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hoir of Man

콰이어 오브 맨
로컬 펍 ‘The Jungle’에 아홉 남자가 모인다. 이들은 노래와 연주, 춤으로 사랑과 꿈, 가족과 상실을 나눈다. 관객도 펍의 손님으로 참여하며, 후반에는 캐릭터와 한국 배우들의 실제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겹쳐진다.
Musical Reviews › Licensed in Korea › 2026
리뷰
2026년 9월 18일, NOL 씨어터 대학로 우리투자증권홀에서 《콰이어 오브 맨》 한국 초연의 첫 공연을 관람했다.
좋은 노래로 구성된 주크박스 뮤지컬에는 늘 애증이 있다. 익숙하고 좋아하는 노래를 무대에서 다시 듣는 즐거움은 크지만, 서로 무관한 곡들을 하나의 줄거리로 연결하는 과정에서 서사가 억지스러워지거나 노래가 이야기를 멈추게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콰이어 오브 맨》은 그런 문제를 정면으로 피해 간다. 이 작품에는 복잡한 줄거리가 별로 필요하지 않다. 펍에 모인 아홉 남자에게 서로 다른 성격과 내면, 아픔을 부여하고 노래와 연주, 춤을 통해 그들을 조금씩 보여준다. 인물들의 사연은 완결된 이야기라기보다 각각의 노래에 감정적인 맥락을 만들어주는 장치에 가깝다. 사건의 인과관계가 아니라 펍이라는 공간과 그 안에서 형성되는 공동체가 공연을 연결한다.
그래서 이 작품은 일반적인 주크박스 뮤지컬보다 캐릭터와 공간을 부여한 콘서트형 노래극처럼 느껴졌다. 관객과 함께 마시고, 노래하고, 웃고, 잠시 각자의 상실을 돌아보는 것이 공연의 중심이다. 서사가 얕다는 사실을 감추지 않고 처음부터 관객과 놀기 위한 공연임을 분명히 한다는 점이 오히려 솔직하고 좋았다.
한국 공연은 초반에는 원작의 펍과 캐릭터 설정을 대체로 유지하지만, 뒤로 갈수록 한국적인 문화 요소와 배우 자신의 이야기를 더 많이 끌어들인다. Adele의 〈Hello〉 대신 이소라의 〈제발〉을 넣은 것도 대표적인 현지화다.
글의 순서는 바뀌었지만, 객석에 들어간 순간부터 다시 써보겠다.
이 공연은 무대 위에서 실제로 펍을 운영하기 때문에 입장한 관객들이 무대에 올라가기 위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배우들이 하나둘 들어오면서 관객의 입장이 허용되고, 맥주도 나눠주기 시작했다. 무알코올 맥주라고 한다. 오페라글라스로 보니 Terra에서 지원한 듯했다. 배우들은 연주를 하거나 관객과 사진을 찍어주었고, 무대에서 내려와 객석 맨 뒤까지 돌아다니며 인사하기도 했다.
예전에 관람한 《Once》가 생각났다. 그때도 이충주 배우의 공연으로 보았는데, 이번에도 그는 관객에게 거리낌 없이 말을 걸었다. 오히려 첫 공연을 앞둔 긴장을 이렇게 풀고 있는 것인가 싶기도 했다.
극의 시작은 무대 위에 있던 관객들에게 이제 공연을 시작하니 내려가 달라고 인사하는 것이었다.
첫 곡 〈Welcome to the Jungle〉은 합창으로 재구성한 편곡이 작품의 성격과 잘 어울렸다. 여러 목소리가 겹치며 곡을 확장하는 방식도 좋았다. 그러나 GNR의 노래라면 밴드와 코러스가 객석을 압도할 만큼 더 크게 터지기를 기대했다. 뚜껑이 있는 1층 맨 뒷자리여서 직접음과 고음이 충분히 전달되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지만, 〈Welcome to the Jungle〉을 이렇게 잔잔하게 듣게 될 줄은 몰랐다. 다른 관객들은 벌써 신나게 호응하고 있었지만, 나는 아직 흥이 오르지 않았다.
The Poet 이충주 배우는 자신을 포함한 아홉 명의 콰이어 멤버이자 펍 The Jungle에 얽힌 인물들을 소개했다. 각자가 지닌 슬픈 사연과 쉽게 말하지 못하는 내면의 아픔을 조금씩 풀어놓다가, 자신을 이 펍에서 가장 말이 없는 시인이라고 소개하는 대목에서는 객석이 모두 웃었다.
이어진 〈Save Tonight / Wake Me Up〉은 하모니가 좋았다. 그러더니 배우 네 명이 객석에서 여성 관객을 한 명씩 골라 무대로 데려가 맥주를 건네고 자리에 앉혔다. The Beast 문시온 배우는 그중 한 명에게 구애하듯 〈Teenage Dream〉을 불렀다.
