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isabeth

엘리자벳
엘리자벳은 자유분방한 소녀가 황후가 되어 권력과 자유를 얻지만 가족과 평온을 잃는 과정을 그린다. 죽음은 평생 그녀를 따라다니며 유혹한다. 이야기는 결국 그녀를 암살한 루이지 루케니의 내레이션을 따라 전개된다.
Musical Reviews › Licensed in Korea › 2026
리뷰
줄거리
황후 엘리자벳을 암살한 뒤 감옥에서 올가미로 죽은 루이지 루케니는 사후 세계에서 100년 전의 살인에 대해 다시 심문받는다. 이미 죽은 자신을 왜 계속 재판하느냐고 불평하던 그는, 엘리자벳이 평생 죽음을 원했고 자신은 그 뜻을 이루어주었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자신의 말을 증명하겠다며 당시의 죽은 사람들을 다시 불러내면서 엘리자벳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어린 엘리자벳은 아버지처럼 자유롭게 살고 싶어 하는 활기차고 자유분방한 소녀다. 어느 날 외줄에 매달려 놀다가 떨어져 처음으로 초월적인 존재인 ‘죽음(Der Tod)’과 마주한다. 죽음은 그녀에게 끌려 자신의 세계로 유혹하지만, 엘리자벳은 삶을 선택한다. 죽음은 이를 배신으로 받아들이고 이후 평생 그녀의 주변을 맴돌기 시작한다.
오스트리아 황제 프란츠 요제프는 어머니 소피가 정해둔 언니 헬레네가 아니라 엘리자벳에게 반해 그녀와 결혼한다. 엘리자벳 역시 처음에는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게 된 것을 기뻐하지만, 결혼 직후부터 황실 생활은 예상과 전혀 다르게 흘러간다. 소피는 자신이 원했던 며느리가 아닌 엘리자벳을 황실 교육이라는 명분으로 엄격하게 통제하고, 말 타기 같은 그녀의 자유로운 생활방식까지 문제 삼는다. 엘리자벳은 남편에게 도와달라고 호소하지만 요제프는 황실을 위해 어머니의 규율을 따르라고 한다.
엘리자벳은 점차 황궁을 자신을 가두는 새장처럼 느끼고, 누구에게도 자신의 삶을 맡기지 않겠다며 자유를 요구한다. 자녀들까지 소피가 데려가 직접 양육하지 못하게 하고 딸의 죽음까지 겹치면서 갈등은 더욱 깊어진다. 엘리자벳은 문을 걸어 잠그고 요제프에게 결국 어머니와 자신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라고 요구한다. 죽음이 다시 찾아와 자신에게 오라고 유혹하지만 이번에도 이를 거절하고, 자신은 아직 살 것이며 스스로의 힘으로 자유를 얻겠다고 선언한다. 결국 요제프는 엘리자벳의 요구를 받아들이고 소피는 절망한다.
한편 민중은 식량 부족에 시달리고, 루케니는 황후가 미용을 위해 우유를 모두 사용하기 때문에 백성들에게 돌아갈 우유가 없다고 선동한다. 실제로 엘리자벳은 긴 시간 동안 머리를 손질하고 우유 목욕을 하는 등 자신의 외모를 정교하게 관리한다. 엘리자벳은 유명한 초상화처럼 화려하게 치장한 황후의 모습으로 등장하며, 더 이상 소피에게 끌려다니던 어린 황후가 아님을 보여준다.
2막에서 요제프와 엘리자벳은 헝가리 국왕과 왕비가 되어 국민들의 환호를 받는다. 죽음은 다시 그녀 앞에 나타나지만, 엘리자벳은 이제 자신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살아갈지 모두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며 승리를 선언한다. 그러나 그녀가 자유와 권력을 얻은 동안 어린 아들 루돌프는 정작 어머니의 보살핌을 받지 못한 채 홀로 자란다. 침대에서 어머니가 자신을 안아주기를 바라며 노래하던 루돌프 앞에 죽음이 나타나 자신이 친구라고 말한다. 외로운 루돌프가 가지 말라고 하자 죽음은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될 것이라고 약속한다.
