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ki’s Borderline Personality Disorder Diary
키키의 경계성 인격장애 다이어리

경계성 인격장애를 가진 키키가 DBT를 통해 자신의 감정과 충동을 다스리고 견디고 살아갈 방법을 배워가는 이야기다. 무거운 주제를 정확한 치료 과정과 다양한 에피소드로 풀어내면서도, 5인의 호스트가 펼치는 멀티플레이와 랩, 유머를 더해 극적 재미를 놓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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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로 SH아트홀
극장명:
2026
관람 연도:
초연 연도: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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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 년도:

줄거리 & 리뷰
줄거리
5인의 호스트가 진행하는 토크쇼에 게스트로 키키가 출연한다. 키키는 자신을 관종이라 칭하며 경계성 인격장애를 앓고 있다고 밝힌다. 자신의 과거 이야기를 호스트들이 캐릭터 연기를 통해 재연해 주는 포맷이라고 들었다고 하자, 호스트들은 열성적으로 그의 과거 이야기를 연기해준다. 5명의 호스트가 등장하는 모든 인물을 연기하면서 극이 진행된다. 키키는 경계성 인격장애라는 것은 마음의 피부가 벗겨진 상태라고 표현한다. 아주 작은 자극도 크게 느끼는 상태이며, ‘경계성’은 과거 의사들이 신경증(Neurosis)과 정신증(Psychosis)의 경계에 있다는 의미로 붙인 명칭이라고 설명한다.
키키는 연인들을 사귀고 헤어지는 과정을 반복했고, 여자친구와 그녀의 전 남자친구의 집에 살고 있다. 어느 날 여자친구가 출장을 가는데 전 남자친구와 같이 간다고 하자, 둘이 같이 가는 이유를 상상하며 걷잡을 수 없이 의심이 커진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둘이 다시 사귀는 것까지 상상이 확대되고, 화가 나서 주체할 수가 없다. 그는 여자친구에게 헤어지자고 하고 그녀는 쿨하게 동의한다. 키키는 오히려 미련을 가지고 밥은 먹었냐며 다시 말을 걸어 대화를 이어가지만, 다시 화가 치밀어 집을 나간다. 그 후에도 잘못했다고 말하고 다시 돌아갈지 고민하다가 전화를 하지만, 그녀는 다시 전화하지 말라고 한다.
키키의 아버지는 경계성 인격장애와 같은 무서운 병명을 붙이는 것 자체가 키키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노력하면 극복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다. 키키는 혼자 있는 것을 가장 두려워하며 자살 시도, 자해, 마약 등의 행동을 되풀이한다.
판매직으로 취직한 첫날 코드 입력을 잘못해서 상사에게 혼난 후 다시 같은 실수를 하자 취직 첫날 뛰쳐나오는 등, 일주일 이상 다닌 회사가 없다.
혼자가 되고 두려움이 엄습하면 그는 정신병원 입원을 되풀이한다. 그에게 도움이 되는 의사는 없었고 마약 등 쉬운 탈출구를 찾기도 한다. 그러나 마지막 자해 시도 후 입원하여 만난 의사 에단(Ethan)에게 변증법적 행동치료(DBT, Dialectical Behavior Therapy)를 받게 된다. 먼저 자신의 감정에 집중하고 객관적인 상태에서 자신의 마음을 바라보는 마음챙김(Mindfulness) 훈련을 한다. 또한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져 극단적인 해결책을 택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 얼음을 손에 쥐고 견디는 고통 감내(Distress Tolerance) 과정도 거친다.
