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anini
파가니니

사후 매장 재판을 축으로, 7분간 이어지는 라 캄파넬라 솔로 연주로 절정에 이르는 뮤지컬 파가니니. 카지노 사업가의 탐욕과 그를 악마로 모는 신부 사이에서 이용당하는 천재의 이야기다. 실제 그의 훨씬 복잡했던 말년과 극 속 미완의 설정들도 함께 짚어본다.
Musical Reviews › Korean Original › 2026
관람 년도:

줄거리 & 리뷰
줄거리
니콜로 파가니니가 세상을 떠난 지 4년이 지났다. 교회는 그가 악마에게 영혼을 판 인물이라는 이유로 기독교식 매장을 허락하지 않는다. 아들 아킬레 파가니니는 아버지의 매장을 허락해 달라며 종교재판을 요청한다. 과거 비밀 종교재판관이었던 루치오 아모스 신부는 파가니니가 악마였다고 주장하며 이에 반대한다. 재판이 시작되자 아킬레는 아버지의 생애를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7년 전, 루치오 아모스 신부는 로마에서 악마를 색출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그는 악마임을 시인한 사람은 재판에 넘기고, 끝까지 부인하는 사람은 총으로 처형했다. 어느 날 루치오는 한 여인에게 자신이 악마임을 인정하라고 강요하며 총을 겨눈다. 그러나 여인은 총을 빼앗아 자신은 악마가 아니라는 말을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이 사건 이후 루치오는 악마 사냥꾼으로서의 명성과 함께 깊은 죄책감과 악몽을 안고 살아가게 된다.
사업가 콜랭 보네르는 파가니니의 이름을 내건 ‘카지노 드 파가니니’의 개업 전 파티를 연다. 콜랭의 약혼녀 샬롯 드 베르니에의 아버지는 귀족인 자신이 콜랭과 어울리는 이유는 오직 돈 때문이라며 그를 노골적으로 무시한다. 파티 도중 파가니니가 나타난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카지노 사업에 사용하는 데 동의한 적이 없다며 카지노 영업을 막는 문서를 내보인다. 이곳은 카지노가 아니라 공연장이며, 자신이 직접 대규모 개막 연주회를 열겠다고 선언한다. 카지노 개업을 기대하던 투자자들은 동요한다. 콜랭은 허가 없이 공연장으로 개업하면 카지노 사업에 막대한 손실이 생길 것이라고 판단하고 개막공연을 막기로 한다.
콜랭은 과거 유명한 악마 사냥꾼이었지만 여인의 자살 사건 이후 은둔하던 루치오를 찾아간다. 그는 파가니니가 악마라는 오래된 소문을 들려주며 루치오를 자극한다. 파가니니가 1802년부터 1805년까지 3년 동안 한 여인을 살해하고, 그녀의 장기로 바이올린을 만들었기 때문에 인간이 연주할 수 없는 기교를 구사한다는 이야기였다.
콜랭은 증거를 보여주겠다며 루치오를 파가니니가 자주 찾는 술집으로 데려간다. 파가니니는 술집 사람들의 고단한 삶을 위로하며 바이올린을 연주한다. 사람들은 그의 음악에 깊이 빠져든다. 루치오는 사람들을 완전히 사로잡는 그의 연주를 악마의 힘이라고 확신하고, 이후 파가니니의 주변을 맴돌며 그를 감시한다.
샬롯은 자신의 신분을 감춘 채 ‘크리스틴’이라는 가명으로 파가니니를 찾아간다. 파가니니는 그녀에게 여러 기이한 동물 소리를 내보라고 요구한다. 샬롯은 그의 요구를 따라 하다가 노래를 부른다. 파가니니는 그녀의 목소리에서 악상을 얻어 곡을 쓰기 시작하고, 두 사람은 카지노 대신 열릴 개막 공연에 함께 서기로 한다.
콜랭은 샬롯에게 반지를 선물하지만, 샬롯은 파가니니와 함께한 음악을 떠올리며 흔들린다.
이야기는 다시 파가니니 사후의 재판으로 돌아온다. 재판관은 파가니니의 시신이 어디에 있느냐고 묻는다. 아킬레는 여러 항구에서 입항을 거부당한 끝에 우연히 발견한 섬의 동굴에 아버지의 시신을 4년 동안 보관해 왔다고 대답한다.
