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derus
시데레우스

시데레우스는 갈릴레이와 케플러가 밤하늘을 관찰하며 함께 지동설을 발견해 가는 이야기다. 과학을 무리하게 단순화하지 않고 역사적 사실과 극적 상상력을 균형 있게 엮었으며, 배우들의 연기와 음악도 인상적이었다.
Musical Reviews › Korean Original ›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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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연 연도:
2019
관람 연도:
2026
극장명:
플러스 씨어터
줄거리 & 리뷰
줄거리
요하네스 케플러는 공작과 귀족, 교수들에게 자신의 저서 『우주의 신비』를 보내며 끊임없이 편지를 쓰지만 아무도 답장하지 않는다. 갈릴레오 갈릴레이만이 글을 흥미롭게 읽었으나 바빠서 함께 연구할 수 없다는 의례적인 답장을 보낸다. 케플러는 유일하게 돌아온 답장 속 ‘흥미롭다’는 말에 크게 고무되어 이후에도 쉬지 않고 편지를 보낸다. 갈릴레이가 한 대목에 의문을 품을 즈음이면, 케플러가 이미 그 부분을 보충한 다음 편지가 도착할 정도이다.
처음에 갈릴레이는 케플러의 이론이 틀렸음을 증명하려고 분석을 시작한다. 그러나 분석을 거듭할수록 다른 가설을 세우면 케플러의 설명이 성립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갈릴레이는 천체 움직임에서 풀리지 않는 모순을 함께 연구하자고 제안하고, 관찰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케플러는 자신이 눈이 나빠 안경을 쓴다며, 렌즈의 초점거리를 조절하는 원리를 이용하면 멀리 있는 천체를 관찰하기 쉬울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간단한 망원경의 원리를 갈릴레이에게 알려 주고, 갈릴레이는 이를 바탕으로 더욱 정교한 망원경을 만들어 밤하늘을 관찰하기 시작한다. 갈릴레이는 이를 바탕으로 더욱 정교한 망원경을 만든다.
두 사람은 서로 만나지 않은 채 독일과 이탈리아에서 각각 밤하늘을 관찰하고 편지로 결과를 주고받는다. 완전한 구형이 아닌 달의 표면, 목성을 도는 네 개의 위성, 금성의 위상 변화, 오리온자리와 황소자리 주변의 수많은 별 등 기존 우주관과 맞지 않는 현상들이 이어진다. 이들은 지동설을 적용하면 여러 모순을 설명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연구 내용을 책으로 발표하기로 한다.
갈릴레이는 지동설을 실제 사실로 주장하면 신성모독으로 몰려 종교재판을 받고 화형당할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그는 메디치 공작 역할을 자처하며 케플러에게 재판을 받는 상황을 연습시킨다. 높은 사람의 권력을 행사해 보니 기분이 좋다며 변명하라고 다그치자, 케플러는 관찰 결과를 설명하면서도 망원경 통을 열려는 손을 심하게 떤다. 두 사람은 두려움을 농담으로 넘기지만, 위험을 알고도 연구를 발표하기로 한다.
출판비를 마련하지 못한 갈릴레이는 유력 인사들을 찾아다니다 메디치 가문을 방문한다. 그는 목성의 네 위성을 메디치 가문의 자녀와 가문을 기리는 이름으로 부르겠다고 제안한 뒤에야 후원을 약속받는다. 그러나 후원자는 책에 저자를 한 명만 올릴 것을 요구한다. 케플러는 자신에게는 이미 『우주의 신비』가 있다며 물러나고, 결국 갈릴레이가 단독 저자로 책을 출판한다.
책이 큰 파문을 일으키자 메디치 가문도 후원을 철회한다. 갈릴레이의 딸 마리아 첼레스테는 수녀원에서 사람들의 수군거림에 시달리고, 교회 관계자들은 그가 아버지의 이단적 주장을 알고 있었는지, 그의 신앙까지 흔들린 것은 아닌지 의심한다. 마리아는 어린 시절 시차와 행성의 궤도를 즐겁게 설명하던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함께 누워 별을 바라보던 기억은 간직하고 있다. 그러나 아버지 때문에 자신의 수녀 생활까지 어려워졌다고 생각하며 원망도 품는다.
마침내 갈릴레이에게 종교재판에 출석하라는 명령이 내려진다. 이때 케플러가 독일에서 이탈리아로 찾아오고, 두 사람은 처음으로 직접 대면한다. 케플러는 가톨릭의 영향이 적은 곳으로 함께 도망가자고 설득한다. 갈릴레이도 동의하는 듯하지만, 결국 교회의 부름을 외면하지 못하고 재판에 출석한다.
