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pyeonje
서편제

판소리와 팝·록이 결합된 뮤지컬 서편제는 상실이 빚어낸 ‘한’을 탐구한다. 극적 장치는 강한 효과를 내지만, 보다 깊은 곳에서는 송화의 조용한 내면 붕괴가 쌓아 올린 한이 소리를 만든다. 유려하고 절제된 무대는 완벽한 소리를 향해 나아가는 부녀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Musical Reviews › Korean Original › 2026
관람 년도:

이 아카이브에 포함된 포스터는 기록 및 교육 목적에 한하여 게재된 것입니다.
🔗 모든 이미지는 원 출처나 관련 기사와 연결되어 있으며, 저작권 소유권을 주장하지 않습니다.
초연 연도:
2010
관람 연도:
2026
극장명:
광림아트센터 BBCH홀, 서울
줄거리 & 리뷰
줄거리
2014년, 노년의 동호는 누이 송화를 찾고 있다. 반 평생을 전국을 떠돌며 누이를 찾아온 그는 과거를 회상한다.
1960년대, 어머니는 어린 동호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밭 한쪽에 허리춤에 끈으로 묶어 둔 채 밭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간다. 때로는 추위와 뙤약볕 속에 놓이지만, 동호는 어머니와 함께하는 시간을 행복하게 느낀다. 어머니는 소리꾼 유봉을 만나 재혼하고 아이를 낳다가 세상을 떠난다. 동호는 유봉이 어머니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고 믿으며 그를 증오하게 된다.
유봉은 처음 만난 날, 송화를 의붓남매이지만 누나라고 소개한다. 두 아이는 서로를 믿고 의지하며 자란다. 유봉은 아이들에게 소리를 가르치며, 아래에서 끌어올려 한을 품은 소리를 하라고 다그친다.
어느 날, 지나던 공연장에서 전국순회와 미8군에서 공연하는 밴드 Spring Boys가 ‘Proud Mary’를 부르는 것을 본 동호는 한눈에 매료된다.
유봉은 크게 노하여 소리는 누이가 할 것이니 북을 잡으라고 한다. 동호는 유봉과 크게 다툰다. 풀이 죽어 어머니를 그리워하고 유봉을 원망하던 동호에게 송화는 하성을 보여준다며 아버지를 욕하는 감정을 노래로 풀어낸다. 자신이 이몽룡을 하겠다며 동호에게 춘향이처럼 예쁘다고 말하고, 함께 사랑가를 부르자고 한다. 동호는 누나의 소리에 이어 춘향 대목을 부르고, 둘은 웃는다.
유봉은 공연할 곳을 찾던 중, 동문수학했던 명창이 창극을 하는 것을 본다. 그는 판소리, 가요, 서양 노래를 섞은 잡탕이라며 이를 비난하고, 완창을 해야 진정한 소리꾼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명창은, 유명해질 수 있었던 유봉이 스승을 배신하고 오직 소리만을 찾아 떠난 사람이라고 도리어 비아냥거린다.
결국 동호는 새 멤버를 찾는 오디션 공고에 응하기 위해 Spring Boys를 찾아간다. 창 한 대목을 시원하게 부른 뒤, 서양 노래도 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In Your Eyes’를 부르며 그들을 감동시킨다.
떠나며 동호는 송화에게 함께 가자고 한다. 그러나 송화는 아버지 곁에 남기로 하고 그를 보내준다.
유봉은 동호를 잃은 상실감이 송화에게 한으로 쌓여 소리를 깊게 할 것이라 믿는다. 그는 토해내듯 밖으로 내뱉는 동편제가 아니라, 속에서 담금질되어 올라오는 서편제 소리를 내라고 송화를 가르친다.
송화는 유봉과 함께 유랑하며, 셋이 걷던 길을 둘이 걷는 것이 이상하다고 말한다. 어느 날, 지쳐 잠든 송화를 보며 유봉은 독약을 묻힌 긴 천을 눈에 붙여 그녀의 시력을 빼앗는다. 잠에서 깬 송화는 아버지를 부르며 보이지 않는다고 절규한다. 이후 그녀는 아래에서 끌어올리는 소리로 노래하게 된다. 유봉은 그 소리가 익어가고 있다고 감격하지만, 송화는 차라리 자신을 죽여달라며 절망한다.
Spring Boys가 ‘Unchain My Heart’를 부르며 동호는 큰 환호를 받는다. 그는 자작곡 락으로 크게 성공한다.
환경이 변해 판소리를 공연할 곳이 줄어들자, 유봉은 송화를 창극단에 데려가 노래를 들려준다. 한이 실린 송화의 소리는 심금을 울리지만, 창극단은 그녀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 장면을 본 동호는 누이가 앞을 보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유봉을 밀어내며 송화에게 함께 떠나자고 한다. 송화는 소리를 하는 것과 아버지를 떠나지 않고 용서한 것 모두 자신의 선택이라 말하며 동호를 보낸다.