카드를 쌓으며 부른 다음 곡 〈The Impossible Dream〉까지 듣고 나니, 극이 꿈에 관한 서사를 풀어가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별다른 설명 없이 노래를 통해 사람들의 인생 한 조각을 공유하는 방식은 펍이라는 공간에 잘 어울렸다. 바 옆자리에 앉은 약간 취한 사람이 갑자기 말을 거는 듯 툭 던져지는 이야기였다. 나 역시 그때그때의 기분에 따라 호응하면 될 것 같았다.
The Poet이 노래하고 The Handyman이 탭댄스를 하다가 콰이어로 확장되는 〈50 Ways to Leave Your Lover〉까지는 아픈 과거를 회상하는 테마가 이어졌다.
다음 곡은 〈제발〉이었다. 이쯤에서 Adele의 〈Hello〉가 나올 것으로 생각했는데, 한국 공연으로 현지화하면서 바꾼 듯했다. 떠난 연인을 잊지 못하고 돌아와 달라고 호소하는 노래를 The Romantic 신은총 배우가 불렀다.
나는 이소라의 〈제발〉을 콘서트에서 들었다. 이 노래는 이소라 특유의 호흡과 주저함,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한 감정이 노래와 분리되지 않는다. 신은총 배우가 부른 〈제발〉도 극중 인물의 노래로서는 잘 기능했지만, 듣고 있으니 이소라의 공연에 다시 가고 싶어졌다.
아마도 The Barman이 부른 〈Escape (The Piña Colada Song)〉부터 내 긴장도 풀린 것 같다. 이때에도 관객 한 명을 무대로 데려가 피나 콜라다를 건네며 노래했다. 신나는 곡이었고, The Maestro의 〈I’m Gonna Be (500 Miles)〉까지 이어서 참여하게 된 관객은 수줍음이 많은 분이었다. 배우들이 동선을 안내할 때 내려가라는 뜻으로 알아듣고 움직였다가 다시 돌아오는 순간에는 객석에서 웃음이 터졌다.
박찬양 배우는 끼가 많고 피아노도 유려하게 연주해서 아주 신났다. 잘 모르는 노래가 끼어 있었는데 그 부분이 가장 재미있다니!
〈Under the Bridge〉는 가서 직접 보기 바란다. 음…. 이때쯤 오페라글라스를 들려다가 사태를 깨닫고 그냥 맨눈으로 보았다. 남자 화장실에서 소변을 보는 장면을 표현했는데, 노래보다 물줄기(stream)가 더 생각난다. 가서 보기 바란다.
다음 곡 〈Chandelier〉는 아카펠라로 불렀다. 아홉 명이 조용히 화음을 맞추는데, 예전에 들었던 〈Walkin’ After Midnight〉와의 매시업이 생각났다.
https://soundcloud.com/babyherron/chandlier-walkin-after-midnight-mashup-scott-hoying-mitch-grassi
《The Choir of Man》은 옛 노래들을 다시 듣고 싶은 충동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어진 〈Bring Tomorrow On〉은 이 뮤지컬을 위해 작곡된 곡이라고 한다. 배우들이 짧은 연주와 노래를 차례로 주고받았는데, 영국 민요 같은 느낌도 들고 노래가 좋았다. 배우들은 객석으로 내려와 맥주를 나눠주고 스낵도 던졌다.
The Poet은 〈Dance with My Father〉를 불렀다. 초반에는 보컬을 비교적 드라이하게 빼다가 후렴에서 리버브를 더하고 음량을 올리며 감정을 확장하는 변화가 분명하게 들렸다. 음향을 의도적으로 세밀하게 조절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노래와 함께 배우들을 한 명씩 소개했는데, “찬양이”, “은총이”, “두희 형”처럼 실명으로 부르며 전한 이야기는 극중 설정이 아니라 배우들의 실제 이야기로 들렸다.
이충주 배우는 자신이 두 번째로 큰 도시 출신이라고 말했다. 영국에서 런던 다음으로 큰 도시가 어디였는지 생각하고 있는데, “사투리만 들으면 압니다”라며 부산 이야기를 꺼냈다. 원작의 언어로 시작해 한국 배우의 실제 삶으로 넘어가는 전환이 재미있었다.
초반의 The Romantic은 헤어진 연인을 잊지 못하는 인물로 소개된다. 그러나 마지막에 신은총 배우는 출신 도시의 특징을 이야기하고, 자신의 가장 큰 기쁨은 밤에 집으로 돌아갔을 때 자신을 아빠라고 부르는 아이들이라고 말했다. The Handyman 권오환 배우는 박지성과 손흥민이 프리미어리그를 떠난 뒤 구독을 끊었다는 이야기도 했다. 캐릭터의 이름표 뒤에 있던 실제 배우들이 잠시 자신의 삶을 보여주는 순간이었다.