아킬레는 아버지의 삶을 계속 이야기한다. 파가니니가 사랑했던 여인들은 모두 그를 떠났고, 아킬레의 어머니 역시 그의 곁을 떠난다. 아킬레는 아버지와 함께 살게 된다. 이야기는 다시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량처럼 살던 파가니니의 아버지는 그가 다섯 살이 되던 해 바이올린을 가져와 혹독하게 훈련시켰고, 어린 아들의 재능으로 돈을 벌었다. 루치오는 이런 이야기는 재판과 무관하다며 일축한다. 그는 파가니니가 마지막 유언장까지 교묘한 계략을 사용해 아킬레에게 재산을 남겼다고 주장한다.
회상 속 현재로 돌아오면, 루치오는 샬롯에게 파가니니가 악마라는 증거를 확보해 오라며 정체를 알 수 없는 물건을 건넨다. 샬롯은 파가니니의 집을 찾아가지만 어색하게 행동하며 공연을 앞두고 긴장한 것 같다고 둘러댄다. 곧 루치오가 집 안으로 들어오자 샬롯은 자신이 놓아두었던 물건을 급히 감춘다. 루치오는 파가니니를 몰아세우며 악마임을 인정하라고 요구한다. 파가니니는 자신은 음악을 사랑할 뿐이며 악마가 아니라고 맞선다.
마침내 개막 콘서트가 열린다. 샬롯은 마스크를 쓰고 무대에 올라 노래하지만, 콜랭과 그녀의 아버지는 곧 정체를 알아차린다. 공연이 끝난 뒤 콜랭은 자신의 집에서 샬롯을 추궁한다. 샬롯은 콜랭과의 약혼을 깨겠다고 선언한다. 콜랭은 샬롯의 아버지가 자신에게 큰 빚을 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며 그녀를 비웃는다. 그는 고리대금업자였던 자신의 아버지가 빚쟁이를 다락방에 가두고 물조차 주지 않았던 심정을 이제 알 것 같다며 샬롯을 다락방에 감금한다.
샬롯이 보이지 않자 파가니니는 콜랭을 찾아간다. 그때 위층에서 샬롯의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파가니니는 샬롯 아버지의 빚과 카지노 투자금, 위자료를 합친 약 20만 프랑을 자신의 연주 수익으로 갚겠다고 제안한다. 콜랭은 이를 받아들이고 파가니니의 공연을 본격적으로 추진한다. 파가니니의 인기가 높아질수록 공연 티켓 가격도 계속 오른다. 사람들은 파가니니가 정말 악마인지, 아니면 악마라는 소문을 이용해 돈을 버는 인간인지 수군거린다. 실제 수익은 공연을 주도하는 콜랭에게 돌아간다.
콜랭의 집사는 루치오를 찾아가 고해성사를 한다. 그는 샬롯이 다락방에 감금되어 있다고 털어놓으며 열쇠를 건넨다. 루치오는 샬롯을 풀어 준다. 샬롯은 파가니니가 악마가 아니며, 직접 그의 연주를 들어보면 알 수 있다고 루치오를 설득한다.
얼마 뒤 콜랭은 루치오를 찾아와 집사의 고해성사를 그대로 믿었느냐고 묻는다. 그는 파가니니가 계속 연주할 것이고, 그 돈은 자신이 벌 것이라고 말한다. 루치오는 악마가 벌어들인 돈이라면 교회가 모두 압수할 것이라고 응수한다.
콜랭은 돈이면 움직이는 바티칸의 신부들이 파가니니를 잡으러 오고 있다고 말한다. 이어 7년 전 여인의 자살 사건을 꺼낸다. 당시 여인을 악마라고 밀고한 사람은 콜랭의 아버지였다. 고리대금업자였던 그의 아버지는 그 사건 이후 큰 성공을 거두었다. 콜랭은 루치오에게 “악마는 의심하면서 왜 밀고자는 의심하지 않느냐”고 묻는다. 그는 여인의 자살 때문에 양심의 가책을 느껴 잠을 이루지 못하느냐며 루치오를 조롱한다. 이어 당시 사용된 총을 꺼내 그의 손에 쥐여 주고, 괴롭다면 스스로 목숨을 끊으라고 한다.
