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archist
아나키스트

혁명을 꿈꾸는 글쟁이, 생계를 위해 도둑질하는 남자, 함께할 사람을 찾는 소년이 1930년대 중국에서 뜻밖의 한 팀을 이룬다. 서로 다른 바람을 품은 세 사람은 한국 독립운동에 함께 나선다.
Musical Reviews › Korean Original › 2026
관람 년도:

줄거리 & 리뷰
줄거리
일제강점기 톈진. 자전거로 손님을 태우며 생계를 잇는 소년은 조선은행을 털 계획을 세우고 사전 답사를 하러 가는 덕형을 은행까지 태워준다. 덕형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던 소년은 일본 장교와 시비가 붙고, 장교의 총을 빼앗으려다 팔을 다친다. 덕형은 총을 챙긴 뒤, 팔을 다쳐 쓰러진 소년을 자경과 함께 지내는 곳으로 데려온다. 이름도 생일도 모른 채 살아온 소년에게 두 사람은 무혁이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무혁이 보기에 자경과 덕형은 큰일을 도모하며 사는 듯하다. 덕형은 이제 세상에 없는 한길의 이야기를 무혁에게 들려준다. 덕형과 한길은 소매치기로 돈을 마련하다 자경의 지갑을 훔친다. 자경이 지갑을 찾으러 와서 따지자, 두 사람은 대의를 위해 자금을 모으는 중이라고 말한다. 자경이 두 사람에게 어떤 진영에 속해 있는지 묻자, 한길은 서로 나뉘는 대신 하나가 되는 세상을 이야기한다. 자경은 그들을 아나키스트라고 생각한다. 선언문을 쓰고 발표하려 해도 글을 실어주는 곳이 없던 자경은 글로만 저항해온 자신을 부끄러워하며, 덕형과 한길의 행동에서 자신의 혁명 의지를 발견하고 그들과 함께하기로 한다.
덕형은 무혁에게 퇴로를 확보하게 하고 조선은행을 털어 큰돈을 챙긴다. 자경은 대의를 위해 독립군이 있는 상하이로 떠나자고 한다. 상하이에 도착했을 때 자경은 정장을 차려입고 있지만, 덕형과 무혁의 옷차림은 누추하다. 프랑스 조계에서 접선하려면 양복 정장이 필요해 두 사람도 양복을 맞춰 입고, 세 사람은 짐을 꾸린다. 이들은 접선 장소로 추정되는 카페와 빵집, 영화관을 옮겨 다니며 접선책을 기다린다. 덕형은 무혁이 생일을 모른다는 사실을 알고 케이크를 사주며 그날을 무혁의 생일로 정한다. 세 사람은 독립운동의 대의뿐 아니라 함께 나누는 우정도 소중히 여긴다. 자경은 선언문을 계속 쓰고, 덕형은 모든 사람이 원하는 것을 이루는 세상은 인간이 만들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세 사람의 동지애를 소중히 여긴다.
자경은 초조해하며 두 사람에게 접선 장소로 추정되는 곳들을 계속 순회하라고 한다. 접선책이 나타나도 덕형은 암호를 알아듣지 못해 만남은 실패한다. 덕형은 자신이 독립운동에 별 관심이 없다며, 한길이 죽은 것도 자경 때문이라고 비난하며 자리를 떠난다. 자경은 무혁에게 한길과 덕형이 원래 소매치기였으며, 한길이 자신에게 그 사실을 털어놓았다고 말한다. 한길은 자신의 처지가 부끄러워 대의를 위해 싸우는 사람인 것처럼 자신을 꾸몄지만, 자경의 뜻에 동의해 관리에게 위해를 가하려다 사살되었다.
시간이 흘러 세 사람은 무혁의 생일을 다시 축하한다. 얼떨결에 상하이까지 왔지만, 세 사람이 꿈꾸는 세상은 서로 다르다. 덕형은 무혁에게 다시 은행을 털자고 한다. 이번에는 무혁이 총을 들고 은행을 털어 성공한다. 자경은 덕형이 무혁을 다시 위험에 끌어들였다며 화를 내고, 덕형은 폭탄은 비싸지만 은행을 털면 그 돈으로 살 수 있다고 맞받아친다.
자경은 혼자 카페로 가 접선하고, 일본 관리가 기차로 도착한다는 정보를 얻는다. 두 사람에게 남길 메시지를 접선책에게 전한 뒤 총을 들고 나선 자경은 사살된다.
자경의 죽음을 라디오로 들은 덕형은 폭탄 두 개를 구해 일본 관리가 배를 탈 때 터뜨리려 한다. 무혁은 두 사람 없이 살아갈 이유가 없다며 자신도 함께하게 해달라고 한다. 덕형은 무혁에게 폭탄 하나와 안전한 이동 경로를 알려주고, 자신은 배를 향해 폭탄을 터뜨린 뒤 사살된다. 무혁은 홀로 남는다.
세월이 흘러 원폭 투하와 포츠담 선언 이후, 무혁은 자경의 아들을 만난다. 무혁은 자경이 남긴 글 더미를 아들에게 건네며 그의 아버지가 훌륭한 사람이었다고 말하고, 아들은 고마움을 표한다. 무혁은 글 맨 위에 놓인 ‘세계의 바람과 하나의 나무’라는 메모를 자신에게 달라고 해 챙긴다. 이후 접선책과도 만난다. 접선책은 자경이 남긴 글을 무혁에게 전하며 남쪽과 북쪽 중 어디로 갈 것인지 묻지만, 무혁은 아직 모르겠다고 답한다. 함께 “하나, 둘”을 외치던 두 사람은 이제 없지만, 무혁은 홀로 “셋”을 외친다.
