 오히려 등산 같은 취미를 권하는 장면에서는 “노년 남성에게 어울리는 삶”에 대한 사회적 이미지가 더 강하게 드러난다. 현실적인 걱정보다는 체면과 세대적 감각의 문제처럼 느껴졌다.
채록의 설정 역시 다소 우화적이다. 로잔 콩쿠르 우승자 출신의 젊은 무용수가 현실적으로 완전히 발레계를 떠나려고 하고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며 살아간다는 설정은 다소 극단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작품은 현실적인 발레계에서 선택할 수 있는 직업군을 보여주기보다, “꿈을 잃어버린 청춘”이라는 상징적 위치에 채록을 놓고 싶어 했던 것 같다. 그래서 이 작품은 사실적인 직업극이라기보다, 서로 상처 입은 두 사람이 서로의 삶을 다시 움직이게 만드는 우화에 가깝게 느껴진다.
무대 역시 그런 방향과 잘 어울렸다. 거대한 사실적인 세트 대신 박스 구조물과 후면 LED, 프로젝션을 조합해 공간을 계속 변형시키는데, 덕출의 현실과 상상 속 세계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특히 채록의 상실감을 표현한 볼레로 군무 장면은 인상적이었다. 단원들 사이로 채록이 섞여 들어가는 순간은, 그가 이미 몸 자체로 발레를 떠날 수 없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장면처럼 느껴졌다.
채록 역의 이재환 배우는 빅스의 멤버이므로 춤을 기대했고 아름다웠다. 완벽한 클래식 발레리노라기보다, 현대무용과 뮤지컬적인 움직임을 섞어 감정을 전달하는 방식으로 춤을 보여주었고, 작품과 잘 어울렸다. 나빌레라는 정통 발레 공연이라기보다 “발레를 동경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반면 성철과 단원들의 움직임에서는 실제 발레 기반의 중심감과 선이 느껴졌고, 군무 장면들은 작품 전체의 정서를 풍부하게 만들었다.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이 작품이 치매를 단순한 눈물의 장치로 소비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기억은 조금씩 사라지지만, 몸은 음악을 기억하고 있었다. 공연 직전 거의 모든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던 덕출이 음악에 반응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는 장면은 그래서 더 슬펐다. 그것은 기적의 회복이라기보다, 인간 안에 끝까지 남아 있는 감각과 욕망의 흔적처럼 보였다.
마지막 순간, 덕출은 다시 자유롭게 춤춘다. 그리고 조용히 무대 뒤편으로 걸어가 사라진다. 그 모습은 비극적인 죽음이라기보다, 자기 삶 전체를 끝까지 살아낸 한 사람이 천천히 퇴장하는 장면처럼 느껴졌다.
덕출은 마지막까지 누군가의 희생적인 아버지가 아니라, 심덕출이라는 한 사람으로 남아 있었다.
그리고 어쩌면 그래서야말로 덕출은 이미 충분히 성공한 인생을 살아온 사람처럼 보인다.
그는 사랑하는 아내와 오랜 시간을 함께했고, 자녀들과 손녀의 애정을 받으며 살아왔다. 발레단 사람들은 처음에는 당황하거나 부담스러워하지만 결국 그를 받아들이고, 채록은 그의 존재를 통해 다시 삶의 방향을 찾는다. 덕출은 마지막까지 누군가에게 짐이 되기만 하는 존재로 그려지지 않는다. 오히려 끝까지 주변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주고, 응원하고, 관계를 만들어가는 사람이다.
그래서 이 작품의 슬픔은 불행한 노인의 비극에 있지 않은 것 같다. 덕출은 외롭게 버려진 사람도, 사랑받지 못한 사람도 아니다. 오히려 너무 많은 사랑 속에 살아왔기에, 그런 사람이 조금씩 기억을 잃고 사라져가는 과정 자체가 더 슬프게 다가온다.
동시에 작품은 거의 모든 갈등을 결국 이해와 화해의 방향으로 정리한다. 채록과 성철은 화해하고, 아들은 마지막에는 아버지를 이해한다. 채록의 아버지 역시 웹툰이나 드라마보다 훨씬 부드럽게 묘사되며, 죄책감과 미안함을 드러낸다. 그래서 때로는 지나치게 이상적인 중산층 가족 드라마처럼 느껴지는 순간도 있었다. 현실의 인간관계는 훨씬 복잡하고 잔인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빌레라는 끝까지 인간에 대한 믿음을 놓지 않는다. 누군가는 끝내 다른 사람을 붙잡아주고, 사람은 완전히 혼자 무너지지 않는다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그래서 극적 긴장감은 다소 약해질 수 있지만, 대신 작품 전체에 잔잔하고 따뜻한 온기가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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