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n the Galactic Railroad
은하철도의 밤
어린 시절 사고로 시력을 잃은 조반니는 아버지의 실종 이후 고독 속에서 살아간다. 은하수 축제의 밤, 다시 나타난 친구 캄파넬라와 함께 의식을 잃은 그는 은하철도에 올라 별자리를 여행한다. 신화와 기억이 겹치는 여정 끝에 조반니는 아버지의 죽음과 자신의 죄책감을 직면하고, 상실을 기억으로 받아들이며 현실로 돌아온다.
관람 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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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연 연도:
2021
관람 연도:
2026
극장명:
예스24 스테이지 1관
줄거리 & 리뷰
시놉시스
조반니는 어린 시절의 사고로 시력을 잃고, 그 이후 조용히 고립 속에서 살아온 소년이다. 몇 해 전 아버지가 사라진 뒤, 그는 홀로 성장하며 점자책을 만드는 출판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학교를 다닌다. 그는 특히 자넬리를 비롯한 동급생들에게 자주 조롱당하지만, 별다른 저항 없이 하루하루를 견딘다. 그러나 내면에는 여전히 희미한 희망과 누군가와 연결되고 싶은 마음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채 남아 있다.
캄파넬라는 한때 조반니의 가장 가까운 어린 시절 친구였지만, 어느 순간부터 두 사람은 함께하지 않게 되었고, 그의 부재는 조반니의 고독을 더욱 깊게 만들었다. 은하수 축제가 열리는 날, 캄파넬라는 갑자기 다시 나타나 조반니에게 함께 가자고 권한다. 조반니는 망설이지만, 무언가 달라질지도 모른다는 작은 기대에 이끌려 결국 그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축제 현장에서 조반니는 인파 속에서 캄파넬라를 찾는다. 사람들은 그의 시각 장애를 조롱하며 밀쳐내고, 마치 그가 그 자리에 있을 자격이 없는 사람인 듯 대한다. 마침내 캄파넬라와 합류해 함께 걷기 시작하는 순간, 하늘을 가르는 섬광이 번쩍이며 조반니는 의식을 잃는다.
조반니가 눈을 뜬 곳은 은하수의 끝, 남십자성을 향해 달리는 신비한 열차 ‘은하철도 999’ 안이다. 수석 승무원 캄파넬로는 캄파넬라와 닮은 얼굴을 하고 있지만, 제복을 입고 단정한 태도로 그와는 다른 위엄을 풍긴다. 여정이 이어지며 조반니는 캄파넬리, 캄파넬리우스 등 캄파넬라를 닮은 여러 인물들을 만난다. 별자리와 역할에 따라 옷차림과 기능은 달라지지만, 이들은 모두 같은 배우가 연기하며 동일한 존재의 단면처럼 느껴진다. 조반니는 이 반복 속에서 친숙함과 거리감이 동시에 느껴지는 불안을 경험한다.
열차가 백조자리를 지날 때, 조반니는 태양의 마차를 몰다 강으로 떨어진 아폴론의 아들 파에톤의 이야기를 떠올린다. 아들을 잃은 슬픔 속에서 백조로 변해 하늘의 별자리가 된 존재의 이야기에서 조반니는 묘한 기시감을 느낀다. 정확히 언제 들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분명 아버지에게서 들었던 이야기임을 그는 직감한다.
이어 거문고자리에서는 캄파넬리우스를 만나고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의 신화를 생각한다. 사랑하는 아내를 되찾기 위해 저승으로 내려간 오르페우스는 끝내 뒤돌아보는 순간 모든 것을 잃고, 그의 거문고는 별이 된다. 조반니는 이야기의 리듬과 말 사이의 침묵까지도 익숙하다는 사실에 크게 동요한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목소리로 들었던 이야기들이 다시 돌아오고 있음을 느끼기 시작한다.
열차가 전갈자리를 지나 남십자성에 가까워질수록 조반니의 불안은 커진다. 캄파넬라는 다시 나타나 조반니에게 외투를 바꾸자고 한다. 바다수달 가죽으로 만들어진 그 외투는 사냥꾼이었던 아버지 피에르가 직접 만들어준 것이다. 이어 들려오는 정체불명의 목소리는 피에르가 남십자성의 성주가 아니라 도망자라고 말한다. 이 모순은 조반니를 혼란과 공포에 빠뜨리고, 그는 결국 열차에서 뛰어내린다.
