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mpicka

렘피카
렘피카는 폴란드 화가 타마라 드 렘피카의 삶을 바탕으로 한 뮤지컬이다. 1차와 2차 세계대전 사이의 유럽의 예술, 욕망, 생존, 정치적 혼란 속에서 그녀의 성공과 관계를 그리지만, 지나치게 많은 주제를 동시에 담으려 하며 중심 감정선이 흐려진다. 강렬한 보컬과 아르데코 미학은 인상적이지만, 작품은 끝내 하나의 주제로 응집되지는 못한다.
Musical Reviews › Licensed in Korea › 2026
리뷰
'렘피카'는 그녀의 아르데코 그림들처럼 강렬한 색과 굵은 선으로 거대한 인물을 그려내려 하지만, 끝내 완전히 하나로 응집되지는 못한 채 여러 조각들이 이어 붙은 듯한 인상을 남긴다.
이 작품은 1차, 2차 세계대전 사이의 시대에 활동했던 폴란드 화가 타마라 드 렘피카의 삶을 바탕으로 한 전기 뮤지컬이다.
극은 1975년 캘리포니아에서 시작된다. 나이든 렘피카는 이제 아무도 자신의 화려했던 시절을 기억하지 않는다고 한탄한다. 그리고 무대 위에서 곧바로 결혼식을 올리기 위해 웨딩드레스를 입은 젊은 시절의 타마라로 변신하는데, 예상 가능한 연출이라 크게 놀랍지는 않았다. 마치 새로운 뮤지컬이 오래된 연극적 장치를 가져다 쓴 듯한 느낌이었다.
타마라는 폴란드 귀족 타데우스 렘피키와 사랑에 빠진다. 볼셰비키가 그를 체포하자, 그녀는 고위 장교에게 자신의 몸을 대가로 내주며 남편을 풀어달라고 거래한다.
이후 두 사람은 파리로 떠난다. 하지만 타데우스는 냉소와 패배감 속에 절어있고, 타마라는 초상화를 그리며 점점 성공한 화가로 자리 잡아간다. 라울 쿠프너 남작 부부를 통해 그녀는 미래주의자 필리포 토마소 마리네티를 만나는데, 그는 초상화를 부자들과 권력자를 위한 예술이라며 비웃는다.
어느 날 바에서 타마라는 보헤미안 매춘부 라파엘라에게 강하게 끌린다. 늘 딸을 그리던 그녀는 이제 라파엘라를 그리고 싶어 한다. 두 사람은 뜨겁게 사랑에 빠지지만, 타마라는 그 관계를 세상 앞에 드러내려 하지 않는다.
라파엘라는 타마라의 반대에도 국제 박람회에 참석하고, 타데우스는 자신과 라파엘라가 결국 같은 여자를 사랑하고 있다고 쓰라린 말을 내뱉는다. 폴란드에서 새로운 직장을 제안받은 그는 타마라에게 함께 떠나자고 한다.
큰 다툼 끝에 라파엘라는 떠나고, 타데우스도 떠날 준비를 한다. 타마라는 뒤늦게 라파엘라는 떠났고 아직도 그를 원한다고 말하지만, 그는 이미 늦었다고 답한다.
한편 유럽에는 파시즘이 퍼져가고, 마리네티는 무솔리니의 편에 선 모습으로 다시 등장한다. 사회에서 ‘바람직하지 않은’ 사람들은 점점 사라지기 시작한다. 유대인인 남편의 안전을 걱정한 바론 부인은 죽기 전 타마라에게 그를 부탁한다.
다시 1975년 로스앤젤레스로 돌아온 타마라는 자신은 직사각형 캔버스는 통제할 수 있었지만 세상은 통제할 수 없었다고 말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이 통제와 혼돈 사이의 긴장을 뮤지컬 작품에선 끝내 완전히 다루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렘피카'는 끊임없이 타마라 드 렘피카가 위대한 인물이었다고 관객을 설득하려 하지만, 정작 그녀를 움직이는 핵심이 무엇인지는 끝내 선명하게 보여주지 못한다. 그녀의 인간관계 대부분은 계산적이거나 세심하게 관리된 것처럼 보인다. 그녀가 스스로 적극적으로 선택한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감옥에 갇힌 남편을 구해낸 일, 라파엘라를 향한 강한 집착과 열정, 그리고 그림 자체 정도이다.
작품은 라파엘라를 자유와 열정의 상징처럼 그리지만, 정작 타마라는 대부분의 시간 동안 그 관계를 숨기고 통제하려 한다. 라파엘라는 동등한 연인이라기보다 렘피카의 세계 안으로 흡수된 뮤즈처럼 보일 때가 많다. 물론 시대적 배경은 이해하지만, 현대 뮤지컬이 굳이 이 관계를 이렇게까지 비밀스럽게 다뤄야 했는지는 의문이었다. 1차세계대전 후 유럽의 예술계와 상류층은 그렇게 단순한 도덕 세계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반복되는 숨김과 억압은 감정이라기보다 극적 장치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다.