에단의 주선으로 취직도 한다. 나비 모양을 만들 종이를 규격대로 자르고 상사에게 커피를 갖다주는 등의 단순한 일이지만, 웬일인지 직원들은 키키가 일을 잘한다고 계속 칭찬한다. 어느 날 규격에 맞지 않게 종이를 자르고, 퇴근해야 하는데 추가 업무가 주어지자 그는 다시 도망갈 생각을 한다. 에단은 추가 업무는 지금 할 수 없다고 말하라고 하지만 키키는 사람들이 자신을 싫어할까 봐 걱정한다. 막상 그가 퇴근 후 일정 때문에 할 수 없다고 말하자 동료는 다음 날 하라고 대답한다. 키키는 종이를 잘못 재단한 것도 다른 동료에게 말한다. 그 동료는 재단기가 잘못 작동해서 자신도 재단 오류를 낸 적이 있다며 함께 억울해해준다.
키키는 데이팅 앱인 틴더(Tinder)를 설치하고 애인을 구하기 시작하지만, 그가 경계성 인격장애라고 말하는 순간 상대는 떠난다. 어느 날 베넷(Bennett)을 만나 마음이 통해 그의 집에 초대받는다. 그의 집은 고양이 오줌 냄새와 흐트러진 물건으로 더러웠지만, 키키가 자신의 병명을 말하는데도 베넷은 개의치 않고 그를 받아들인다.
신이 난 키키는 에단에게 이를 말하는데, 에단은 한 달 동안은 성관계를 하지 말고 참으라는 숙제를 준다. 너무 성급하게 관계에 몰입하지 말라는 것이다. 키키와 베넷은 어렵지만 한 달을 보내고도 서로 사랑을 느끼며 관계를 지속한다.
그러나 집에서 발견한 다른 여자의 옷을 보고 키키가 지나치게 추궁하는 바람에 베넷은 집을 나간다. 키키는 자신이 예전의 불안한 모습으로 돌아왔다고 느끼며 면도칼을 떠올리다가 에단에게 전화를 한다. 에단은 얼음을 손에 쥐라고 하며, 예전보다 한 단계 더 사고하고 멈추는 법을 터득했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그리고 키키에게 실제로 일어난 사실만 나열해서 생각하고, 그래도 힘들면 다시 연락하라고 한다.
키키는 어릴 때 지금은 죽고 없는 동생과 함께 지내던 시절을 떠올린다. 자신을 돌보던 베이비시터가 TV를 보던 자신을 이불 아래에서 성추행했고, 아버지가 집에 돌아오면서 그 행동이 멈추었을 때 키키는 두려움 때문에 잠든 척했다.
키키는 에단에게서 “잘못된 감정은 없다”는 것을 전제로 한 감정 조절(Emotion Regulation)을 배운다. 치료 과정을 모두 통과한 그는 오히려 말할 사람이 없어진 것에 서운해하면서 수소문하여 치유 모임에 참석한다. 참가자들은 경계성 인격장애 환자의 부모들이 대부분이었고, 키키에게 사람들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질문한다. 키키는 환자들의 행동의 ‘정당성을 인정해달라’, 그리고 ‘고통을 인정해달라’고 말하고 그들은 이를 받아들인다.
키키는 아버지가 보고 싶어진다. 막상 아버지를 만나고 보니, 아버지는 예전보다 많이 좋아졌다며 노력하면 나을 수 있다고 말하고 ‘경계성 인격장애’라는 말을 옆에서 들을까 봐 걱정한다. 이를 본 키키는 화를 낸다. 키키는 자신의 병이 노력한다고 완치되는 것이 아니라 정확한 진단과 지속적인 치료가 필요한 것이라고 말한다. 다만 의학적으로 경계성 인격장애는 장기적인 치료를 통해 증상이 크게 호전되고, 상당수 환자에서 장기간 관해와 사회적 기능의 회복이 가능하다고 알려져 있다.