리뷰
중극장 극에 맞는 구성이었다. 음향도 깔끔하게 들렸고, 건반과 드럼 등 반주도 명료했다. 2층에서 관람했는데, 주중 밤 공연이라 2층에 관객이 많지 않아서 보기 편했으나 객석이 너무 추워서 한 시간쯤 경과했을 때는 극보다 추위를 버티기가 힘들었다.
무혁 배역의 진호 배우가 자신을 돌멩이에 비유하는 곡으로 시작했는데, 그의 높은 음 가성과 팝 발성에 익숙해 있어서 중간 굵기의 안정적인 바리톤 소리는 놀라운 발견이었다. 음색도 좋고, 매우 안정적이어서 듣기가 좋았다. 이 극은 중간 음역대를 많이 사용하고, 간혹 락 발성을 질렀는데 주로 자경이 이를 담당했고 다양한 색채를 부여했다. 넘버가 좋았다. 진호의 바리톤 목소리의 발견과 함께 김도빈의 락 발성과 김도빈, 김재한의 바리톤 음역대들이 좋았다. 중음역대가 흔들리지 않고 단단한 공연이 그리 많지 않아서 듣기 즐거웠다.
자경 배역이 두 번째 있었지만, 극의 메인 주제를 끌고 가는 역할을 했다. 그가 그들의 모임을 아나키스트라고 명했고, 그들의 삶의 이유를 독립운동으로 정의했고, 은행털이의 작전도 그가 짰다. 자경이 멀리 떨어진 곳에서 선언문을 낭독하며 경찰 인력을 끌어모으는 사이 덕형이 은행을 터는 방식이었다. 상해로 가는 것도, 접선책과의 만남도, 폭력적 저항도 그가 주도했다. 그는 비겁하게 글로만 싸우던 자신을 부끄러워하는 시대적 빚을 짊어지고 사는 사람이었는데, 덕형과 한길의 소매치기가 트리거 작용을 해서 그를 행동하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자경은 그의 본명이 아니었고, 아들 등 가족도 있는 사람이었으니 상해로 가는 것은 그에게는 아주 큰 결심이었을 것이다. 처음부터 산뜻한 양복 정장을 입고 있는 것을 봐도 부유층임을 알 수 있었다.
덕형은 소매치기를 한길에게 가르치고, 나중에는 무혁도 가르친다. 그는 먹고살기 위해 소매치기를 했고, 사람들이 하고 싶은 것을 다 하는 세상이 오면 좋겠지만 그걸 인간이 이루겠느냐고 되묻는 비교적 단순한 사람이다. 은행 동선은 자기가 짜지만 정작 그 동선을 따르지 않는 인물이기도 하다. 은행강도에 한 번 성공하고 나니 상해에서도 다시 시도를 하는데, 이는 독립운동과 연결되기보다는 생계수단인 듯하다.
무혁의 처음과 끝은 자전거이다. 처음에는 생계를 책임지는 낡은 자전거, 마지막에는 자경의 유언으로 받은 새 자전거. 두 자전거 사이에 그의 세계는 완전히 뒤바뀌었고, 그는 자경과 덕형의 죽음으로 사회적으로 각성한 인간이 되었다.
줄거리 자체는 잘 짜여 있었다. 여러 반전과 세 남자의 우정으로 그 시절 민초들이 생각하는 안정된 생활상도 그렸고, 소위 지식인층의 절망감과 무력감도 자경을 통해 보여주었다. 시대적 상황 때문에 자경의 희생은 연쇄적으로 각성과 희생을 불러일으킨다. 덕형의 희생은 마치 레미제라블에서 그랑테르의 최후의 선택을 연상하는 듯했다.
식민 시대에 저항은 당연히 일어나는 일이었다. 일부는 적극적으로 저항했고, 일부는 계기가 오기 전까지 먹고사는 일이 더 중요했을 것이다. 이 극은 이러한 상황 속에 숙명처럼 만난 세 남자의 우정을 그리며, 그들의 지향점은 달랐지만 결국은 그들이 서로를 이해하게 된 것을 보여준다.
제목이 아나키스트인 것은 극의 내용과 그리 연관되어 보이지는 않았다. 박열이나 신채호로 대표되는 아나키스트 운동이 그려질 것이라 기대했지만, 극에서 그 테마는 자경이 붙인 이름 이상으로 전개되지 않는다. 한길의 '하나가 되는 세상'이 아나키즘으로 읽히기는 하나, 극의 중심은 자경의 독립운동과 덕형의 막연한 이상향이어서 제목과 다소 괴리가 있었다.
극에는 재미있는 요소들을 흩뿌려놓았다. 유머 코드는 무난해 보였다. 양복점에서와 같이 대놓고 팬서비스와 같은 넘버도 있었고, 말장난으로 웃기려는 것도 있었다. 단지 중간쯤 약간 내용을 압축하면 어떨까 싶었다. 인터미션 없이 120분 공연이었는데, 객석 내 추위와 함께 루스한 부분이 있었다. 3인극으로 진행하려면 10%쯤 시간을 줄이면 어떨까 한다.
선명한 민족주의적 색채로 보아 제작진은 일본 식민 지배를 겪은 국가들을 해외 진출 대상으로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하지만 세 남자의 우정과 서로 다른 지향이라는 뼈대는 조선 독립이 아닌 다른 격변기로 배경을 옮겨도 거의 그대로 통할 것 같다. 2026년 프로덕션에는 젠더프리 캐스팅으로 여자 배우 3명으로 구성된 캐스트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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