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ls Kitchen

헬스키친
브로드웨이에 이어 한국어 라이선스 공연으로 다시 본 Hell's Kitchen은 문화적 번역을 거쳐도 무엇이 살아남는지를 관찰하는 경험이었다. 인종적 맥락과 언어는 달라졌지만, Alicia Keys의 음악은 여전히 강력한 드라마를 이끌었고, 박지원은 설득력 있는 십대 알리를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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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초연:
2026
세계 초연:
2023
관람 년도:
2026
공연 극장명:
GS아트센터
리뷰
2025년 브로드웨이에서 보았던 Hell's Kitchen을 한국어 버전의 라이선스 공연으로 관람했다. 이번 공연은 Alicia Keys가 번역 및 현지화에도 참여하고, 개막일에는 무대인사까지 했다고 한다.
작년 뉴욕에서 보았을 때, 주크박스 뮤지컬 특유의 이음새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스토리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한국에서도 같은 느낌이었다. 기존 히트곡을 억지로 이어 붙인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뮤지컬을 위해 작곡된 음악처럼 연결된다. 한국 공연에서는 이미 그 구조를 알고 있었기에 처음 느꼈던 놀라움은 줄었지만, "Pawn It All"에서는 다시 한번 "이 곡을 이렇게 활용했구나." 하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주크박스 뮤지컬 특유의 연결 방식을 발견하는 재미는 다소 줄어들었지만, 그만큼 작품의 완결성은 높아졌다.
단지 1막이 거의 끝날 무렵에야 한국 배우들이 약 30년 전 뉴욕의 이야기를 표현하기에는 너무도 한국인으로 보인다는 인식을 어느 정도 극복한 것 같았다. 뉴욕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하기에는 '레이 아저씨', '라이자 제인 선생님' 등의 존칭이나 demeanor가 한국적일 수밖에 없었다. 다른 방식으로 번역하기는 어려운 일이니까.
미스 라이자 제인이 앨리에게 건네는 대사 중 "You are but the latest branch on a long-standing tree, rising triumphant from the roots of Florence Price, Margaret Bonds, Hazel Scott. We honor these roots—our ancestors, the patriarchs, and especially the matriarchs..."라는 구절이 기억에 남는다. 브로드웨이 관람 당시부터 이 대목이 한국어로 옮겨질 때 어떻게 처리될지 궁금해서 유심히 들었던 부분이다. 원문은 "patriarchs, and especially the matriarchs"로 모계 선조에 방점을 찍는 구조인데, 한국 공연에서는 "훌륭한 음악 선배 아버지들을 기억해야 해, 어머니들도"로 번역되어 아버지가 먼저 호명되고 어머니는 뒤따르는 부수적 언급으로 처리되었다. 같은 문장이 언어를 건너며 강조점이 달라지는 과정이 흥미로웠다.
박지원 배우의 이번 공연은 뮤지컬 데뷔 무대였다. 기대반 걱정반으로 첫 무대를 지켜보았다. 나는 데뷔 무대만이 가진 풋풋함과 약간의 어색함까지도 좋아하는 편이다. 'The River'에서는 약간 박자가 딱딱한 편이었지만 그루브를 잘 타며 제 몫을 해냈다. "Kaleidoscope" 초반부는 이 배우의 매력이 가장 잘 살아난 대목이었다. 다만 곡 후반 앙상블이 붙는 클라이맥스에서는 소리가 뚫고 나오지 못하고 묻히는 아쉬움이 있었다.
하지만 공연이 진행될수록 왜 이 배우가 캐스팅되었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노래보다 더 인상적이었던 것은 캐릭터의 연령감이었다. 뉴욕에서 본 앨리는 실제 17세 배우가 연기해서, 그저 걷고 서 있는 것만으로도 그 나이 특유의 반항심과 첫사랑의 설렘이 자연스럽게 묻어났다. 한국 공연에서는 앨리가 18세(한국 나이 적용으로 추정)로 설정되어 있었는데, 박지원 배우 역시 그 나이대의 소녀로 충분히 믿기게 다가왔다.
이미쉘 역시 특유의 래핑이 돋보였다. Knuck의 친구들은 브로드웨이에서보다 코믹 릴리프 이상의 역할을 하지 못한 인상이었는데, 버킷 드럼의 존재감이 줄어든 영향도 있었던 것 같다. 뉴욕에서 볼 때 버킷 드러밍 소리가 매우 인상적이어서 그 소리를 기대했기 때문에 더 아쉬웠다.