케플러는 갈릴레이의 집으로 돌아왔다가 마리아를 만난다. 마리아는 아버지가 태워 버리라고 남긴 케플러와의 편지 뭉치를 읽고, 케플러 역시 이단으로 고발하겠다고 말한다. 케플러는 원한다면 자신을 고발하라고 답하면서도, 그에게 망원경으로 밤하늘을 직접 본 적이 있느냐고 묻는다. 마리아는 아버지의 책을 읽고 망원경으로 별을 관찰한다. 이때 그는 무엇인가를 깨달은 듯 행동한다.
종교재판에서 갈릴레이는 목성의 위성, 금성의 위상 변화, 울퉁불퉁한 달의 표면 등을 근거로 기존 천동설의 전제에 의문을 제기한다. 케플러와 마리아가 나타나 자신들도 발견에 관여했다고 말하지만, 갈릴레이는 두 사람을 보호하려는 듯 모든 연구와 주장은 자신이 혼자 했다고 한다. 과학적 논증으로는 상황을 바꿀 수 없음을 깨달은 갈릴레이는 더 이상의 변론을 포기하고, 잘못을 뉘우칠 기회를 달라고 청한 뒤 풀려난다.
집으로 돌아온 갈릴레이는 수녀원에 머물기 어려워진 마리아에게 함께 다른 곳으로 거처를 옮기자고 말한다. 그때 케플러가 다시 뛰어 들어와, 계속 남아 있던 행성 궤도의 8분의 오차는 유클리드 기하학을 이용해 타원궤도로 계산하면 설명할 수 있다고 말한다. 갈릴레이는 자신에게 다시 풀어야 할 문제가 생겼다며 크게 기뻐한다. 마지막에는 갈릴레이와 케플러, 마리아가 나란히 무대에 누워 함께 별을 바라보며 막이 내린다.
리뷰
친구를 만나러 주말에 나온 김에 공연을 하나 보려고 급히 예매했다. 작품의 내용은 거의 알지 못했지만, 여러 차례 돌아온 창작뮤지컬이고 좋아하는 배우들이 출연해 약간의 기대는 있었다.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넘버와 극의 흐름, 세 배우의 연기가 모두 좋았고, 특히 음악은 대학로에서 본 여러 작품 가운데 상위권에 놓을 만했다.
과학을 소재로 한 작품을 볼 때는 오류나 모순이 있는지 자연스럽게 살펴보게 된다. 이번에도 과학극인 만큼 과학사와 맞지 않는 설정이 있는지 유심히 보았다. 그러나 〈시데레우스〉는 과학적 사실을 다루는 방식이 예상보다 안전하고 영리했다.
작품은 케플러의 『우주의 신비』를 명시하고, 마지막에는 화성의 관측값과 원궤도 계산 사이에 끝내 남아 있던 8분각(약 0.13°)의 오차와 타원궤도를 언급한다. 유클리드 기하학을 이용해 계산한다는 대사도 나와, 천문학이나 과학사에 관한 자문을 받은 듯했다. 반면 갈릴레이가 지동설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증명했는지는 의도적으로 흐리게 처리한다. 완전한 구형이 아닌 달, 목성의 위성, 금성의 위상 변화, 오리온자리와 황소자리 부근에서 관찰한 많은 별을 언급하지만, 각각이 곧바로 지구의 공전을 증명한다고 단정하지 않는다. 조석도 대사에서 잠시 언급할 뿐 원리를 설명하지 않고, 북극성 주변을 회전하는 별들은 후면 영상으로만 보여 준다.
갈릴레이의 관측은 기존 우주관을 무너뜨리는 여러 단서를 제공했지만, 당시 지동설의 결정적인 증명은 아니었다. 금성의 위상은 프톨레마이오스식 천동설에 치명적이었지만 티코 브라헤의 절충모형으로도 설명할 수 있었고, 목성의 위성은 모든 천체가 지구만을 도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 주었을 뿐 지구의 공전을 직접 증명하지는 않았다. 달의 불규칙한 표면과 태양흑점 역시 천상은 완전하고 불변한다는 전제를 흔든 발견이었다. 갈릴레이가 지구의 자전과 공전의 증거라고 강하게 내세운 조석 이론은 오히려 틀렸다. 극에서도 "신이 만든 우주가 완전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의문을 품는 것만으로도 신앙심을 의심받는다는 대사가 나온다. 작품은 이처럼 당시의 종교적 분위기를 보여 주는 데 그치고, 과학적 논증을 무리하게 단정하지 않은 점이 오히려 적절하게 느껴졌다.