그래서 이 작품은 어딘가 'The Queen of Versailles'를 떠올리게 했다. 결국 자기 신화를 구축하는 전기극인데, 관객이 타마라를 존경하게 만들지도, 그녀의 삶의 철학을 감정적으로 이해하게 만들지도 못한다. 극은 계속해서 강렬한 재료들을 꺼내놓지만 끝내 단단한 감정의 중심을 만들지는 못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렘피카의 그림들 자체가 오히려 그녀를 더 잘 설명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녀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결국 그녀가 가장 사랑했던 것은 아르데코 시대 특유의 양식화된 인간의 육체와 아름다움이 아니었을까 싶다. 만약 작품이 타마라가 부유한 귀족이든, 돈이 되지 않는 라파엘라든, 인간의 아름다움 자체를 사랑했던 인물이라는 점을 더 분명히 보여주었다면 그녀의 감정은 훨씬 설득력 있게 다가왔을 것이다.
작품 속에서 타마라는 남편과 라파엘라를 모델로 한 ‘아담과 이브’ 그림이 계속 등장한다. 이는 양쪽 모두를 사랑하는 그녀의 갈등과 동시에 아름다운 인간 육체 자체에 대한 탐미를 드러낸다.
하지만 작품은 타마라의 가장 강렬한 감정을 주로 그녀가 취해 있거나 무모하거나 감정적으로 흔들릴 때만 보여준다. 라파엘라가 떠나자마자 타마라는 거의 곧바로 다시 남편에게 돌아간다. 작품은 그녀가 남편과 라파엘라 둘 모두를 사랑했다고 계속 암시하지만, 그 감정들을 연결하는 논리는 끝내 흐릿하게 남는다.
문제는 마리네티나 수지 같은 주변 인물들이 극적 기능 이상의 입체성을 거의 갖지 못한다는 점일지도 모른다. 작품은 또한 돈, 비싼 그림, 부유한 후원자, 사회적 지위 같은 요소를 반복해서 보여주지만, 그것들을 끝내 하나의 선명한 인물상으로 묶어내지는 못한다.
타마라는 굳이 도덕적으로 훌륭한 예술가일 필요는 없었다. 세속적이고 계산적인 예술가 역시 충분히 매력적일 수 있었다. 하지만 작품은 그녀의 야망을 계속 멜로드라마적인 장식으로 감싸며 부드럽게 만든다. 그 결과 아이러니하게도 그녀는 오히려 덜 흥미롭고, 덜 인간적으로 느껴진다.
음악 역시 또 다른 층위의 이질감을 만든다. 김선영과 손승연 배우는 놀라울 정도로 훌륭하게 노래했고, 남편과 딸 역 배우들도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작품은 거대한 현대식 벨팅 넘버들을 산업적인 무대 위에 밀어 넣는다. 보헤미안 의상과 쇠락해가는 러시아 귀족풍 의상들이 공존하는 공간 속에서 앙상블은 끊임없이 무대 곳곳을 오가며 관객의 시선을 분산시킨다.
오히려 이 작품에는 더 재즈적이거나 아방가르드한 음악 언어가 어울렸을지도 모른다. 지금의 스코어는 지나치게 거대한 감정적 연극성을 밀어붙이기 때문에, 작품은 렘피카의 그림이 지닌 차갑고 관능적이며 기하학적인 세계보다는 웅장한 멜로드라마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사람은 결국 생존과 욕망 앞에서 계산한다. 타마라는 굳이 장식적인 멜로드라마 뒤에 숨어야 할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작품은 그녀의 날카로운 면을 계속 부드럽게 만들고, 계산적인 본성을 더 받아들이기 쉬운 비극적 인물처럼 포장하려 한다. 그 결과 아이러니하게도 그녀는 오히려 덜 흥미롭고, 덜 인간적으로 느껴진다.
'렘피카'는 결국 두 방향을 동시에 붙잡으려 한다. 창작진은 사회 규범을 거부한 위험하고 화려한 여성의 이미지를 원하지만, 동시에 그녀가 끝까지 냉혹하고 계산적이며 감정적으로 불투명한 인물로 남는 것은 두려워하는 듯하다. 만약 작품이 타마라를 아름다움과 생존, 권력을 위해 거리낌 없이 움직이는 불편한 여성 주인공으로 끝까지 밀어붙였다면, 훨씬 더 독창적이고 강렬한 작품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이 갤러리의 사진은 촬영이 허용된 경우 직접 촬영했거나, 소장 중인 프로그램·티켓·기념품을 촬영한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