루치오는 크게 흔들린다. 그는 자살을 생각하고 악몽에 시달려 온 지난 시간을 떠올리며 신에게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묻는다. 그러나 결국 악마를 잡아야 한다는 자신의 소명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결론 내린다.
루치오는 샬롯에게 바티칸의 신부들이 파가니니를 만나면 그가 죽게 될 것이라며, 그들이 도착하기 전에 파가니니를 자신에게 데려오라고 한다. 샬롯은 파가니니에게 루치오를 만나러 가자고 설득한다. 그러나 파가니니는 연주를 선택하고 공연장으로 향한다. 파가니니의 건강은 이미 급격히 악화되어 있었다. 그는 쇠약해져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바이올린만은 연주할 수 있다고 말한다.
루치오는 파가니니를 찾아가 자신이 악마임을 인정하면 정식 종교재판을 받을 수 있다고 설득한다. 반대로 돈으로 움직이는 바티칸 신부들에게 붙잡히면 제대로 된 재판도 받지 못한 채 죽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파가니니는 연주밖에 모르는 자신이 악마라면 악마라고 소리친다. 그러나 그 내용을 문서에 서명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자신이 악마였다고 기록되는 순간 음악은 사라지고, 100년 뒤에는 악마의 전설만 사실로 남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자백서를 찢어 버리고 마지막 연주를 시작한다.
이야기는 다시 파가니니 사후의 종교재판으로 돌아온다. 루치오는 자신이 단순히 파가니니를 악마라고 주장하기 위해 참석한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나 파가니니는 비범한 재능으로 사람들을 미혹시킨 인물이었으며, 그런 영향력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킬레는 아버지가 악마가 아니라 오직 음악을 사랑했던 사람일 뿐이라고 변론한다. 그러나 교회는 파가니니의 매장을 끝내 허락하지 않는다.
파가니니가 세상을 떠난 지 36년이 지난 뒤, 아킬레는 다시 교회에 아버지의 매장을 허락해 달라고 요청한다. 그는 허락을 받는다면 아버지가 남긴 재산을 모두 교회에 기부하겠다고 제안한다. 재판관은 오랜 세월 포기하지 않은 아들의 요청을 받아들여 파가니니의 매장을 허가한다.
리뷰
뮤지컬 파가니니는 니콜로 파가니니의 실제 생애를 상당 부분 각색했지만, 역사적 사실을 재현하는 데 초점을 맞춘 작품은 아니다. 대신 '악마와 계약한 바이올리니스트'라는 오래된 전설을 중심에 두고, 사후 매장 재판이라는 액자 구조를 통해 이야기를 전개한다.
음악은 최근 본 국내 창작뮤지컬 가운데 인상적인 편이었다. 익숙한 파가니니의 곡을 반복해서 사용하는 대신 록 중심의 넘버를 선택했고, 강한 음향과 선명한 사운드가 이를 뒷받침했다. 공연은 콘서트를 연상시키는 큰 음량으로 시작했지만, 악기와 보컬은 끝까지 비교적 또렷하게 들렸다. 다만 대사는 다소 크게 느껴질 때가 있었고, 바이올린 역시 피아노와 밴드 사운드에 묻히는 순간이 있어 특유의 음색이 조금 약해진 점은 아쉬웠다.
음악은 파가니니 한 사람에게 집중되지 않고 주요 인물들에게 비교적 고르게 배분되었다. 라틴어 Dies Irae는 두 차례 등장하며 심판과 비극을 암시했다. 샬롯 드 베르니에 역의 안리나는 록 중심의 음악과 좋은 대비를 이루었다. 카지노 공연 장면에서는 메조소프라노를 떠올리게 하는 클래식한 창법으로 노래했고, 많은 넘버를 안정적으로 소화했다.
중극장 규모의 작품이지만 앙상블은 예상보다 많았고 무대도 역동적으로 구성되었다. 공연 내내 한 명의 무용수가 파가니니의 내면을 상징했고, 마지막에는 2층 구조물 위에서 몸을 비틀며 춤을 추다가 그 움직임을 말없이 니콜로 파가니니에게 넘긴다. 이어 파가니니가 앞으로 걸어나와 약 7분 동안 라 캄파넬라를 연주하는 장면은 작품에서 가장 강렬한 장면 가운데 하나였다.
