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lly Elliot

빌리 엘리어트
거의 10년 만에 다시 본 빌리 엘리어트는 여전히 깊은 감동을 주었다. 탄광촌의 아픔도, 공동체의 따뜻함도 그대로 남아 있었다. 한국 초연의 빌리가 성인 빌리역으로 나온 장면으로 빌리의 미래가 더욱 찬란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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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초연:
2010
세계 초연:
2005
관람 년도:
2026
공연 극장명:
블루스퀘어 우리은행홀
리뷰
정말 좋은 극이다. 이 뮤지컬은 가족, 꿈, 현실이 뒤엉키고, 어린 빌리가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동시에 아버지, 할머니, 형의 사랑을 확인하게 되는 이야기이다. 2008년 브로드웨이 초연 당시 Imperial Theatre에서 처음 이 작품을 보았고, 이후 2017년 한국 공연도 관람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무엇이 그렇게 깊은 감동을 주었는지 정확히 설명하지 못하게 되었다. 이번 공연을 다시 보며 비로소 그 이유를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작품의 중심에는 어렵고 팍팍한 현실 속에서도 인간이 서로를 향해 품고 있는 사랑이 있다.
어머니를 잃은 뒤 어린 아들을 어떻게 키워야 할지 모르는 재키는 파업으로 생활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빌리의 권투 수업을 위해 50펜스를 쥐여준다.
처음에는 아들의 꿈을 이해하지 못해 막았지만, 결국 발레가 아들에게 어떤 의미인지 깨닫게 된 뒤에는 윌킨슨 선생님을 찾아가고, 로열 발레 학교 사람들 앞에서 빌리를 위해 무엇이든 하겠다고 말한다. 어머니를 그리워하고, 아버지의 말 없는 사랑을 확신하지 못하던 빌리에게 그 순간은 아마 발레를 발견했을 때만큼이나 강한 전기가 흐른 것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파업에 동참하지 않아 배신자라는 낙인이 찍힌 광부들 역시 빌리의 꿈을 돕는다. 재키가 갱도로 돌아간 것을 비난하던 사람들조차 결국 돈을 모아 빌리가 로열 발레 학교 오디션을 보러 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 한때 그 마을을 지탱했던 광산 산업은 지금쯤 거의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작품 속에는 공동체의 기억이 남아 있다. 정치적 입장과 현실적 처지 때문에 갈라졌던 사람들까지 결국 한 소년을 위해 마음을 모은다. 그 따뜻함이야말로 이 작품에서 가장 크게 남는 부분이다.
영국 영화나 뮤지컬은 주제를 직접적으로 설명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대신 관객이 스스로 느끼고 이해할 수 있는 여백을 남겨둔다. 빌리 엘리어트가 오랫동안 사랑받는 이유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빌리라는 소년만큼이나, 그를 둘러싼 사람들의 따뜻함이 중요하다. 이번에는 윌킨슨 선생님이 단순히 탄광촌의 서민 계층이 아니라, 조금 더 중산층에 가까운 인물이라는 점도 새롭게 보였다.
처음으로 Ballets Russes와 Sergei Diaghilev에 대한 언급이 또렷하게 들렸다. 최근 한국 창작 뮤지컬 디아길레프를 본 덕분에, 예전에는 그냥 지나갔던 대사들이 이번에는 새롭게 다가왔다. 역시 아는 만큼 보이고 들린다.
무대는 초반 광산 국유화와 마거릿 대처의 모습이 투명 스크림에 투사된 것을 제외하면 기억 속의 원작과 거의 같았다. 빌리의 집과 2층 방이 그대로 등장해 반가웠고, 1막 마지막 “Angry Dance” 장면은 여전히 강렬했다. 성인 빌리와의 듀엣, 마이클과의 탭댄스, “Electricity”가 가까워질수록 점점 더 흥분되었다. 처음 브로드웨이에서 본 뒤 18년이 지났지만, 블로킹과 무대 이미지는 거의 변하지 않았고 감동 역시 그대로였다.
2017년 한국 공연에서도 가장 어린 배우가 빌리로 나온 공연을 봤는데, 이번에도 멀티캐스트 중 가장 어린 배우의 공연을 보았다. 통로석에 앉아 있었기 때문에 공연 첫 장면과 마지막에 각각 small boy와 빌리가 바로 옆을 지나갔다. 빌리역의 배우는 막 만 열 살이 되었지만 가까이서 보니 무대 위에서보다 더 커 보였다. 그와 동시에 얼굴은 small boy를 맡아도 될 정도로 아주 어려 보였다. 노래는 매우 좋았고, 음을 짚는 방식이 자연스러웠다. 변성기 전의 목소리였고, 발레와 탭, 텀블링까지 모두 뛰어났다. 손을 짚지 않고 텀블링을 하는 장면도 여러 번 보여주었는데, 몸이 매우 유연하고 탄력이 있었다.
2017년에 본 빌리는 음을 약간 끌어올려 시작하고 첫 음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었다. 당시 다른 빌리들의 영상을 다시 보니 모두 비슷하게 노래했던 것으로 보아 그런 방식으로 교육을 받았던 것 같다. 이번 빌리는 음을 훨씬 자연스럽게 처리했지만, 첫 음을 강조하는 습관은 여전히 비슷했다.
성인 빌리를 연기한 임선우 발레리노는 한국 초연 당시 빌리 역을 맡았고, 현재는 한국 유니버설발레단의 수석 무용수로 활동하고 있다. 두 빌리가 함께 춤출 때는 성인 빌리의 뛰어난 기량이 더욱 두드러졌다. 어린 빌리도 훌륭했지만, 성인 빌리 옆에서는 아직 아이 같은 모습이 남아 있어서 더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은 백조의 호수 장면이었다. 두 빌리가 의자를 이용해 춤을 추는데, 어린 빌리는 커다란 의자를 통제하기 위해 조금 다른 움직임을 사용해야 했다. 하지만 바로 그 점 때문에 더 감동적이었다. 작은 소년이 커다란 의자를 다루며 춤추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언젠가 훌륭한 프리모 발레리노가 될 미래가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가장 기대했던 장면이었고, 기억했던 만큼 아름다웠다.
음향은 유일하게 아쉬웠다. 아직 프리뷰 기간이라 조정될 것 같지만, 전체적으로 음량이 너무 작았다. 할머니의 노래와 초반 빌리, 마이클의 대사는 잘 들리지 않았다. 다만 소리가 들릴 때는 음향 자체는 깔끔했고, 딕션도 매우 또렷했다.
공연 전 연출가 Ed Burnside가 직접 인사말을 하고 배우들을 소개한 것도 인상적이었다. 어린 배우들이 많이 나오는 작품인 만큼, 1년 이상 빌리 스쿨을 운영하며 배우들을 훈련시킨다고 알고 있다. 서울은 영국의 작은 탄광촌은 아니지만, 이번 빌리 엘리어트 팀 역시 하나의 공동체를 만들었고, 그 따뜻함이 무대 전체에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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