엘리자벳의 영향력이 커지자 소피는 요제프와 그녀를 갈라놓기 위한 계략을 꾸미고 한 여성을 요제프에게 접근시킨다. 이후 운동 중 쓰러진 엘리자벳 앞에 의사로 가장한 죽음이 나타나 성병에 감염되었다고 말한다. 엘리자벳은 이를 남편의 배신으로 받아들이고 분노해 황궁을 떠난다. 요제프는 이 일이 어머니의 이간질에서 비롯되었다고 항의하며 소피와 사실상 결별한다.
이후 엘리자벳은 오랫동안 제국 곳곳을 돌아다니며 한곳에 정착하지 않는다. 정신병원을 방문했을 때는 자신이 엘리자벳 황후라고 믿는 환자를 만난다. 엘리자벳은 오히려 그 여자를 부러워하며, 자신은 육체가 아니라 영혼이 묶여 있고 차라리 광기나 죽음만이 자신을 벗어나게 해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한때 자유만 얻으면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었던 그녀에게 자유조차 더 이상 구원이 되지 못한다.
성인이 된 루돌프는 아버지와 다른 정치적 이상을 품고 황실을 비판하는 글을 쓰며 헝가리의 독립 세력과 어울린다. 어린 시절 자신을 찾아왔던 죽음이 다시 나타나자 루돌프는 그 존재를 직감한다. 그의 정치 활동이 요제프에게 발각되면서 부자의 갈등은 폭발하고, 궁지에 몰린 루돌프는 여행 중인 어머니를 찾아가 자신을 도와달라고 부탁한다. 그러나 엘리자벳은 자신은 이미 황실과 요제프에게서 벗어났으며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며 아들의 부탁을 거절한다.
어머니에게마저 외면당한 루돌프 앞에 죽음이 다시 찾아온다. 죽음은 그에게 총을 건네고, 루돌프가 든 총을 그의 머리 쪽으로 이끈다. 죽음이 루돌프에게 입을 맞추는 순간 루돌프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아들의 죽음에 무너진 엘리자벳은 뒤늦게 자신이 루돌프를 제대로 돌보지 못했음을 후회한다. 그리고 이번에는 자신이 죽음에게 데려가 달라고 애원한다. 그러나 평생 엘리자벳을 원했던 죽음은 오히려 지금의 그녀를 비웃으며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후 엘리자벳은 검은 상복을 입고 계속 떠돌고, 요제프가 다시 함께 살자고 간청해도 이미 되돌릴 수 없다며 거절한다.
한편 엘리자벳의 주변에서는 동생, 시동생, 사촌의 죽음이 이어지고, 죽음의 그림자는 점점 그녀 가까이 다가온다. 요제프는 환상 속에서 합스부르크 가문의 몰락을 목격하고, 죽음이 루케니에게 흉기를 던져주는 모습을 보지만 이를 막지 못한다.
루케니는 원래 오를레앙 공작을 암살하려 했으나 그가 행사에 나타나지 않자 새로운 표적을 찾는다. 그는 관객에게 신문이 친절하게 엘리자벳의 방문 사실을 알려주었다고 말하며 그녀로 암살 대상을 바꾼다. 제네바의 호숫가에서 루케니는 엘리자벳과 평범하게 스쳐 지나가듯 부딪치고, 그 순간 그녀를 찔러 치명상을 입힌다.
죽어가는 엘리자벳 앞에 마침내 죽음이 나타난다. 높은 곳에서 경사를 따라 내려온 죽음이 그녀를 맞이하고, 엘리자벳은 이번에는 그를 거부하지 않는다. 두 사람이 키스하는 순간 엘리자벳의 몸에서 힘이 빠지며 그녀의 삶은 끝난다.