케플러 역시 중력으로 타원궤도를 유도한 것은 아니다. 그는 티코 브라헤의 정밀한 화성 관측자료에 기존의 원궤도를 맞추다가 끝내 남는 오차를 무시하지 않았고, 타원을 적용했을 때 자료와 일치한다는 사실을 찾아냈다. 왜 행성이 타원으로 움직이는지를 운동법칙과 만유인력으로 통합해 설명한 것은 후대의 뉴턴이었다. 작품은 이러한 차이를 강의하듯 설명하지 않으면서도, 구체적으로 말하면 부정확해질 수 있는 대목을 암시와 이미지로 남겨 두었다.
과학적으로 정확히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은 피하면서, 중심을 갈릴레이와 케플러의 우정, 그리고 갈릴레이와 마리아의 부녀 관계로 옮긴 선택이 좋았다.
실제 두 사람은 편지를 주고받았지만 긴밀한 공동 연구자는 아니었고, 평생 직접 만난 적도 없었다. 갈릴레이가 케플러의 공로를 보호하기 위해 단독 책임을 지거나, 케플러가 갈릴레이와 함께 종교재판을 받겠다고 나선 일도 없다. 공동 저술을 준비했다가 후원자의 요구로 갈릴레이만 저자가 되었다는 설정 역시 창작이다. 실제 과학사에서 갈릴레이는 케플러의 타원궤도를 받아들이지 않았으므로, 마지막에 그 발견을 듣고 기뻐하는 장면도 역사와는 다르다.
그럼에도 편지로만 교류하던 두 사람이 종교재판 직전에 처음 만나고, 서로 연구의 공로와 위험을 나누려 한다는 이야기는 극 안에서는 일관되게 작동한다. 먼저 케플러가 자신의 저자 자리를 양보하고, 나중에는 갈릴레이가 재판의 책임을 혼자 떠안으려 한다. 다소 감상적인 관계이지만, 과학적 발견을 한 사람의 영광보다 서로 이어지는 연구와 연대의 결과로 그리려는 작품의 의도에는 잘 맞았다.
갈릴레이가 더 유명하고 연장자라는 이유로 선생과 같은 위치에 놓이고, 케플러는 그의 인정을 얻으려는 후배처럼 그려진 것도 극적으로는 이해하기 쉽다. 실제로는 수학적 천문학에서 케플러의 성취가 훨씬 앞서 있었지만, 작품은 관객에게 익숙한 갈릴레이를 중심에 두고 두 사람의 성격을 대비했다. 갈릴레이는 쾌활하고 자신감이 넘치며 잘난 체하기도 하고, 케플러는 겸손하지만 자신의 연구와 책임에서 물러서지 않는다.
작품이 전반적으로 과학적 단정을 피한 것과 달리, 마리아의 변화는 다소 극적인 비약으로 느껴졌다. 그는 아버지의 책을 읽고 망원경으로 하늘을 본 뒤 무엇인가를 깨달은 듯 행동한다. 무대의 문법상 관객은 그가 지동설의 과학적 진실을 이해했다고 받아들이기 쉽다. 그러나 당시 전문 천문학자들도 같은 관측을 놓고 서로 다른 우주모형을 주장했으므로, 책을 읽고 한 차례 관찰한 뒤 지동설을 이해했다는 설정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그 장면을 마리아가 천문학 이론을 완전히 이해한 것이 아니라, 아버지가 신앙을 잃어서 교회에 맞선 것이 아니라 자신이 관찰한 사실을 외면할 수 없어 연구를 계속했다는 점을 이해한 것으로 받아들이면 감정선은 조금 자연스러워진다. 다만 실제 무대에서는 인물의 표정과 행동이 과학적 깨달음에 더 가까워 보였고, 나는 그 부분까지는 받아들이지 못했다.
이상아 배우는 맑고 아름다운 목소리로 마리아의 복잡한 감정을 표현했다. 어린 시절에는 시차와 궤도를 설명하며 즐거워하던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함께 별을 바라보던 기억이 있다. 이후 아버지가 이단으로 몰리면서 자신의 수녀 생활까지 어려워지자 그를 원망하고, 신앙과 부녀의 정 사이에서 흔들린다. 과학적 이해에 이르는 과정은 지나치게 단순했지만, 아버지를 사랑하면서도 원망하는 감정은 설득력 있게 이어졌다. 감정이 깊어질수록 이상아 배우의 아름다운 음색도 더욱 잘 드러났다.