이 순간은 여정의 단절점이다. 그동안 조반니를 이끌어온 존재는 더 이상 동반자나 안내자에 머물지 않고, 보다 근원적인 진실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캄파넬라는 더 이상 아버지와 분리된 인물이 아니라, 기억과 죄책감, 그리움으로 형상화된 아버지 그 자체였던 것이다. 은하철도는 신화적 권력의 중심으로 향하고 있던 것이 아니라, 조반니가 마음속에 가두어 두었던 아버지에게로 향하고 있었다.
이후 조반니는 홀로 ‘상실의 섬’을 향해 나아간다. 작은 돛단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며, 두려움과 조롱의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뒤돌아보지 않는다. 섬에서 그는 마침내 아버지 피에르와 재회한다. 조반니는 아버지를 그곳에 가둔 사람이 바로 자신이었다고 고백하며, 아버지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외면해 왔음을 인정한다. 이 만남을 통해 분열되어 있던 캄파넬라의 형상들은 하나로 수렴되고, 조반니는 부정의 굴레에서 벗어난다.
마침내 그는 진실을 직면한다. 아버지는 단순히 사라진 것이 아니라, 7년 전 사고에서 조반니를 구하다 물에 빠져 죽었다. 그 상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조반니는 기억을 봉인하고 아버지를 ‘상실의 섬’에 가두었던 것이다. 은하철도 여행은 현실을 외면해 온 그의 마음이 만들어낸 여정이었음이 드러난다.
조반니가 깨어났을 때, 현실은 변하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시각장애를 지닌 채 일하고, 학교에 다닌다. 그러나 내면은 완전히 달라져 있다. 아버지는 더 이상 부정이나 죄책감의 대상이 아니라, 기억의 섬에 자리한 존재가 된다. 조반니는 슬픔과 희망, 그리고 별들을 함께 품은 채 더 이상 혼자가 아닌 상태로 앞으로 나아간다.
리뷰
이 작품은 두 명의 배우가 이끄는 공연이었다. 한 배우는 조반니를 연기하면서 동시에 자넬리의 목소리를 맡았고, 다른 한 배우는 캄파넬라를 비롯해 나머지 모든 인물을 연기했다. 조반니 역 배우가 자넬리의 목소리를 연기할 때는 몸을 돌리고 음색을 바꾸는 방식으로, 무대 위에 실제 인물이 등장하지 않아도 관객이 자넬리의 존재를 분명히 느낄 수 있게 했다. 캄파넬라 역 배우는 인물에 따라 의상을 바꾸는 것은 물론, 젊은 인물부터 노인, 남성과 여성의 뉘앙스까지 폭넓게 음색을 변화시키며 여러 역할을 소화했다.
무대에는 네 개의 정사각형 박스와 하나의 긴 직사각형 박스만이 놓여 있었고, 이는 의자이자 플랫폼으로 유연하게 활용되었다. LED 백드롭은 이탈리아의 작은 마을에서부터 은하 속 다양한 별자리로 이어지는 시각적 캔버스 역할을 했다. 이러한 구성 덕분에 무대 규모에 비해 훨씬 많은 배우가 등장하는 듯한 인상을 주었고, 아름다운 영상과 결합된 이 효과는 재관람객을 끌어들이는 주요 요인이 되었다.
이 작품은 미야자와 겐지의 소설을 바탕으로 하되, 여러 중요한 변주를 더한다. 뮤지컬 속 조반니는 어린 시절 사고로 시력을 잃은 인물로 재구성되었으며, 아버지의 실종 이후 홀로 살아간다. 캄파넬라는 단순한 어릴 때 친구가 아니라, 조반니의 내면에서 형성된 안내자이자 동반자로 기능한다. 이야기는 은하철도를 따라 남십자성으로 향하는 여정에 집중되며, 그 종착점에서 조반니는 아버지를 만나 자신의 두려움과 죄책감을 마주하게 된다.