이러한 구성 덕분에 펍의 아홉 남자는 완전한 허구의 인물로 머물지 않는다. 처음에는 각자에게 부여된 성격과 역할로 등장하지만, 공연이 진행될수록 한국적인 경험과 배우 개인의 삶이 그 위에 포개진다. 마지막에는 무대 위 인물과 그 인물을 연기하는 배우 사이의 경계가 상당히 흐려진다. 관객과 함께 놀던 펍이 잠시 서로의 삶을 나누는 공간으로 변하는 것도 이 작품의 장점이다.
한편 공연에서는 준비하지 못한 채 떠나보낸 사람들에 대한 대사가 여러 차례 등장한다. 누군가를 갑작스럽게 잃은 슬픔은 시대와 관계없이 유효하지만, 같은 표현이 반복되면서 코로나 시기의 집단적 상실에 작품이 계속 머물러 있다는 느낌도 들었다.
코로나 시기에는 관객 모두가 즉각 공유할 수 있는 절실한 언어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같은 의미의 대사를 거듭 사용하기보다 죽음뿐 아니라 이별과 단절, 멀어진 관계 등 각 인물의 구체적인 상실로 조금씩 나누어 보여주어도 좋겠다. 특히 〈Dance with My Father〉처럼 노래 자체가 기억과 애도를 충분히 전달하는 장면에서는 설명을 덜어내도 감정은 사라지지 않는다.
〈Somebody to Love〉가 나올 때쯤에는 싱어롱을 하고 싶었다. 이 곡에는 수많은 버전이 있지만 내게는 프레디 머큐리 추모 공연에서 조지 마이클이 부른 무대가 가장 강하게 남아 있다. 역시 원래 노래를 다시 듣고 싶어졌고, 조금 전에 The Poet이 말한 떠난 사람들이 프레디 머큐리나 조지 마이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때부터는 나도 조금씩 입안으로 노래를 따라 불렀다.
〈You’re the Voice〉에서는 에라 모르겠다 하고 손도 높이 들어 록 사인을 보내고 후렴구를 따라 불렀다.
마지막으로 많이 기다리던 fun.의 〈Some Nights〉가 나왔다. 제발 음량을 키우고 싱어롱으로 해주었으면 좋겠다. 좋아하는 노래가 많이 나와서 옴니버스 콘서트를 구경한 기분이 들었지만, 전체 음향은 비교적 드라이하고 뮤지컬에 맞춰져 있었다. 그래도 추억을 자극하기에는 충분했다.
음향을 세밀하게 다루지 못한 공연은 아니었다. 다만 공연 전체의 음량은 개인적으로 조금 더 컸으면 했다. 나는 밴드와 목소리가 공간을 빈틈없이 채우는 소리를 좋아해서 웬만한 음량에는 쉽게 만족하지 못한다. 다른 관객에게는 현재의 균형이 오히려 편안했을 수도 있다.
《콰이어 오브 맨》은 촘촘한 이야기를 따라가는 뮤지컬이 아니다. 좋은 노래와 연주, 춤, 그리고 서로 다른 남자들이 한 공간에서 만들어내는 관계를 즐기는 공연이다. 노래 사이에 인물의 내면과 아픔을 배치하지만, 그것을 무거운 서사로 발전시키기보다 관객과 함께 노는 흐름 안에 가볍게 놓아둔다.
그래서 좋은 노래를 듣는 즐거움과 서사적 연결의 아쉬움이 공존하는 일반적인 주크박스 뮤지컬과는 조금 다르다. 이 작품에는 애초에 줄거리를 억지로 연결할 필요가 없다. 다만 노래와 현장 에너지가 공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만큼, 밴드와 합창의 소리가 객석을 조금 더 강하게 밀어붙였다면 내가 기대한 펍의 열기와 해방감도 훨씬 크게 살아났을 것 같다.
공연장을 나오면서 작은아들에게 전화를 했다.
“우리 추석 때 낮 공연 보기로 했잖아? 그날 밤 공연도 보자. 《The Choir of Man》이라고, 〈Hello〉 대신 〈제발〉이 들어갔어.”
“뭐라고? 〈Hello〉? 낮 공연 보고 밤에도 보면 피곤할 것 같은데?”
“너 안 피곤해. 〈Somebody to Love〉도 나오고 〈Some Nights〉도 나와.”
“나 안 피곤해? 일단 알았어.”
다음에는 앞쪽 좌석을 예매했다. 뚜껑 없는 자리에서는 소리가 객석을 꽉 채우는지 다시 들어봐야겠다.
이 갤러리의 사진은 촬영이 허용된 경우 직접 촬영했거나, 소장 중인 프로그램·티켓·기념품을 촬영한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