안재영 배우는 즉흥연기와 과장된 코믹 연기를 즐기는 배우다.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겠지만, 나는 오히려 그 점이 좋다. 이번에는 또 무엇을 할까 기대하면서 공연을 보게 된다. 정말 자기 마음대로 장면을 늘리는데도 이상하게 밉지가 않다.
갈릴레이가 메디치 공작이 되어 케플러의 모의 종교재판을 진행하는 장면에서 두 배우의 호흡이 특히 잘 살아났다. 케플러가 망원경으로 직접 보았다고 설명하며 통을 열려는데 손을 떨자, 앞쪽에 있던 어린 관객이 소리를 냈다. 안재영 배우는 곧바로 사람들이 네가 떠는 것을 좋아한다고 받아쳤고, 정휘 배우는 온몸을 더욱 격렬하게 떨었다. 상황극이 끝난 뒤에는 엉금엉금 서재 쪽으로 기어가며 “누구라도 좋았으면 됐다”고 중얼거렸다. 안재영 배우는 한참 열연한 뒤 갑자기 “잠깐!”이라고 외치더니 구역질하는 흉내까지 냈다.
안재영 배우는 〈전설의 리틀 농구단〉에서 의욕 없는 선생님을 연기할 때도 현실에 있을 법한 무기력함을 천연덕스럽게 살렸다. 이번에는 자기 확신이 강하고 쾌활한 갈릴레이를 맡아 훨씬 과장된 코미디를 보여 주었다. 정휘 배우도 평소 잔잔한 애드리브를 자연스럽게 더하지만, 이렇게 능청스럽게 즉흥연기를 받아칠 줄은 몰랐다. 〈어쩌면 해피엔딩〉의 올리버와 〈ROGER〉의 디디 등에서 통통 튀는 인물을 오래 연기한 베테랑답게 안재영 배우의 즉흥을 놓치지 않았다. 두 배우는 예상 이상으로 죽이 잘 맞았고, 자칫 설명적으로 흐를 수 있는 과학 장면을 유쾌하게 살렸다. 화음도 안정적이었으며, 서로 다른 음색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졌다.
마지막에 케플러가 타원궤도를 이야기하고, 갈릴레이가 다시 풀어야 할 문제가 생겼다며 기뻐하는 결말은 실제 역사와는 다르지만 작품의 정서에는 잘 맞았다. 세 사람이 함께 누워 밤하늘을 바라보는 장면은 과학적 발견, 두 연구자의 우정, 갈릴레이와 딸의 화해를 하나의 이미지로 묶었다.
나는 중학생 때 갈릴레이가 종교재판 뒤에도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말했다는 이야기를 읽고, 살아남기 위해 과학적 양심을 포기한 것인지 아니면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던 것인지 생각을 오갔다. 그러나 그 말을 실제로 했다는 증거도 없다. 지금의 나라면 지구가 돌든 말든 우선 살아야 한다고 말하고 뒤도 돌아보지 않았을 것 같다. 화형은 너무 무섭다. 작품 역시 갈릴레이의 굴복을 단순한 비겁함으로 그리지 않고, 케플러와 마리아를 보호하고 살아남은 뒤 다시 연구할 문제를 찾는 선택으로 마무리했다.
과학적 사실을 다룬 뮤지컬 가운데 내가 본 작품 중에서는 가장 높게 평가하고 싶다. 정확히 묘사하기 어려운 과학적 세부를 무리하게 단정하지 않았고, 역사적 인물의 관계는 창작적 상상력으로 확장했다. 쾌활하고 잘난 체하는 갈릴레이, 겸손하지만 책임을 피하지 않는 케플러, 아버지에 대한 애증으로 흔들리며 극의 화자가 되는 마리아를 중심으로 과학을 이용한 우정과 부녀의 사랑을 그렸다.
과학적 오류를 찾으려고 집중해서 보았지만, 설정은 예상보다 안정적이었고 넘버와 배우들의 연기는 기대 이상이었다. 결국 경계를 내려놓고 공연을 즐기게 되었다. 친구를 만나러 나온 김에 급히 예매한 작품에서 뜻밖의 좋은 공연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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