죽은 엘리자벳이 죽음과 함께 무대 위에 남아 있는 가운데 아래에서는 다시 올가미가 내려온다. 루케니는 그 올가미에 스스로 목을 넣는다. 위의 엘리자벳과 죽음, 아래의 루케니에게 각각 조명이 비치고, 세 인물을 한 화면 안에 남긴 채 암전되면서 극은 끝난다.
리뷰
뮤지컬 《엘리자벳》은 오스트리아 황후 엘리자벳의 삶에 의인화된 ‘죽음(Der Tod)’을 결합한 작품이다. 수십 년에 걸친 삶과 합스부르크 왕가의 역사를 두 막 안에 담아야 하니 취사선택은 불가피하다. 이번 한국 논레플리카 공연은 정치와 왕조사의 비중을 줄이고 엘리자벳과 죽음, 프란츠 요제프, 소피, 루돌프 사이의 관계를 전면에 두었다.
극이 엘리자벳에게 가장 반복해서 부여하는 것은 자유와 아름다움이다. 어린 엘리자벳은 자유롭게 살고 싶어 하는 쾌활한 소녀지만, 결혼 후 소피가 황실 교육이라는 명분으로 그녀를 통제하면서 황궁은 새장이 된다. ‘새장 속의 새’, 자유를 반복하는 가사와 새장·깃털의 이미지도 이를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소피와의 갈등에서는 자녀 양육이 상당히 큰 비중을 차지한다. 엘리자벳은 아이들을 되찾기 위해 요제프에게 어머니와 자신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최후통첩까지 하고 결국 원하는 것을 얻는다. 그런데 2막에서는 어린 루돌프가 어머니의 보살핌을 받지 못한 채 외로워하고, 그 빈자리에 죽음이 들어온다. 수십 년을 압축한 결과라고 해도, 아이를 되찾기 위한 강한 투쟁과 이후의 양육 부재가 무대에서는 너무 가까이 붙어 있어 다소 충돌해 보였다. 초기 갈등의 중심을 양육보다 엘리자벳 자신의 자유와 황실 내 자율성에 조금 더 두었다면 후반의 루돌프와도 자연스럽게 연결되었을 것 같다.
1막 후반의 엘리자벳은 더 이상 소피에게 끌려다니던 어린 황후가 아니다. 유명한 초상화를 연상시키는 화려한 모습으로 등장하고, 아름다움은 그녀가 새롭게 획득한 힘처럼 강조된다. 루케니 역시 백성들의 입을 빌려 언제까지 아름다울 수 있겠느냐, 20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것이 신기하다는 식으로 끊임없이 그녀의 외모를 환기한다.
2막의 엘리자벳은 자유와 권력을 얻었지만 행복해지지는 않는다. 남편의 배신이라고 받아들인 사건을 계기로 황궁을 떠나고, 이후의 삶은 방황과 상실에 가까워진다. 정신병원에서 자신을 엘리자벳이라고 믿는 환자를 오히려 부러워하며 자신은 육체가 아니라 영혼이 묶여 있다고 말하는 장면이 이를 잘 보여준다. 자유를 얻기 위해 싸운 사람이 자유를 얻은 뒤에도 자신에게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역설이 이 버전의 엘리자벳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다만 역사 속 엘리자벳과 무대 위 인물 사이에는 괴리감이 컸다. 극에서는 황실에서 고립된 여성이 자유를 얻고, 한동안 아름다움과 권력을 누리다가 가족의 죽음과 함께 끝없는 비탄에 빠지는 개인사가 중심이 된다. 합스부르크 왕가와 제국의 역사는 그 뒤로 밀려난다.
죽음이라는 캐릭터도 상징적으로는 흥미롭지만 충분히 무게가 실리지는 않았다. 첫 만남의 엘리자벳은 고통받거나 죽음을 갈망하는 사람이 아니라 활기차고 행복한 소녀다. 사고에서 살아난 그녀가 삶을 선택했다는 이유로 죽음이 이를 배신으로 여기고 평생 따라다니는 관계는 멜로드라마로는 가능하지만 필연성은 약했다.
