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ky Boots
킹키부츠

니콜라이 포스터의 웨스트엔드 리바이벌은 초연의 화려한 스펙터클 대신 인물과 서사에 더욱 집중한다. 요하네스 라데베는 카리스마 넘치는 롤라를, 매트 카들은 따뜻하면서도 팝적인 감성의 찰리를 완성했다. 한층 간결해진 무대 속에서도 이번 런던 마지막 공연은 정체성, 존엄성, 그리고 자신의 길을 선택할 용기라는 작품의 메시지를 힘있게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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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초연 및 나의 관람 기록
세계 초연 연도:
2013
리뷰어 관람 연도:
2026
공연 극장명:
런던 콜리세움
프로덕션:
웨스트엔드
REVIEW
웨스트엔드 첫 관람이었다. 새벽에 프랑스에서 도착해 숙소에 짐만 맡긴 뒤 브런치를 먹으며 시간을 보내다가 마티네 공연을 보러 들어갔다. 이렇게 서둘러 일정을 맞춘 이유는 이날이 이번 프로덕션의 마지막 공연일이었기 때문이다.
프로덕션 정보를 거의 확인하지 않은 채 예전과 비슷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막이 오르자마자 예상이 완전히 빗나갔다. 커다란 Kinky Boots 사인이 무대를 채우고 있었고, 커튼업 전에는 객석 오른쪽으로 더 길게 돌출된 사각 무대 가장자리가 노란 LED로 빛나고 있었다. 함께 관람한 동료에게 신발 생산라인이 오른쪽이라 무대도 그렇게 만든 것 같다고 이야기했지만, 공연이 끝난 뒤 그 예상이 완전히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연히도 이번 리바이벌의 마지막 마티네 공연을 보게 되었다. 2026년 3월 개막해 17주간 이어진 런던 콜리세움 시즌은 이날 저녁 공연을 끝으로 막을 내렸고, 이후에는 Swan Lake가 그 자리를 이어받는다고 한다. 브로드웨이 오리지널 프로덕션과 한국 프로덕션, 그리고 킬리언 도넬리가 출연한 영화 버전까지 여러 차례 접했던 입장에서 이번 니콜라이 포스터(Leicester Curve 예술감독)의 리바이벌은 거의 다른 작품처럼 느껴졌다.
가장 큰 변화는 무대였다. 오리지널의 컨베이어벨트 중심 공장 세트는 사라지고, 빨간 LED 네온 프레임이 무대를 감싸는 미니멀한 디자인으로 바뀌었다. 찰리의 사무실과 런던 플랫은 후면 2층의 고정 세트로 배치되었고, 공장 화장실(사이먼이 숨는 곳)은 그 아래에 자리했다. 노스햄턴 공장은 무대 왼쪽 후면 출입문을 통해 드나드는 방식으로 표현되었으며, 생산라인은 과감히 생략되었다. 대신 공장 직원들이 사용하던 테이블이 그대로 밀란 패션쇼 런웨이로 전환되는 장면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전체적으로 소품은 크게 줄었지만, 각 테이블 아래에는 긴 빨간 가죽 롤이 놓여 있었다. 이번 리바이벌은 전체적으로 빨간색을 훨씬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Land of Lola의 엔젤 의상은 모두 붉은색으로 통일되었고, 아버지의 요양원 공연 의상도 기존의 흰색 드레스 대신 화려한 레드 계열로 변경되었다. 공연 초반에는 LED 프레임이 디지털 줌아웃하듯 무대를 확장하는 장면도 등장했는데, 최근 Maybe Happy Ending을 비롯한 여러 작품에서 자주 보이는 무대 언어와도 닮아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상징을 다루는 방식도 이전과 달랐다. 예전 프로덕션에서는 롤라가 디자이너로 합류하기로 결정하면서 Price & Son 공장 외벽 간판에 부츠 패널을 거는 장면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그 장면이 생략되었다. 대신 밀란 패션쇼에서 부츠 모양의 네온사인이 무대 위에서 내려오며 같은 상징적 순간을 대신했다. 돈과 사이먼(롤라)이 복싱 경기 후 대화하는 장면 역시 별도의 소품이나 세트 없이 무대 전면에서 진행되었다. 이런 연출들을 통해 이번 리바이벌은 물리적인 세트보다 조명과 배우의 움직임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가려 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오프닝은 공장 외벽과 어린 찰리, 어린 롤라, 그리고 두 사람의 아버지가 등장하는 기본 구성은 유지했지만, 어린 시절 인물들의 비중이 이전 프로덕션보다 훨씬 커졌다. 특히 성인이 된 찰리와 롤라가 심리적 갈등을 겪는 장면마다 어린 시절의 자신이 함께 등장하며 감정을 이어주는 연출이 새롭게 추가되었다. I'm Not My Father's Son에서는 이러한 변화가 가장 효과적으로 드러났다.
넘버 자체는 크게 바뀌지 않은 것으로 보였다. 예를 들어 찰리가 롤라에게 스틸레토 제작을 제안하러 갈 때 로렌이 함께 등장하는 등 블로킹에는 변화가 있었지만, 노래는 기존처럼 찰리의 솔로로 유지되었다. 반면 대사는 상당 부분 수정되었다. 젠더 감수성을 반영한 표현들이 자연스럽게 다듬어졌고, 설명적인 대사는 줄어들었다. 여기에 영국 지역 억양과 롤라 역 요하네스 라데베의 남아프리카 억양이 자연스럽게 녹아들면서 이전과는 또 다른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캐스팅은 롤라에 요하네스 라데베(Strictly Come Dancing 출신), 찰리 프라이스에 매트 카들(The X Factor 우승자), 로렌에 코트니 보우먼, 니콜라에 빌리-케이(Billie-Kay), 돈에 빌리 로버츠, 조지에 리처드 J. 헌트(Richard J Hunt)가 출연했다.