이 작품은 전통적인 뮤지컬이라기보다 연극과 뮤지컬의 경계에 있는 하이브리드에 가깝다. 인물의 전환과 코믹한 순간들을 표현하는 데 있어 대사 연기가 중요한 역할을 하며, 음악은 극을 압도하지 않으면서도 서정과 분위기를 안정적으로 뒷받침한다. 두 배우의 화음 역시 자연스럽고 균형감 있게 어우러진다.
이 작품은 2023년 상하이에서 중국어 라이선스 공연으로도 제작되었는데, 이는 한국 창작 뮤지컬이 점차 국내를 넘어 해외 시장을 염두에 두고 보편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음을 보여준다. 문화적 번안 역시 과하지 않게 조율되어 있다. 극 중 조반니는 이탈리아의 작은 마을에서 온 소년으로 설정되지만, 이탈리아식 명명 체계가 엄밀하게 적용되지는 않는다. 다만 의도 자체는 분명하다.
캄파넬라 역할을 젠더 프리 캐스팅으로 설정했다면, 캄파넬라·캄파넬로·캄파넬리·캄파넬루·캄파넬리우스로 이어지는 이름의 변주에서 발생하는 개념적 혼란을 상당 부분 해소할 수 있었을 것이다. 캄파넬라가 더 이상 구체적인 어린 시절 친구가 아니라 ‘안내자’로 기능하는 순간, 그 존재가 반드시 남성일 이유는 없다. 젠더를 혼용한다면 캄파넬라를 육체가 아닌 기억, 목소리, 혹은 양심에 가까운 존재로 읽히게 만들 수 있었을 것 같다. 혹은 남성 배우를 유지하되, ‘종’이나 ‘신호’를 의미하는 캄파넬로를 중심의 여러 남자 이름을 사용했다면 각 인물의 직업성과 기능이 더 또렷해졌을지도 모른다.
조반니를 시각장애인으로 설정한 점은 생각 끝에 나온 선택인 것으로 보인다. 현실에서 그는 보지 못하지만, 꿈의 여정 속에서는 우주를 본다. 이는 단순한 상징이 아니라 이야기의 핵심 그 자체다. LED로 구현된 은하, 별자리, 새, 바다와 빛은 장식이 아니라, 현실과 은하철도를 가르는 경계선이다. 이 작품은 미야자와의 세계관을 오해했다기보다, 그의 내적 비전을 무대 언어로 번역해 낸다. 소설이 우주의 경이를 ‘말’로 전달했다면, 이 뮤지컬은 그것을 관객이 ‘체험’하게 만든다.
캄파넬라를 실제 친구가 아닌 안내자로 재정의한 선택 역시 의도적인 전환이다. 캄파넬라를 여러 인물로 분화시킴으로써, 이 작품은 그를 하나의 인물이 아닌 기능으로 만든다. 그는 필요한 순간마다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 별자리에 맞는 옷을 입고, 조반니가 기억하는 목소리로 말을 건다. 캄파넬라는 조반니와 함께 여행하는 존재가 아니라, 그를 이끄는 존재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이 각색은 문학적 모호함보다는 시각적 서사와 상징적 명확성을 선택한, 매우 의도적인 작업이다. ‘조반니’라는 이름 역시 이 해석을 뒷받침한다. 조반니는 ‘요한(John)’의 이탈리아식 이름으로, 전통적으로 계시와 시현,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목격하는 인물과 연결된다. 꿈속에서만 우주를 볼 수 있는 시각장애 소년에게 이 이름을 붙인 것은, 의도했든 아니든 자연스러운 공명을 만들어낸다.
공연 중 관객의 반응은 즉각적이고 적극적이었으며, 재관람객이 많다는 인상을 받았다. 이는 대극장보다 대학로 극장에서 더 자주 느껴지는 분위기다. 배우와 관객 사이에 형성된 이러한 신뢰와 교감은, 이 작품이 2021년 이후 꾸준히 재공연되며 안정적인 인기를 유지하는 이유를 잘 설명해준다.
이 갤러리의 사진은 촬영이 허용된 경우 직접 촬영했거나, 소장 중인 프로그램·티켓·기념품을 촬영한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