황궁을 떠난 엘리자벳이 하인리히 하이네에게 도움을 청하는 장면은 흥미로웠다. 엘리자벳의 시적 내면과 죽음에 대한 사유를 극중 ‘죽음’과 연결하려는 장치로 보였다. 이런 역사적 연결고리와 자녀·친족들의 죽음, 합스부르크 왕가에 드리운 몰락의 징후를 조금 더 일찍 축적했다면 죽음은 엘리자벳을 쫓아다니는 연인보다 그녀의 삶과 왕가 주변에 드리운 죽음의 징조를 의인화한 존재로 더 자연스럽게 읽혔을 것 같다.
마지막에 요제프가 합스부르크 왕가의 몰락을 환상으로 목격하지만 그 전까지 왕조의 위기는 상대적으로 약하다. 황실은 풍요롭고 백성은 고생하며 제국은 여전히 강한 것처럼 보이는 시간이 길다. 그래서 합스부르크 왕가의 마지막 시기를 다룬 역사극보다는 엘리자벳 개인의 사랑과 자유, 상실을 다룬 멜로드라마라는 인상이 더 강했다.
프란츠 요제프도 역사적 군주보다 엘리자벳을 평생 사랑하는 남편으로 그려진다. 국가의 존립을 걱정하는 모습도 있지만, 극에서 가장 큰 문제는 소피와 엘리자벳 사이에서 어정쩡하게 머무르다가 결국 아내의 마음을 놓치는 것이다. 황제로서의 권위 때문에 굳어 있으면서도 엘리자벳에 대한 사랑만큼은 끝까지 변하지 않는다.
루케니 역시 정치적 무정부주의자보다는 프로파간다와 가십을 이용하는 장사꾼에 가까워 보였다. 황실에 대한 소문을 퍼뜨려 사람들을 선동하고 그것을 다시 상품으로 팔아 돈을 번다. 민중의 편이라기보다 민중의 불만을 이용하는 사람이다. 마지막에는 죽음이 건넨 흉기로 엘리자벳을 살해하기 때문에 어디까지가 자신의 의지이고 어디까지가 죽음의 개입인지도 모호하다. 프롤로그에서는 자신이 엘리자벳이 원하는 것을 해주었다고 주장하지만, 그의 정치적 입장과 살인 동기는 충분히 연결되지 않았다.
루돌프의 정치 서사도 압축의 흔적이 보였다. 아버지의 정치 방향에 반발해 헝가리의 반제국주의 세력과 연결되는 것은 극적 갈등으로는 명확하지만, 차기 황제가 될 인물이 자신이 계승할 체제를 적극적으로 흔드는 행동에 이르는 과정은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 오히려 어린 시절부터 부모에게서 고립되고, 어머니에게 마지막 도움을 거절당한 뒤 죽음을 받아들이는 감정적 서사가 훨씬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서사와 달리 무대는 좋았다. 전면에는 세 개의 부채꼴 구조물이 커튼처럼 열리고 닫히며 무대의 크기와 형태를 바꿨다. 여러 개의 동심원으로 나뉜 회전무대는 중앙 원형과 주변의 환형 부분을 따로 움직일 수 있었고, 일부는 단계적으로 상승해 높이까지 달라졌다. 엘리자벳이 헝가리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는 장면에서는 이를 이용해 장소와 시간의 이동을 표현했다.
회전무대를 너무 자주 사용한 것은 다소 식상했다. 다만 활용이 좋은 장면도 있었다. 환형 무대가 회전할 때 드레스를 입은 여인의 실루엣처럼 양쪽을 뚫어 만든 커튼을 내려, 무대가 치맛자락 사이를 지나가는 것처럼 보이게 한 장면은 인상적이었다. 익숙한 장치를 하나의 시각적 이미지로 바꾼 연출이었다.
중앙부 상승무대, 대형 황후 이미지가 들어간 액자의 하강, 죽음이 경사진 이동식 구조물을 따라 높은 곳에서 내려오는 장면 등 수직 공간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후면 LED에는 오스트리아 풍경, 불타는 성, 호숫가 등이 실사에 가까운 그림체와 높은 해상도로 표현되었다. 거리와 깊이가 느껴져 원근감도 좋았다. 궁중극답게 의상도 화려했다.