동호는 어머니가 죽을 때 하루 종일 노래만 했던 유봉을 증오했지만, 송화는 어머니가 임종에 자신의 길을 노래로 인도해 달라고 부탁했고 유봉이 그 뜻을 따른 것이었음을 알고 있다고 유봉에게 말한다. 또한 유봉이 동호의 증오가 한으로 바뀌어 소리를 찾게 되기를 바라며 진실을 말하지 않았다는 사실도 이해하게 된다.
유봉은 동호의 자작곡을 외워 따라 부를 만큼 그를 그리워하며, 자신의 소리에 끌려 아내가 자신에게 왔듯이 언젠가는 누이의 소리를 따라 동호도 돌아올 것이라 말한다.
동호는 절망 속에서 동료의 권유로 대마초를 하다 검거되어 감옥에 .가고 1년 징역형을 선고받는다.
송화와 유봉은 다시 길을 떠돌며 소리를 하지만, 유봉은 노쇠하여 길가에 주저앉는다. 지난날을 떠올리며, 동호의 어머니가 기다리는 하얀 상여를 향하며 죽음을 맞이한다.
출옥한 동호는 화려하게 재기하여 Spring Company 대표가 되고, 올해의 프로듀서 상을 받으며 성공을 이어간다. 그러나 내면은 공허하고, 본격적으로 송화를 찾기 시작한다. 송화는 마을에 머물면서도 떠났다고 전해달라고 하며, 자신이 동호에게 짐이 될까 두려워 계속 떠돌며 소리를 한다. 그녀의 소리는 점점 전설이 되어간다. 동호는 뒤쫓지만, 매번 조금 늦게 도착한다.
2014년, 전라남도 끝자락에서 송화를 봤다는 소식을 듣고 동호는 곧장 달려간다. 송화는 모든 소리꾼에게는 사연이 있다고 말하며 그를 맞이한다. 동호는 어머니를 죽음으로 몰았다고 믿는 아버지 이야기를 꺼내지만, 서로를 알아본 사실은 삼킨 채 끝내 말하지 않는다.
송화가 북을 잡으려 하자, 동호가 북을 가져와 가장자리를 치며 시작을 알린다. 송화는 심청전의 심봉사가 눈을 뜨는 대목을 부르고, 동호의 북과 추임새가 더해지며 소리는 이어진다. 그렇게 막이 내린다.
리뷰
근래 창극을 몇 작품 보기 시작했지만, 판소리를 주제로 한 뮤지컬은 처음이었다. 소리꾼 이자람과 김준수 배우의 목소리가 익숙했기에 기대가 컸다.
이 작품은 액자식 구성을 취한다. 어린 시절의 송화와 동호, 그리고 2014년 노년의 동호가 교차하며 등장하는데, 이 전환이 비교적 빈번하게 이루어진다. 시점이 섞이는 구조 자체는 익숙하지만, 반복되면서 과거와 현재가 분리되기보다는 감정의 층으로 겹쳐지는 느낌을 준다.
연출적으로는 암전이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스크림과 회전무대, 프로젝션을 이용해 장면을 전환하는 방식인데, 초반에는 빠르고 매끄러운 흐름이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후반으로 갈수록 세로로 긴 스크림이 반복적으로 이동하며 공간을 구획하는 방식이 다소 과해지면서, 미니멀한 구성임에도 오히려 시각적으로는 어수선하게 느껴졌다. 배우들은 스크림 뒤로 사라졌다가 다시 등장하거나, 스크림이 이동하는 타이밍에 퇴장하는 방식으로 동선이 처리된다. 뒤편에 겹겹이 배치된 산의 실루엣 역시 주요 무대 요소로 작용한다. 이를 제외하면 평상 정도만 움직이는, 비교적 절제된 무대였다.
음악적으로 가장 먼저 느낀 차이는 송화의 소리였다. 이자람 배우의 창은 기존에 접해온 창극 배우들의 판소리와는 결이 달랐다. 더 가늘고 매끄러운 음색이었고, 동호가 토해내듯 부르는 소리를 유봉이 동편제라고 지칭하는 장면을 떠올리면, 서편제는 그보다 훨씬 내재된 소리를 지향하는 창법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1막에서는 비교적 맑은 음색을 유지하다가, 이후 유봉이 강조하는 ‘하성’으로 내려가면서 비로소 깊이가 생긴다. 동호 역의 김준수 배우 역시 소리가 매우 좋아서, 유봉이 그를 꾸짖는 장면은 오히려 흥미롭게 느껴졌다. 일부러 거칠게 부르려 해도 기본적인 기량은 숨기기 어려웠던 듯하다.
넘버 구성은 이질적인 장르가 결합된 형태다. 「살다보면」과 같은 곡은 익숙하고 편안하지만, 뮤지컬 넘버라기보다는 열린 음악회나 가요무대에 가까운 감각으로 들린다. 여기에 Proud Mary, Unchain My Heart, In Your Eyes와 같은 팝·락 넘버가 더해지면서 장르적 혼합은 더욱 두드러진다. 송화와 유봉은 판소리, 동호는 그 사이를 오가며, 앙상블은 판소리와 전형적인 뮤지컬 형식을 혼용한다.