찰리 역 매트 카들의 목소리는 멜로우하고 부드러워 팝 가수로 활동해도 잘 어울릴 것 같았다. 고음 애드립도 안정적이었고, Soul of a Man에서는 감정을 끌어올리다 끝내 울음 섞인 거친 음색으로 이어지는 디테일이 인상적이었다. 뮤지컬이라기보다 팝 콘서트를 보는 듯한 인상을 받았는데, 헤비메탈을 좋아하다 발성 코칭을 받으며 음역을 넓힌 록·팝 보컬 출신이라는 그의 배경을 떠올리면 납득이 가는 창법이었다.
롤라 역 요하네스 라데베는 노래와 춤 모두 훌륭했다. 특히 본인의 볼룸과 라틴 댄스 경험이 안무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었고, 화려한 분장을 지운 장면에서는 무대 위 롤라와는 또 다른 분위기를 보여주었다. 매우 아름다운 인상이었다.
로렌 역시 좋은 인상을 남겼다. 기존 프로덕션에서 자주 보았던 신디 로퍼풍의 개성 강한 해석과는 달리, 보다 시원하게 뻗는 창법으로 캐릭터를 표현했다. The History of Wrong Guys에서는 절로 박수가 나왔다. 생산라인의 블로어를 이용해 머리를 휘날리던 전통적인 연출은 세트 변경으로 사라졌지만, 암핏 손부채질 같은 익숙한 요소들은 그대로 남겨 두어 반가웠다.
돈과 조지도 좋은 인상을 남겼다. 특히 돈은 단순한 반대 인물에서 벗어나 후반부 공장을 살리는 핵심 인물로 자리 잡는다. 롤라와의 댄스 대결은 예상보다 훨씬 볼거리였고, 밀란 패션쇼에서는 금발 단발 가발과 록커 같은 창법으로 분위기를 완전히 바꿔 놓았다.
조지는 초반 공장에서 찰리를 설득하는 장면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낮은 음을 길게 끌어 관객의 웃음을 이끌어냈고, 찰리가 못 알아듣고 다시 묻자 같은 음을 더 길게 반복하며 객석의 박수를 받았다. 큰 비중의 배역은 아니지만 작은 장면마다 확실한 존재감을 보여주었다.
롤라가 아버지의 요양원에서 노래하는 장면도 이번 리바이벌에서는 다르게 다가왔다. 롤라는 노래가 끝난 후 관객을 향해 "Thank you for attending my performance. You are not a usual audience, and I am not a usual singer."라고 말하며 박수와 환호를 충분히 즐긴 뒤에야 아버지가 휠체어에 실려 들어온다. "Hello Daddy, I love you, goodbye Daddy."로 이어지는 마지막 인사는 예전 프로덕션들을 볼 때마다 늘 의문이 남던 장면이었다. 정말 임종을 앞두고 있다면 조금 더 일찍 찾아뵀어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번 무대에서는 아버지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는데, 그 부재가 오히려 실제 대화라기보다 롤라가 마음속에서 오래 준비해 온 아버지와의 작별처럼 느껴졌다.
극 중 찰리가 롤라에게 모진 말을 던지는 장면은 그 순간만 보면 쉽게 용서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이후 전화 장면에서 그는 사업도 신발도 모두 중요하지 않다며 진심으로 사과하고, "You are the best man I know."라는 한마디를 남긴다. 그 진심을 들은 뒤에는 나 역시 찰리를 용서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극본이 특히 좋았던 부분은 후반부였다. 가장 흥미로운 인물은 오히려 돈이었다. 그는 롤라를 이해하게 되면서 결국 찰리를 인정하게 되고, 그 변화가 공장을 살리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그 순간 작품은 롤라를 받아들이는 이야기인 동시에, 찰리를 다시 받아들이는 이야기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연을 프라이드 위크 기간에 관람한 덕분인지 이러한 메시지는 더욱 자연스럽게 다가왔다.
마지막 피날레는 역시 하비 파인스타인의 작품다운 마무리였다. 모두가 함께 무대에 올라 노래하는 구성은 Newsies나 Hairspray의 커튼콜만큼이나 신났고, Raise You Up에서는 나도 모르게 따라 부르게 되었다.
음향은 기대했던 것보다 다소 아쉬웠다. 다만 이번 공연은 3층 발코니에서 관람했기 때문에 객석 위치의 영향도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이번 리바이벌은 단순히 세트를 바꾼 공연이 아니었다. 많은 장면을 과감하게 축약하거나 확장하면서도 작품의 핵심 메시지는 오히려 더 선명해졌다. 초연 당시보다 사회는 달라졌고, 그 변화에 맞추어 작품 역시 지금의 관객과 대화하는 방식으로 다시 다듬어진 듯했다.
새로워진 무대도 충분히 흥미로웠지만, 가장 큰 수확은 배우들이었다. 부드러운 팝 보컬로 찰리를 새롭게 해석한 매트 카들과, 뛰어난 춤과 존재감으로 롤라를 완성한 요하네스 라데베가 특히 인상적이었다. 여기에 로렌, 돈, 조지, 엔젤스, 그리고 앙상블까지 모두 높은 완성도를 보여주며 이번 리바이벌의 마지막 공연을 멋지게 장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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