저지 역의 박혜나 배우는 브로드웨이 캐스트보다 훨씬 완고하고 확신에 찬 모습이었다. 극 중 저지는 17세에 앨리를 낳은 것으로 설정되어 있으니, 극중 시점에서는 30대 중반 정도일 것이다. 한때 배우로서 맨해튼 플라자에 입주할 자격을 얻었던 예술가였지만, 지금은 딸을 안전하게, 즉 너무 이른 임신 없이 성인이 되도록 키워내는 일에 온 신경이 매몰된 현실에 지친 사람으로 그려진다. 그 완고함은 사랑이 아니라 두려움에서 나온 완고함처럼 보였다.
미스 라이자 제인 역의 김영주, 정영주 두 배우가 캐스팅되었을 때, 제작진이 그리는 '한국형 라이자 제인'의 결을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두 배우 모두 대사와 가창에 복모음을 짙게 굴리고 음을 벤딩하는 창법이 몸에 배어 있어, R&B와 블루스, 컨트리적 정서가 뒤섞인 이 캐릭터의 음악과 자연스럽게 맞아떨어졌다. 그렇게 듣고 나니 브로드웨이의 욜란다 아담스가 보여준 절제된 딕션이 오히려 더 도드라져 보였다. 같은 무게감을 가진 인물이어도 소리를 다루는 방식은 이렇게 다를 수 있구나 싶었다. 이날 라이자 제인을 연기한 김영주 배우는 평소보다 절제된 발음과 움직임으로 캐릭터의 무게를 안정적으로 잡아냈다.
데이비스는 케이윌이 맡았는데, 칼칼한 테너라서 색달랐다. 저지와 데이비스의 듀엣 "Un-Thinkable (I'm Ready)"에서 공연 중 가장 조화로운 화음을 들었다. 케이윌이 노래 중간에 들어오고 저지가 받아치는 순간에는 박혜나 배우의 힘 있는 그루브가 노래의 맛을 더욱 살렸다.
"Girl on Fire"는 가장 강렬하게 들었던 곡인데, 한국 공연에서도 나쁘지 않았다. 중요한 대목에서는 영어 가사 그대로 불러서 더 편하게 들렸다. 이하은 배우가 클라이맥스의 "This girl is on fire!!!"를 시원하게 뚫어 주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1막 내내 드럼이 극장을 전부 울리고 가슴을 쿵쿵 때렸으며, 다른 악기들을 뭉개지 않으면서도 해상도를 유지한 음향도 인상적이었다.
처음 이 작품을 접했을 때 느꼈던 갈등 구도는 한국 공연에서 다른 층위의 질문으로 다가왔다. 멤피스나 웨스트사이드 스토리처럼 다민족적 갈등이 극의 핵심 동력인 작품을, 상대적으로 단일한 민족 구성의 캐스트가 소화하는 일은 원천적으로 까다로운 과제다(물론 한국도 더 이상 완전한 단일민족 사회는 아니지만). 한국 공연에서는 "나는 흑인", "나는 백인"이라는 정체성을 직접 명명하는 대사가 그대로 남아 있어 원작이 지녔던 인종적 구체성이 다소 평면적으로 전달되는 인상이었다. 다만 이를 빈곤과 사회적 계층, 청춘의 성장통이라는 보편적인 축으로 확장해서 받아들인다면, 작품이 지닌 보편적인 성장 서사는 여전히 설득력을 유지했다.
피날레의 "Empire State of Mind" 역시 예상처럼 거대한 쇼피스가 되기보다는 절제된 편곡을 택했고, 뉴욕의 야경과 함께 노래 자체의 힘을 살리는 연출이 인상적이었다.
커튼콜에서는 드럼 솔로가 본 공연 못지않은 에너지를 보여주었다. 마침 이날까지 촬영이 허용되어 그 장면도 기록으로 남길 수 있었다.
오케스트라 편성도 흥미로웠다. 무대 철골 구조 안에는 건반과 기타 연주자가 보였는데, 처음에는 라이자 제인이 직접 피아노를 연주하는 줄 알았다. 그러나 손동작과 실제 연주가 일치하지 않는 것을 보고 별도의 연주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커튼콜 뒤 무대 후면 영상에서는 업라이트 피아노(또는 건반)를 연주하는 연주자와 퍼커션, 베이스 연주자까지 차례로 인사하는 모습도 확인할 수 있었다.
브로드웨이 공연과 비교하며 다시 본 Hell's Kitchen은 같은 작품이면서도 번역과 배우, 그리고 문화적 맥락이 달라질 때 무엇이 유지되고 무엇이 달라지는지를 관찰할 수 있었던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작품의 중심에는 여전히 Alicia Keys의 음악이 있었고, 그 힘은 언어가 바뀌어도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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