아버지는 정신과적 병을 받아들일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아들과 함께 테라피를 받기로 한다. 막상 치료에 들어가서는 각자 할 말만 하는 세션을 되풀이한다. 세션은 랩배틀처럼 진행되기도 한다. 아버지가 다소 늘어지는 랩을 하자 치료사는 “아버님, 박자는 맞추셔야죠”라고 말한다. 아버지는 생활이 힘들어서 돈을 벌어야 했으며, 자신도 기댈 사람이 없어서 힘들었다고 한다. 키키는 물론 그것은 이해하지만 자신의 병은 의지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정확한 진단과 지속적인 치료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아버지는 여행을 가는 등 회피만 했다고 한다. 아버지는 견딜 수 없어서 회피했다는 것은 인정한다. 치료사는 아버지의 회피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아버지는 자신의 입으로 처음으로 ‘경계성 인격장애’임을 인정한다고 말하며 아들에게 사과한다. 키키는 아버지에게 오늘 하루만 아버지의 회피 방법을 써보자고 하고, 병 이야기는 그만하고 태국 음식점에 가서 밥을 먹고 영화도 보자고 한다. 아버지는 클럽에 가서 랩배틀도 하자고 하는데, 키키가 “아버지, 박자는 맞추세요”라고 말하며 둘은 웃으며 서로를 바라본다.
다시 토크쇼로 돌아와서 키키는 평온한 모습으로 베넷과 5년째 사귀고 있고, 회사도 5년째 다니고 있다고 말하며 극은 막을 내린다.
리뷰
전문의가 아닌 사람이 인격장애를 주제로 한 극의 리뷰를 쓰는 것은 조심스럽다. 나도 모르게 해서는 안 될 말을 쓸 수도 있다는 경계심이 든다. 이와 반대로 정신과적 질병을 다른 질병과 마찬가지로 더 많이 드러내고, 필요한 사람들이 진단과 치료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도 함께 든다.
극을 보면서 주위에 경계성 인격장애는 아닐지라도 신경정신과 진료나 심리치료를 받거나, 권유하고 싶은 사람들이 많다는 생각을 했다. 평생 동안 우울·불안·알코올·니코틴 장애 중 하나 이상을 최소 한 번 이상 겪는 유병률은 27.8%라고 한다. 경계성 인격장애는 해외 연구에서는 2.7~5.9%로 보고되지만, 국내 진단 통계는 1만 명당 1명(약 0.01%) 수준으로 나타난다고 한다.
Shin H, Lee HS, Lee BC, Park G, Uranbileg K, Park Y, Yun M, Seok JH. "The Prevalence and Clinical Characteristics of Borderline Personality Disorder in South Korea Using National Health Insurance Service Customized Database." Yonsei Medical Journal. 2023;64(9):566-572.
DOI: 10.3349/ymj.2023.0071
PMC (원문 무료): https://pmc.ncbi.nlm.nih.gov/articles/PMC10462810/
PubMed: https://pubmed.ncbi.nlm.nih.gov/37634633/
이러한 차이가 실제 유병률의 차이를 그대로 의미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정신질환에 대한 낙인과 진료를 꺼리는 경향 때문에 병원에 오지 않거나 진단받지 않은 사람들이 통계에서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수십 년 전에는 통계상 환자가 훨씬 적었을지도 모른다. 환자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진단받지 못한 사람들이 상당수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면, 그만큼 증상을 호전시킬 기회도 잃게 된다.
《키키의 경계성 인격장애 다이어리》는 2024년 K-Musical Market에서 선정되어 K-뮤지컬 로드쇼 in 런던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런던 새들러즈 웰즈(Sadler’s Wells) 소속 릴리안 베일리스 스튜디오에서 공연된 극이다. 따라서 기대가 컸다. 보면서 이 극은 교육자료로 써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전문가가 아니므로 확실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병을 정확히 진단하고 검증된 치료법을 적용하는 것이 증상을 개선하는 데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극에서 키키가 말하듯 단순히 의지만으로 ‘완치’하는 문제로 그려지지도 않는다. 의학적으로는 경계성 인격장애 역시 적절한 치료를 통해 증상이 크게 호전되고 장기간 관해에 이를 수 있으며, 안정적인 관계와 직업생활을 유지하는 등 기능적인 회복도 가능하다고 알려져 있다. 극 역시 병이 사라졌다고 선언하는 대신 키키가 5년 동안 자신의 증상을 다스리며 살아가는 모습으로 끝난다.