블루스퀘어는 최근 관람한 공연들에서 계속 음향이 좋았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배우들의 목소리와 오케스트라가 선명하게 들렸다. 마지막에는 천둥과 함께 강한 저역이 극장 전체를 울리는 장면이 있었고, 진동이 객석까지 확실하게 전달되었다.
실베스터 르베이와 미하엘 쿤체의 음악은 역시 좋다. 배우들의 콘서트에서도 자주 불릴 만큼 개별 넘버의 힘이 강한 작품이고, 이번 캐스트도 이를 잘 살렸다.
엘리자벳 역 이지수(Lee Jisoo)는 이전에 본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와 《그레이트 코멧》보다 이번 배역이 가장 잘 어울렸다. 노래와 연기가 모두 좋았고, 자유분방한 소녀에서 화려한 황후, 이후의 피로와 절망까지 긴 시간을 자연스럽게 이어갔다.
죽음 역 고은성(Ko Eun-sung)은 이전에 들었던 목소리와 다른 톤을 사용했다. 목소리에 배역을 위한 필터를 하나 씌운 것처럼 약간의 쇳소리와 거친 질감을 더했고, 단단한 음색이 죽음과 잘 맞았다. 탈색한 머리도 비현실적인 존재의 이미지에 어울렸다.
루케니 역 노윤(Noh Yun)은 프리뷰 공연 후 인사에서 긴장했다고 말했지만 무대에서는 자연스러웠다. 표정은 충분히 야비했고 움직임도 좋았다. 노래에는 록커처럼 거칠고 직선적인 맛이 있어 계속 관객을 상대하며 무대를 돌아다니는 루케니와 잘 맞았다.
프란츠 요제프 역 민영기(Min Young-ki)는 기대한 만큼 안정적이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요제프의 노래 비중이 많아 가창을 충분히 들을 수 있었던 것도 좋았다.
소피 역 주아(JuA)는 위엄 있는 황태후에서 점차 늙고 힘을 잃어가는 과정을 잘 보여주었다. 연기뿐 아니라 노래에서도 시간이 흐르면서 더 두껍고 느린 비브라토를 사용하는 등 변화를 주어 노쇠를 표현했다.
루돌프 역 김우성(Kim Woo Seong)은 앞부분에 앙상블로 먼저 등장해 조금 웃음이 났지만, 루돌프로 돌아온 뒤에는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넘버 수는 많지 않아도 〈그림자는 길어지고 - Reprise (Die Schatten werden länger - Reprise)〉에서 확실하게 각인되었다. 무엇보다 연기가 좋았다. 정치적으로 몰리고 부모에게서 고립되어 마지막 죽음에 이르기까지 절망이 깊어지는 과정이 잘 보였다. 아역 루돌프도 노래를 잘했고 앙상블의 합도 좋았다.
이번 《엘리자벳》은 역사적 복잡성을 줄이고 인물 간 감정선을 선명하게 만들었다. 덕분에 이야기는 쉽게 따라갈 수 있지만, 그 과정에서 죽음의 상징성과 루케니·루돌프의 정치적 동기는 함께 약해졌다. 합스부르크 왕가의 쇠퇴보다 엘리자벳과 죽음의 관계가 앞에 나오면서 역사극보다는 멜로드라마의 성격이 강해졌다.
반면 음악과 배우, 무대와 의상은 좋았다. 르베이와 쿤체의 강한 음악을 좋은 배우들이 소화했고, 무대 역시 익숙한 회전무대를 다소 과하게 사용한 점을 제외하면 다양한 장치와 영상으로 볼거리를 만들었다. 서사보다는 음악, 배우와 무대가 더 기억에 남는 프리뷰였다.
이 갤러리의 사진은 촬영이 허용된 경우 직접 촬영했거나, 소장 중인 프로그램·티켓·기념품을 촬영한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