오케스트라는 전반적으로 또렷하게 들렸지만, 마지막 장면에서는 아쉬움이 남았다. 송화가 심청가를 부르는 장면에서 동호의 고수에 피아노가 섞이는데, 처음에는 이질적으로 느껴졌고 리듬도 완전히 맞지 않아 소음처럼 들리기도 했다. 이후 오케스트라가 점차 커지며 송화의 소리가 상대적으로 줄어들고 막이 내려간다. 피아노 대신 대금이나 태평소, 혹은 플루트나 오보에가 노랫가락을 따라가다가 점차 오케스트라로 확장되었다면 더 자연스럽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서사의 핵심은 감정의 구조에 있다. 송화의 변화는 실명 이후에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전에 이미 시작된다. 동호가 떠나는 순간, 그녀의 내면은 이미 무너져 있다. 유일하게 자신을 붙잡아주던 관계가 사라지면서 감정은 밖으로 향하지 못하고 내부에 고이기 시작한다. 이는 ‘한’이 형성되는 조건에 가깝다.
물론 극적 효과를 위해, 이렇게 침잠하는 고요한 한 대신 눈을 멀게 하는 장면이 차용된 것으로 보인다. 이는 축적되는 감정보다는 순간적인 폭발을 보여주기 위한 선택일 것이다.
‘한’이란 큰 상실이나 아픔이 해소되지 않은 상태로 축적되면서, 그것을 증오나 원망처럼 외부로 표출하는 단계를 넘어 내부로 수용하며 살아가는 감정의 형태로 보인다. 한국에서는 이를 특정한 집단 정서로 설명하지만, 인간에게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감정일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Ragtime의 Sarah 역시 다른 방식의 ‘한’을 보여주는 인물처럼 느껴졌다.
유봉은 이러한 감정을 의도적으로 ‘증오에서 한으로’ 전환시키려 한다. 나아가 이를 강화하고 가속하기 위해 송화의 눈을 멀게 하는 극단적인 선택까지 한다. 그러나 송화의 인생은 단순히 강요에 의한 결과라기보다, 오히려 그 구조를 받아들이고 스스로 더 깊이 밀어붙인 인물로 보인다. 동생을 잃은 상실은 신체적 손상처럼 즉각적이지 않지만 더 느리고 깊게 작용한다. 해소되지 못한 감정은 내부에 축적되고, 그 지속성이 오히려 더 잔인하게 느껴진다. 그런 점에서 실명은 전환점이라기보다 이미 진행되고 있던 흐름을 가속시키는 장치처럼 보인다. 어쩌면 송화는 그 사건이 없었어도 같은 방향으로 나아갔을 가능성이 있다.
유봉이라는 인물 역시 단순히 해석되기 어렵다. 그는 한을 끊임없이 주입하려는 인물이지만, 동시에 아내를 사랑했고 동호의 노래를 외워 부를 만큼 그를 그리워한다. 동호의 증오가 결국 한으로 변해 소리를 찾게 되기를 기대하며 진실을 숨긴다. 그는 소리의 완성을 위해 인간을 희생시킨 예술가인가, 아니면 자신의 선택을 정당화하기 위해 예술을 이용한 인간인가.
유봉은 창극을 “잡탕”이라고 비난한다. 판소리, 가요, 서양 음악이 섞인 형태를 경멸하는 그의 대사는 강하게 남는다. 그러나 동시에 이 뮤지컬 작품 자체도 이러한 혼합 장르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판소리, 가요, 록, 발라드가 공존하는 구조 속에서, 이 ‘잡탕’이라는 단어는 극 중 인물의 비난을 넘어 작품 전체를 되비추는 질문처럼 남는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장르는 혼란을 야기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공연예술을 확장시키는 동력이 될 수도 있다.
이자람 배우의 송화는 1막에서는 비교적 가볍게 출발하지만, 마지막 심청가에서는 토해내듯 부르지 않으면서도 내면에 쌓인 한이 전달되는 깊은 울림을 보여준다. 아마도 서편제 창법의 정수를 보여주는 대목일 것이다.
김준수 배우는 이전에 창극 <심청>에서 심봉사를 연기한 것을 본 적이 있어서, 이번 작품에서 북을 잡고 추임새를 넣는 장면에서 그의 심청가를 더 듣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디션 장면에서 부른 짧은 판소리 대목에서는 자연스럽게 환호가 나왔고, 연기 역시 안정적이었다.
박호산 배우의 유봉 역시 인상적이었다. 연기력은 이미 알려져 있지만, 창까지 소화하면서 작품의 완성도를 끌어올렸다.
여전히 송화의 눈을 멀게 하는 행위에는 강한 거부감이 남는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유봉이 경멸했던 ‘잡탕’이라는 형식이야말로 공연예술을 진화시키는 중요한 방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이 갤러리의 사진은 촬영이 허용된 경우 직접 촬영했거나, 소장 중인 프로그램·티켓·기념품을 촬영한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