신경정신과적 질병이 아니더라도 아프지 않은 인간은 없다. 단 한 명도 역사에 없다. 질병은 인간과 함께 존재하고 모두 태어나고, 아프고, 죽는다. 따라서 나와 다른 질병의 유병자라고 해서 배척하는 것은 어쩌면 바보 같은 일이다. 나의 미래도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 극은 무거운 주제를 에피소드로 엮으며 재미있게 풀어냈고, 재미를 위해 사실을 비틀지 않으면서도 극의 완급을 조절했다. 또한 질병에 의해 나타나는 증상들을 자연스럽게 보여주었고, 다스리는 방법도 제시했다. 물론 극을 보고 그대로 따라 하면 안 되고 반드시 전문의에게 진료를 받아야 하지만, 유사한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이겨내는 이야기는 힘이 된다.
키키를 연기한 이호원 배우의 노래는 호흡을 많이 사용하는 아이돌 가창과 비슷했다. 격정적으로 부르는 대목에서 연기가 뛰어났는데, 감정이 너무 올라와서 노래는 다소 끊어졌다. 중간에 아버지와 랩배틀을 하는 대목이 좋았다. 아버지를 연기한 문지수 배우는 아재 개그를 날리기도 했는데, 랩을 천연덕스럽게 박자를 밀려가면서 해서 치료사가 “아버님, 박자는 맞추셔야죠”라고 할 때 재미있었다. 이호원 배우의 마이크 잡는 자세와 레이백 구사뿐 아니라 래퍼의 몸짓이 보였다.
이호원 배우는 매우 뛰어난 댄서이다. 잘 알겠지만 궁금하면 ‘호야 듀스’만 유튜브에 검색해도 알 수 있다. 연기 중 살짝 몸을 움직이는 것조차 놀랄 만큼 부드러웠다. 몸을 움직일 때 무대에서 전혀 긴장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고, 표현하고 싶은 것을 몸으로 마음껏 표현했다. 커튼콜 영상을 보니 원형무대 둘레를 걸을 때도 몸의 축이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커튼콜 후에는 약간의 댄스와 백플립, 브레이킹을 보여주었는데, 과시하듯 큰 동작을 하는 것이 아니라 물 흐르듯 힘을 빼고 몇 동작을 스무드하게 연결하고 나갔다.
김새하 배우는 재연하는 배역에 따라 목소리 변화도 잘 냈고, 무엇보다 노래에 힘이 있었다. 기분 좋게 터져 나오는 목소리였다.
이창하 배우는 어디서 본 얼굴이라고 생각했는데 《몽유도원》에 나왔던 배우였다. 기억이 나기 시작하니 그때 불렀던 소절도 정확히 기억났다. 베넷을 연기한 호스트였다.
이주찬 배우는 에단 역을 했다. 키키의 감정이 돌풍을 일으킬 때마다 가동되는 화염방사기 역할도 했다.
윤지우 배우 역시 에피소드 중 여러 역할을 했는데, 고양이 역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연주를 한 밴드 멤버 역시 호스트 피(피아노 정지연) 등으로 불렸고, 공연 중 거수하는 장면에 참여하기도 했다. 드럼은 “소리 질러”를 외치기도 했다.
넘버들은 짜임새 있었고, 멜로딕한 곡부터 랩까지 폭넓게 쓰였다.
그래도 키키는 자신의 증상을 잘 다스리는 법을 배웠고, 아버지, 주치의 에단, 애인 베넷 등 주위에 자기 편도 만들었다. 마음이 저절로 평안하면 얼마나 좋을까? 그가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을 훈련으로 익힌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었다.
그가 극 중 한 대사 한 줄이 머리에 계속 남았다. 떠나려는 애인에게 “네가 없으면 세상이 끝나.”
아니다.
“내가 없으면 나의 세상은 끝난다.” 모든 사람에게 자신이 가장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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