홍주찬은 니콜로 파가니니를 젊은 에너지로 표현했다. 이 역할은 노래보다 바이올린 연주의 비중이 더 컸지만, 연주 사이의 보컬도 안정적으로 소화했다. 특히 마지막 라 캄파넬라는 역사극이라기보다 전자 바이올린 록 콘서트를 보는 듯한 인상을 남겼다. 동시에 다른 생각도 들었다. 파가니니 시대에는 거의 초자연적으로 여겨졌던 기교가 이제는 예고와 음대에서 연습하는 고난도 테크닉이 되었다. 음표를 따라 연주하는 것 자체는 더 이상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파가니니가 남겼던 감동과 당시 관객들이 느꼈던 충격을 다시 만들어 내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이 작품은 록 편곡과 강한 음향, 무대 효과를 결합해 현대 관객에게 그런 '악마의 기교'를 다시 체험하게 만들었다.
작품은 창작 넘버와 파가니니의 음악도 균형 있게 활용했다. 익숙한 바이올린 명곡만 이어 붙인 주크박스 뮤지컬이 아니라, 라 캄파넬라, 《24개의 카프리스》 일부, 그리고 몇몇 반복되는 파가니니의 선율만 직접 사용했다. 극의 전개는 새롭게 작곡된 노래가 이끌고, 파가니니는 바이올린 연주로 이에 응답하는 구조였다. 작곡가이자 연주자를 주인공으로 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잘 어울리는 방식이었다.
콜랭 보네르 역의 이승준은 계산적인 사업가를 설득력 있게 표현했다. 거의 모든 장면에서 상대를 조종하려는 인물처럼 보였고, 무대 위에서는 일부러 얄밉게 연기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래서 커튼콜에서 차분하고 진지한 표정으로 인사하는 장면이 오히려 더 의외였다. 루치오 아모스 역의 김종구는 강한 성량을 바탕으로 특히 콜랭과 맞서는 듀엣에서 존재감을 보였다. 아킬레 파가니니 역의 박주혁은 극의 감정적인 중심을 안정적으로 잡아 주었다. 대부분의 이야기를 회상 형식으로 이끌어 가면서도 과장하지 않았고, 마지막에 아버지와 짧게 눈을 마주치는 장면은 작품에서 가장 따뜻한 순간 가운데 하나였다.
대본은 아쉬움이 남았다. 중심 소재 자체는 흥미롭다. 뛰어난 재능을 가진 음악가가 주변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이용당하지만, 정작 사회는 피해자인 그를 타락의 근원으로 오해한다는 이야기다. 이 주제는 어린 시절부터 콜랭과의 관계, 그리고 교회가 그의 매장을 거부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일관되게 이어진다.
다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몇몇 인물의 행동에는 설득력이 다소 떨어졌다. 콜랭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계산적인 사업가로 그려지지만, 후반부의 일부 선택은 오히려 자신의 경제적 이익을 해치는 것처럼 보였다. 루치오 역시 냉혹한 종교재판관에서 죄책감을 느끼는 사제로, 다시 파가니니의 진짜 위험은 악마가 아니라 사람들을 사로잡는 비범한 재능이었다고 주장하는 인물로 계속 변화한다. 마지막 해석 자체는 흥미로웠지만, 그 변화가 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려면 앞부분에서 조금 더 충분한 복선이 있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
또한 몇몇 사건은 상당한 분량을 들여 제시되지만 끝내 충분히 회수되지 않는다. 이야기 전체를 이해하는 데 큰 문제는 없었지만, 답을 기대하게 만든 질문들이 그대로 남으면서 극의 추진력이 다소 약해지는 느낌을 주었다.
그럼에도 파가니니는 끝까지 몰입해서 본 작품이었다. 음악, 오케스트레이션, 음향, 배우들의 연기, 그리고 실제 바이올린 연주를 극 속에 녹여낸 방식은 꾸준히 흥미를 유지했다. 익숙한 클래식 명곡만으로 승부하지 않고도 바이올린 연주자를 주인공으로 한 뮤지컬이 충분히 성립할 수 있다는 점도 보여 주었다. 대본만 조금 더 다듬고 몇몇 인물의 동기를 더 촘촘하게 연결했다면, 큰 구조를 바꾸지 않고도 한층 완성도 높은 작품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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